미국에 온지 이제 햇수로 5년째 접어듭니다.
블태기동안 지난 저의 포스팅을 하나씩 읽으면서 추억도 좀 곱씹고, 또 낯설던 미국 문화와 미국생활 관련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아~ 이땐 이렇게 느꼈구나...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데... 라고 느껴진 것들이 꽤 있더라구요.
일명 나도 이제 미국 살 만큼 살았구나~ 라고 느껴질 때!
1. 신발 신고 집안을 돌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때
미국 온 지 얼마 안됐을 때 집에 인터넷 기사나, 누군가가 올 때 신발을 신고 집안을 돌아 다녀서 정말 싫었거든요. 거실이 카펫이 아니라 마루라서 나중에 닦으면 되긴 하지만 그 외의 공간은 카펫이라 밖에서 신던 신발로 집안을 들락 날락 하는게 너무 신경 쓰이더라구요. 게다가 그때 와플이가 두돌도 되기 전이였기 때문에 더 그랬죠.
관련글 읽기-2015/09/17 - [미국 생활기] - 미국집에서 방문객들이 신경 쓰이는 이유
누군가가 신발을 신고 제 집을 다녀 가고 나면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생각
' 저 신발을 신고 공중 화장실도 다녀 왔겠지?'
문제는 인터넷 기사 뿐만 아니라 같이 사는 남자인 와플이 아부지도 가끔씩 신발을 신고 집안을 들락 날락 하기도 했거든요. 이미 신발을 신고 외출을 하려다가 갑자기 급하게 집안에 들어와야 할 일이 생기면 신발을 벗지 않고 그냥 집 안에 들어오는거죠.
그런데 미국 생활 4년차 되고 보니... 이젠 제가 그냥 신발 신고 집안을 막 돌아다니기고 있더라구요. ㅎㅎㅎ
일부러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지는 않지만 와플이 아부지처럼 이미 신발을 신었는데 다시 벗기가 귀찮거나 앞문에서 뒷마당으로 나갈 일이 있을 때 신발을 벗었다가 다시 뒷마당에서 신발을 신는것이 귀찮아서 그냥 신발 신은채로 집안을 지나가기도 합니다.
왜 이게 적응이 된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미국의 집은 한국처럼 방바닥 생활을 하지 않으니 바닥에 눕거나 앉을일이 그다지 없거든요. 한국에서는 겨울에 따뜻한 방바닥에서 이불 덮고 누워 TV도 보고 상 펴 놓고, 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식사는 테이블에서, 바닥에 이불 덮고 눕는 일은 절대 없구요. (물론 미국에서 한국처럼 생활하시는 분들은 예외겠지만요) 물론 바닥에 앉아 있는 일은 아이들이 있다 보니 종종 있지만 아이가 없는 집이라면 사실 바닥에 앉을일도 거의 없구요. 그렇게 점점 바닥에서 생활하던 습관을 점점 잊어가다 보니 바닥은 그냥 발이 닿는 공간이라 집안에서 신발을 신어도 크게 개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 반대로 맨발로 집 밖을 뛰쳐 나가는 일도 종종 있어요. ㅎㅎㅎㅎ
하지만 한 두명 정도가 신발 신고 지나다니는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집에서 파티를 하거나 손님들이 많이 오셨을 때 많은 손님들이 모두 신발을 신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것 까지는 아직 적응을 못했어요.
일본인 친구인 모모코가 켄의 세살 생일 때 집에서 생일 파티를 했더니 무엇보다 손님들이 다들 신발을 신고 집안을 들락날락 하는 것이 너무 신경 쓰여서 네살 생일은 일부러 실내 놀이터에서 하게 됐다고 하길래 저도 생각 해 보니 아직 그걸 이해 할 정도의 내공은 안 쌓였더라구요. 이건 미국 생활 10년차 되면 어떨지 그때 가서 보죠.
2. 팁이 아깝지 않을 때
제일 처음 미국 와서 제일 아깝게 느껴졌던 돈이 바로 팁이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내가 먹은 밥값만 내면 되었고, 일본에서는 내가 먹은 밥값에 세금만 더해서 내면 되었는데 미국에 오니 내가 먹은 밥값과 세금을 더하고 거기에 왜 팁을 더 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더라구요. 심지어 미국서 나고 자란 남편이 일본 생활 4년 하더니
"일본인들은 팁 안받아도 미국인들 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하고 훨씬 더 친절한데 왜 미국인들은 친절하지도 않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서 팁이 필요한거야" 라고 까지...
오타쿠 미국인이 4년간 일본물 마시면 이루본 사라무 데눈 고시무니까?
아무튼 미국에서 음식값이 비싸지면 그만큼 팁도 올라가니, 팁으로 내는 돈이 10불이 넘어가면 아까운 마음이 드는건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4년간 미국물 마셨더니 미쿡 사람이 된 건지 이젠 이 팁을 막 더 퍼 주고 싶은 지경까지 되더라구요. 처음에는 그냥 내는 돈 같던 팁이, 내가 받은 서비스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하면서 팁도 음식값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메뉴에 씌여진 가격 자체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팁까지 포함된 가격을 음식값이라고 생각하니 아깝다는 마음이 점점 사라졌거든요. 게다가 서버가 정말 친절하거나, 신경을 많이 써 준다고 느껴지면 보통 팁의 적정 수준이라는 15%~20% 보다 더 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잘 챙겨 준 서버에게 20% 이상 주는게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주게 되는 날도 오더라구요.
특히 아이들이 있다 보니 아이들에게 어떤 특별한 서비스를 해 준다거나 하면 그에 대한 답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거든요.
3. 형광등보다 백열등이 더 편할 때
한국의 밝은 형광등에 익숙했던 제가 남편과 결혼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남편은 형광등을 불편해하고 저는 어둡고 답답한 백열등을 불편해 해서 썼던 포스팅 기억하시나요?
관련글 읽기- 2012/05/08 - [미국 생활기] - 불켜는 한국인 아내, 불끄는 미국인 남편
이때까지만 해도 백열등이 어두워서 싫다며 불만을 터뜨렸던 저였건만...
세상에!!! 전 이제 밝은 형광등이 싫어요. ㅎㅎㅎ
백열등이 집안을 더 안락하고 따뜻한 느낌이 나도록 해 줘서 밤이 되면 노란 불빛이 있는게 훨씬 더 기분이 좋더라구요.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창 밖으로 새어나오는 노란 불빛도 너무 예쁘구요.
밝은 형광등인 day light은 요리할 때 사용하기 위해서 주방에만 설치 했고, 그 외에 식사를 하는 식탁과 거실, 각각의 방은 모두 warm white의 은은한 백열등이예요.
4. 재채기 소리를 들으면 자동으로 블레스유가 나올 때
미국인들은 옆 사람이 재채기를 하면 bless you라고 해 주는데요. 미국인 남편과 살다보니 늘 bless you를 해줘서 그건 익숙해 졌지만 미국에 오니 제가 재채기를 하면 모르는 사람들인데도 제 주위 사람들이 bless you를 해 주더라구요. 쇼핑하러 가서 구경하다가 재채기를 하니 어디선가 들려오는 "bless you" 두리번 두리번 하다가 부끄러워 하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Thank you 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저도 누군가가 재채기를 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냥 자동으로 "bless you"가 나옵니다. 그게 누구든 상관없어요. 그냥 내 몸의 생리 현상의 한 부분이 된거 같아요. 방구 나오면 냄새도 따라 나오는 것처럼...
엣취~가 나오면 블레슈가 따라 나오거든요. 그리고 블레슈와 땡큐도 셋트죠. 누군가가 제 재채기에 블레슈라고 해 줬다면 땡큐~가 자동적으로 따라 나오거든요. 이게 정말 의미없는 습관이 되어 버렸다고 느껴졌던게 제가 재채기를 한 적이 있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었거든요. 아무도 블레슈를 해 줄 사람이 없었는데 저 혼자서 "땡큐" 라고 말하고 민망했던 적이 있어요. 왜냐면 언제나 어디서나 재채기나 나타나면 블레슈==>땡큐가 나오는게 불변의 법칙인지라 이미 제 뇌는 재채기를 감지하는 순간 땡큐 신호를 전두엽으로 보내버리거든요. 이게 너무 익숙해져서인지 작년에 한국 갔을 때 저 혼자 재채기 하고 혼자 땡큐 날리니까 옆 사람이 '이기 미칬나?' 하는 눈빛으로 저를 아래 위로 훑던 일도 있었고, 아무도 블레슈 해 주지 않으니 왠지 섭섭한 생각도 들어서 아~ 내가 미국 생활이 너무 적응했나보다 하고 생각했었죠.
5. 카드에 사인만 해서 보내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
미국인들은 카드를 보낼 때 안에 내용을 쓰지 않고 이미 내용이 씌여진 카드를 사서 자신의 서명만 해서 보내는게 일반적이예요.
물론 내용을 쓰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서명만 합니다. 또 그렇게 하라고 카드 회사에서 고심해서 카드의 문구를 창작해 내는 카피라이터들을 고용하고 그렇게 카드를 만들어내는거죠.
2012/09/05 - [미국 생활기] - 미국인 시어머니로부터 받은 내용없는 카드
카드는 머니머니 해도 머니가 들은 기프트 카드가 최고지만 머니가 들어있지 않다면 보낸이가 직접 쓴 정성스런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한국인 마인드였던 저는 이 카드 문화가 처음에 익숙하지 않아서 시어머님이 아무 내용도 없이 서명만 해서 보낸 카드를 받고 섭섭하기도 했었는데... 미국 생활 4년만에 카드 작성 문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이 편리한 문화를 완.전. 내.것.으로 받아들여 아주 만족하며 잘 이용하고 있답니다. 초반에는 시부모님이나 시조부모님께 보내는 카드에 한두줄이라도 뭔가를 써야 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왠걸요~ 그냥 유머러스한 카드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서 고르면 그걸로 제 마음을 대신하고 서명만 달랑 해서 보내는데도 복부에서 부터 솟구치는 그 뿌듯함!!! 마치 내가 그 유머러스한 문구를 생각해 낸 것처럼요. 더 웃긴건 심지어 남편이 서명만 달랑 해서 보낸 카드를 읽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남편이 고심해서 직접 쓴 문구도 아닌데 카드에 씌여져 있는 내용이 남편의 진심을 대신한다고 철떡같이 믿게 되는 지경까지 와서 그 문구가 너무 감동적인 나머지 "아~ 역시 이 사람에게 난 이런 존재구나" 하면서 눈물 질질질~
제 정신 돌아오면 '지가 쓴 게 아니지!!' 하지만요.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은 미국 생활이지만 이 정도면 뭐 미국 살 만큼 살았다 해도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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