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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세포라 일기

미국 세포라 일기-자상했던 남편놈의 정체

by 스마일 엘리 2023.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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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포라에 일을 하면서 느낀건 도난이 정말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예요. 화장품들 중 특히 메이크업 제품들은 크기가 작으니까 숨기기 좋아서 그런건지 거의 매일 도난이 있어요. 물론 도난 방지 부서에서 감시하고 있고, 도난 행동이 포착되면 곧바로 나와서 제지를 하고, 도난 물품을 돌려 받지만 담당자가 쉬는 날이거나 갑자기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거나 하면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일을 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도난 사건들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최근에 있었던 어이 없었던 사건 얘기 풀어 볼게요. 


저녁 7시가 약간 넘은 시간에 한 부부가 와플이 정도 되는 남자 아이를 데리고 들어 왔어요. 여자분은 평범했고, 남자분은 영화 토르 THOR의 스몰 사이즈 크리스 햄스워즈의 느낌으로, 입금 전과 홈리스 그 사이 어디쯤의 모습이였죠. 양쪽 팔에 수묵화가 가득했고, 긴머리는 꽁지 머리로 묶었고, 어깨가 다 드러나는 러닝셔츠에 반바지, 슬리퍼를 신고 왔죠. 
오자마자 남자분은 향수 코너를 맴돌았고, 여자분은 랑콤 앞에서 서성 거리더니 갑자기 저에게 "아르마니 파운데이션 써 봤어요?" 라고 묻더라고요. 아르마니 파운데이션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저는 써 본적이 없다고 했죠. 그리고 저희 매장에서는 취급하지 않지만 직영점은 취급할 수 도 있으니 몰 안에 있는 직영점을 확인 해 보라고 했더니

 
" 어지간한 제품 다 써 봤는데 이상하게 제 피부에는 다 뜨더라고요, 그나마 랑콤이 제일 괜찮았는데..." 

그래서 피부 타입을 물어 보고, 혹시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써 볼 의향도 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길래 샬럿 틸버리의 파운데이션을 보여 주겠다며 그쪽 섹션으로 함께 갔어요. 
샬럿 틸버리 섹션은 세포라 매장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해 있어서 매장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향수 코너와는 반대 방향이거든요. 
샬럿 틸버리 파운데이션을 덜어서 스폰지로 손등에 발라 주었는데 파운데이션을 바르자 마자 갑자기 이 여자분이 오바육바 하며 


"이것 봐요!!! 이렇게 뜬다니까!!! 봐봐요, 봐봐!!! 이상하지 않아요? " 

근데 제가 보기엔 전혀 뜨지 않았거든요. 속으로 '파운데이션이 뜬다는게 뭔지 모르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본인이 뜬다고 오도방정을 떠니까... 이때 좀 이 여자의 반응이 너무 오바 스러워서 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럼 로라 메르씨에 파운데이션을 발라 보자고 하며 로라 메르씨에 섹션으로 와서 또 파운데이션을 손등에 덜어 발라 주었어요. 
"봐봐요!!! 또 뜨잖아요, 봐봐! 나 샬럿 틸버리도 써 봤고 로라 메르씨에도 다 써 봤는데 이렇게 떠서 반품 했던 것 같은데... 자기야!!! 내가 반품 했던게 샬럿 틸버리 맞지? 그리고 로라 메르씨에도 반품 했었지?" 하니까 
향수 코너에 있던 그 남자분이 저희 쪽으로 오면서 

"그래, 두 브랜드 다 반품 했었잖아"

'아니, 보통의 남편들은 와이프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파운데이션 브랜드도 기억 못하는게 대부분인데... 와이프가 한두번 쓰고 반품해 버린 브랜드들을 다 기억하는 남편이라니!!!! 자상함이 저세상 레벨이군'
자꾸 뜬다고 방방 뜨는 여자분이 그나마 랑콤이 자기에게 잘 맞았다고 하니 랑콤 제품을 발라서 다른 제품과 발림성이 어떻게 다른지 보기 위해 다함께 랑콤 섹션으로 함께 갔습니다. 
그리고 랑콤을 손등에 발랐는데 


"이게 그나마 낫지만 이것도 뜨잖아요. 봐봐요" 

씹던 껌 어금니에 '촥' 달라 붙은 것 처럼 밀착력 좋은데 자꾸 뜬다고 하니 이 분은 파운데이션이 뜬다는 의미를 정말 모르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그래서 화장한지 반나절이 지나서 뜨기 시작하는 제 이마의 파운데이션을 들이대며 


"이거 보세요, 이렇게 피부에 밀착되지 않고, 파운데이션이 피부로 부터 분리 된거 보이죠? 이 정도면 뜬다고 하는데 고객님 손에 바른 파운데이션은 제 경험에 의하면 잘 밀착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요. 물론 알맞는 프라이머를 사용하면 훨씬 더 마무리가 좋겠죠. 일단 오늘 테스트 해 본 파운데이션들 제가 샘플을 만들어 드릴테니 집에 가서 며칠간 사용해 보고 비교해 보세요." 

라고 했더니 
"그냥 직영점에 가서 아르마니를 구입해야 겠어요. 사고 싶었던 거니까 다른 제품 사면 후회할 것 같아요" 
그래서 흔쾌히 그렇게 하시라고 했더니 
"자기야, 아르마니로 사기로 했어, 직영점으로 사러 가야해" 
라고 하자 어디선가 남자분이 나타나더니 아주 흔쾌히 
"레츠고!!! 직영점이 어딘데?" 
"타코마에 있는 몰에 있어" 
"그럼 당장 태워다 줄게" 
전 여기서 다시 한번 놀랐어요. 
8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인데, 40분이나 걸리는 곳을 이 저녁에 와이프 화장품 쇼핑을 위해서 데려다 준다고? 토 달지도 않고?!?!
보통의 경우 찾는 제품이 없어서 직영점으로 가야 한다고 하면 보통 남편분들의 반응은 "뭐? 거기까지 가야 한다고?" 하는 반응이거든요. 
아마 와플이 아부지 였다면 "놉! 오늘 말고!!!! 내일이나 주말에 가자" 라고 했을거예요.  우리 남편이 그런다고 딴 남편들이 그러라는 법은 없으니 이 남편 정말 자상한 사람이구나 싶어서 
" 진짜 좋은 남편이시네요!!! 와이프 파운데이션 쇼핑을 위해서 이 시간에 40분 운전을 기꺼이 하겠다니!!!" 
라고 했더니 남자분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 하더라고요. 마치 '뭐 이런걸로!!!' 하는 느낌? 
그렇게 그 커플을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은 채, 아르마니 파운데이션을 직영점에서 구입하겠다며 저희 매장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휴식 시간을 끝내고 돌아온 동료  D 가 향수 코너의 몽블랑 향수 테스터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도난 방지를 위해 붙여져 있던 시큐리티 장치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더라고요. 


그 시각은 도난 방지 부서의 직원이 이미 퇴근한 시간이라 보고할 수 없었고, 다음 날 제가 세포라 매니저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세포라 매니저는 도난 방지 부서로 가서 카메라를 돌려 보고 돌아 와서는 
"양쪽 어깨에 문신 잔뜩 있고, 머리 묶고, 펑키하게 생긴 남자랑 아이 데리고 온 여자랑 커플 같던데 기억 안나? 너랑 샬럿 틸버리에서 파운데이션 보는 동안 그 남자가 훔쳐갔어" 

으아니!!!이런 수박 씨발라 먹을 놈!!!!!!!!!


자상한 척은 혼자 다 해자빠드시더니만... 결국 도.둑.놈.이셨쎄요?!?!?!? 


그래, 어쩐지!!!!  와이프 파운데이션 브랜드도 몰라야 정상인데, 한두번 쓰고 반품했다는 파운데이션 브랜드를 와이프보다 더 잘꿰고 있는 남편놈이라니, 너무 상식 밖이라 했지... 
8시면 문 닫는 쇼핑몰에 있는 직영점을 8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가자는 데도 영업 시간도 확인 안해보고 흔쾌히 '레츠고'를 외치는 그 목소리가 너무 경쾌하다 했지... 
손등에 바른지 1분도 안지난 파운데이션이 뭔 화학반응을 일으킨 것도 아닌데 바르자마자 뜬다고 오도방정을 뜨며 봐 달라고 내 눈 앞에 들이미는 것도 이상타 했지... 
세상에!!! 어린 아들램까지 데리고 와서 마누라는 직원 정신줄 흔드는 바람잡이 하고, 그 사이에 남편놈은 도둑질이라니... 그것도 모르고 
엄지 손가락 쳐들며 굿 허즈번이라고 외친 내 주둥아리 오버록을 치고 싶은 심정이였다구요. 

그런데 이 일이 있고 불과 며칠 뒤에 또 살빠진 미스터 빈한테 깜빡 속았으니 가슴을 칠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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