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이직을 위해 이력서를 뿌리기 시작한지 6개월 정도 되던 어느 날 밤, 먼저 자러 들어가겠다던 남편으로부터 문자 메세지가 왔습니다.
"나, 다음 직장을 구하기 전에 일을 그만두게 되면 얼마나 많이 화낼거야?"
그 메세지를 보는 순간 심장이 요동치더라구요. 월급쟁이 삶이 누구나 그러하듯, 한달 벌어 한달 먹고 사는데 다음 직장을 구하기도 전에 일을 그만 두겠다고 하면 이거 손가락 빨며 살자는거 아닌가요?
'니 미칬나? 이게 말이가 빵구가?'
가 튀어나올 뻔 했지만... 나는 배운 여자니까 마음을 가다듬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화 안 낼거야"
"정말?"
"응, 화 안 낼거야, 그렇게 그곳이 싫고, 당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만 둬, 내가 일 할게"
배운 여자 답게 답장을 한다는 것이 그만... 싸지르고 말았다는요 ㅠ.ㅠ
그런데 사실 남편이 현직장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했던 것을 잘 알기에 당장 그만둔다고 해도 제가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였어요. 결혼하고 지금까지 자기 일 만큼은 너무나 열심히 성실하게 했던 것을 누구보다 제가 잘 아니까요. 그런 남편이 다음 직장을 구하기도 전에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느낄 정도면 스스로가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고, 이 얘기를 저에게 직접 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담이 되었기에 문자로 보낼 수 밖에 없었던 남편의 마음을 생각하면 당장 먹고 살 일 보다 이 남자에게 기댈 사람이 되어 주는 것이 절실해 보였거든요. 물론 끓어 오르는 화도 있었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얘기해도 되니까... 그날은 그렇게 남편에게 당장 내일이라도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 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저는 잠을 이루지 못했지요. 왜냐!
갑자기 먹여 살려야 할 부, 자식이 생겼으니까!!!
그래서 이불을 걷어차고 나와 당장 취업 사이트를 배회하다가 마침, 제가 둥지처럼 드나드는 타겟에서 채용 공고가 있어 바로 지원서를 써 냈습니다.
면접보고 붙은것도 아닌데, 마음은 이미 출근 날짜 받은 사람처럼 기분 좋게, 마음 편하게 꿀잠자고 일어났지요.
다음날 남편은 제 말에 힘을 얻어 일을 그만두지 않고 더 열심히 이력서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남편이 이직을 하기 힘든 원인 중 하나가 남편의 업무가 항공 관련인데, 항공 관련 잡을 우리가 살고 있는 블러프턴, 사바나 지역에서 찾을려니 없었던거죠. 갈 수 있는 곳은 사바나의 G사와 뷰포트의 군부대 에어 베이스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타지역으로 가기에는 집을 팔아야 하고, 이사를 해야 하고, 그에 따른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제가 이사는 가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더니 이직의 기회는 바늘구멍 만큼 작았거든요. 그렇다고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고, 그렇게나 입사하고 싶어했던 G사에서 인터뷰 기회가 왔지만 두번의 취업 경험이 너무 수월했던지라 쉽게 생각하고 아무 준비 없이 면접을 본 탓에, 낙방의 쓴 맛을 보고 말았죠. 이후로도 계속 G사에 비슷한 포지션으로 지원을 했지만 감감 무소식이고, 직장 스트레스는 한계에 달했고, 그래서 일을 그만 둘 결심까지 한듯한데 이사가 뭔 대수랴 싶어 지역 가리지 말고 미국 전국구로 쫘아악~ 뿌려 보라 했더니 신나게 뿌리더군요. 남편은 남편대로 이렇게 노력하는 동안, 저 역시도 파트 타임이 아니라 취업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타겟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해서는 먹고 살 수가 없으니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취업 사이트를 다시 배회하다가 모 항공사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고, 이곳에 응모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지원서를 쓸까 하다가 이곳은 비디오 면접이 있어서 면접 준비를 좀 한 후 응모를 하는 것이 확실할 것 같아서 면접 준비를 시작했거든요. Glass door라는 사이트에서 이 기업의 기출 면접 질문을 50개 정도 선별해서 답을 만들어 면접 노트를 작성했어요. 그리고 유튜브에서 HR 컨설턴트나 하이어링 매니저들의 조언이 담긴 영상들을 수십개씩 보며, 해서는 안되는 답변들, 이상적인 답변들을 참고해서 저만의 노트를 만들었더니...
세상에나! 저 어디에든 면접만 보면 다 붙을 것 같은 근자감이 생기더라구요. ㅎㅎㅎ
여기서 살짝 고백하건데... 제가 몇년전에 홈굿즈에 파트 타임 면접을 본 적이 있거든요. 그냥 지원서만 내러 갔는데 갑자기 사무실로 데려가서 면접을 보길래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질문 공격 당해서 멘탈 탈탈 털리고 돌아 온 적이 있는데 이번에 면접 준비하면서 보니 그때 제가 해서는 안되는 답변들만 골라서 답했더라구요. ㅎㅎㅎ
아무튼 며칠동안 밤 새워가며 면접 노트를 만들고 예상 질문에 답변을 연습하는 동안 전국구로 뿌린 남편의 이력서에 반응이 오기 시작하고, 타지역으로 이사를 갈 각오도 되어 있다고 하니 남편의 직장 상사가 버지니아쪽에 자리를 마련해 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플로리다 잭슨빌에서도 잡 오퍼를 받고, 이력서를 내지도 않았는데 워싱턴주에서 남편의 이력서를 검색해서 연락 해 온 업체도 있었습니다. 이직이 안되서 침울해 하던 밤은 온데간데 없고, 갑자기 세군데의 선택지가 생긴 상황... 우선 버지니아주의 잡은 남편에게는 은퇴까지 평생 직장이 될 수 있는 안정 된 정부잡이라는 장점이 있었지만 제가 가기 싫었어요. 검색을 해 보니 시골에다가 학군도 별로였거든요. 그리고 겨울에 눈 내리는 곳은 눈 치우는 중노동을 하는 사람이 제가 될게 뻔해서 가기 싫었음요. 플로리다주의 잡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아 이사의 부담이 덜하고, 집값도 지금 살고 있는 곳과 비슷해서 연봉을 조금만 올려서 가도 부담이 없다는 점. 그리고 겨울에도 따뜻한 날씨라 눈 치울 일 없어서 굿굿굿! 그러나 삶의 여유가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 워싱턴주의 잡은 남편의 경력에 정점을 찍을 수 있는 기회, 아주 좋은 베네핏, 그리고 그 회사에서 일본어 가능자를 뽑는 포지션이 있어서 나중에 제제가 학교를 가게 되면 저도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것 같아서 제가 더 가고 싶었어요. BUT... 겨울에 눈도 오고, 엄청엄청 시골에 학군은 엉망진창. 제가 가기 싫은 이유가 다 갖춰진 곳인데 저에게 취업 기회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 에잇! 이런 단점 따위... 가 되어 버린거죠. 그래서 무조건 남편을 이 회사에 취직 시켜야 한다!!! 라는 목표가 생겨 버린 저...
면접 일정이 잡히자 밤새워 만든 저의 면접 족보를 과감히 내어 주었습니다.
"어느 회사든 결국 물어 보는 질문은 이 50문항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G사의 실패를 잊지말고, 열심히 준비하시오"
마누라 말 들으면 자다가 떡 뺏기는 줄 아는 남편이 왠일인지 이 마누라 말을 듣는 기적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ㅎㅎㅎ 진지하게 제 면접 노트를 받아들고 하나하나 읽더라구요. 남편 취직 시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 저는 면접 볼 회사의 기업 이념과 그 회사의 기출 면접 질문들을 찾아서 스크랩 한 뒤 남편에게 보내주고, 면접보기 30분 전까지 모의 면접 연습까지 한 후 전화 인터뷰를 보냈습니다. 전화 인터뷰 하는 동안 혹시나 아이들이 방해할까봐 애들 데리고 뒷마당에 나가서 축구하고, 그네 밀어주고 그렇게 40분 동안 추운데서 덜덜 떨며 시간을 떼웠더랬죠.
면접을 끝낸 남편은 예감이 좋다 했지만 이틀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자 초조해 하더라구요. 제가 제 면접 준비를 하면서 배운, '인터뷰 감사 이메일을 한통 남겨 주는 센스' 가 생각나 땡큐 메일 한통 보내보라고 했더니 또 어째 순순히 말을 듣더군요. 그리고는 그날 오후 곧, 연락을 줄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답장을 받았다며 땡큐 메일 덕이라며 제 머리를 쓰담쓰담~
그런데 곧 올것 같았던 연락이 일주일째 안 오는겁니다. 이때부터 남편과 저는 서로 말은 안했지만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팔로우업 메일을 보내 보라고 했죠. 유튜브에서 배웠거든요. ㅎㅎㅎ 연락이 없을 땐 팔로우 업 메일을 보내는건 밑져야 본전이다! 라구요. 회사의 사정으로 늦어질 수도 있고, 또 다른 후보자와 고민중일 수도 있고, 떨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팔로우업 메일이라구요. 다음날 보냈냐고 물어보니 안보냈대요. 그래서 잊지 말고 보내라 했더니 "응" 그리고 그 다음날도 안 보냈다네요?!?! 슬슬 끓어오르기 시작했지만 난 배운여자니까!!! ㅋㅋㅋ "내일은 잊지 말고 꼭 보내~" 결국 다음날도 안 보냈대요.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보내겠다나 뭐래나?!?! 그럼 이주일이 지나는건데 무슨 이유에서든 2주일이나 지날때까지 남편의 존재에 대해서 리마인드를 하지 않는건 그만큼 합격의 기회가 2배속으로 떨어지는것 같아서 꾹 꾹 참았다가 제가 눈물을 머금은채로 부탁했자나요?
"제발 부탁인데, 주말이 가기 전에 팔로우업 메일 보내줘.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보내줘"
그리고는 유튜브에서 팔로우업 메일 보내는 방법까지 검색해서 링크 걸어주고 강제 청취 시킨 후에 보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뚜둥~
월요일이 되자마자 그 회사에서 바로 연락이 온거 있죠?!?! 거봐!!! 내 말 듣길 잘했지?
그 회사에서는 폭설로 거의 일주일동안 회사가 문을 닫을 상태여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다며 다음주안으로 오퍼레터를 보내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는거죠.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남편이 갑자기 마누라 신봉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실은 팔로우업 메일 보내기 싫었는데 당신이 옳았어!!! 고마워"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다음주 안으로 오퍼레터를 주겠다던 회사에서 그 다음날 바로 오퍼레터가 온 것이죠. 이쯤되니 남편이 팔로우업 메일의 위력을 깨닫고 저에게 무한 감사를 날리더라구요. 이번 취업은 100% 저의 서포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며 이제부터는 제 말만 믿고 따르겠다며, 엘리교 신도로 자진 입교했습니다. ㅎㅎㅎ
이렇게 남편의 이직 성공을 자축함과 동시에 헬도 함께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워싱턴주로의 이사!!! 지도로 보면 동쪽끝에서 서쪽끝으로!
거리로는 2854마일 4593킬로미터, 시간상으로는 차로는 39시간, 비행기로는 6시간.
이사 준비도 시작해야 하고, 이 집은 당장 어찌 팔아야 할 것이며, 집을 팔기 위한 준비에다, 이사갈 곳의 집도 같이 준비해야 하는 그야말로 대혼란이 시작된 것이죠.
이제부터 할 얘기 이빠이 많고, 고구마 여정이 시작됩니다. 준비들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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