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작년 3월에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집을 팔고 미국 대륙을 가로 질러 워싱턴주 모제스 레이크까지 이사를 왔던 것은 나름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었어요.
이곳에 완전한 정착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였고, 남편이 앞으로 이직할 직장에서 약 5년 정도 커리어를 쌓고, 저도 이 회사에서 제가 지원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취직을 해 볼 생각 이였거든요. (눈 여겨 본 포지션도 있었어요.) 2021년에는 제제도 킨더에 가게 되니까 그럼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길테니까요.
모제스 레이크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깡시골이지만 5년만 꾹 참으면 저희 삶이 훨씬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오자마자 집도 짓기 시작 한거였어요.
12월 중순에 새집에 입주를 했고, 짐 정리가 다 끝나지 않은 3월 즈음 코로나가 시작되어 남편은 재택 근무가 시작되었습니다.
3월엔 제가 펜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였고, 또 외출 금지령으로 마트가 텅텅 비어, 밀가루 버터를 찾느라 마트를 몇군데씩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그때만 해도 이게 왠 난리냐며 입으로는 불평했지만 그래도 마음의 여유는 있었죠.
그러다 4월에 샤워 부쓰의 누수를 발견하게 되었고, 장판에 수분이 흡수 되서 생긴 얼룩이라는 매니저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들으며 한달을 어영 부영 보내며 5월 중순이 되었죠.
이미 그 즈음 미국의 여기저기 에서는 자꾸 연장되는 외출 금지령으로 인해 문을 닫는 소규모 업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점점 큰 기업들도 정리 해고를 하기 시작하고, 파산 소식도 들려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친구들과의 그룹 채팅에서 그 즈음에 제가 했던 말이 생각나요. 그때는 아직 모제스 레이크에 확진자가 두명 정도? 나온 상황이여서 친구들이 더 많은 확진자가 나올까 걱정이 된다고 했고 전 그 말에
"난 남편 회사에 정리해고가 시작될까 걱정이 돼" 라고 했어요.
코로나의 영향은 항공업계도 큰 타격을 주었고, 전세계적으로 해외 여행이 금지 되거나 급감한 상황 속에서 항공업계가 좋을리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말을 하고 약 1주일 정도 지났을 때 남편이
"곧 CEO와 전 직원이 함께 참여하는 온라인 미팅이 있어. 아무래도 좋은 소식은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아!!! 올게 왔구나!!! 싶었습니다. 아마도 정리 해고를 시작하겠다는게 아닐까 하는 짐작이 들었지만 남편이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올해에 끝내지 못하면 회사측에서는 어마어마한 손실이라 어떻게서든 올해 안에 끝낼려고 회사와 전직원이 박차를 가하고 있던 중이였어요. 그래서 정리해고가 있더라도 남편은 그 프로젝트와 앞으로 있을 새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여서 운이 좋으면 정리해고를 피해갈 수도 있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기대했죠.
그 주의 주말이 지난 후, 남편은 온라인 미팅을 하러 들어갔고, 전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 중이였는데 미팅을 끝내고 나온 남편이 얘기 좀 하자고 하더라고요.
정수리 부터 스며 드는 알 수 없는 서늘한 필링...
"6월 1일부로 이곳 지사 자체를 잠정적 폐쇄한대"
왓?!?!?
정리해고라고 생각했는데 '정리 해고' 가 아닌 이곳 모제스 레이크 지사 자체를 닫아 버린다는 발표였대요.
올해 끝내야 했던 프로젝트는 모든 비행 테스트가 취소 되면서 프로젝트 자체도 취소가 되었고, 그러면 이 지사 자체가 존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주재원들의 월급과 체재비를 지급하면서 까지 유지할 이유가 없었던거죠. 6월 1일부로 지사는 폐쇄할 것이고, 모든 주재원들은 6월, 7월에 걸쳐 본국으로 다 돌아가고, 현지 직원들은 모두 정리해고 하는 절차라고 하더라고요.
이거슨... 코로나한테 불꽃 쌍싸다구 맞은 기분이였는데 더 후들겨 맞고 사실이 아닐수만 있다면 기꺼이 양쪽 뺨을 더 들이대고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였어요.
설사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래도 그 일은 우리 일이 아니기를 바랬으니까요.
온갖 걱정들이 쓰나미 처럼 몰려와 머릿속을 휘젓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 입사하기 위해서 대륙을 가로 지르는 이사를 했고, 집을 산 것도 아니고, 5개월에 걸쳐 집을 지었고 이제 겨우 입주한지 5개월 밖에 안 됐잖아요.
그런데 정리해고를 당하게 되면 남편은 재취업을 해야 하고, 모제스 레이크는 알다시피 아무것도 없는 깡시골이라 이곳에는 남편이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없어서 다른 지역으로 다시 이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는거죠.
그럼 이 집을 팔아야 하고요. 게다가 이 작은 시골 마을을 먹여 살리다 시피 하는 이 회사가 일부 정리 해고도 아닌 지사 폐쇄를 해 버리면 모두 이 지역을 떠나야 하니 집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 질테고, 그럼 집 값도 떨어 지겠죠.
사실 그 시점에 모제스 레이크에 있는 타 항공 회사가 이미 정리 해고를 시작했던 시점이라 주택 시장에 매물이 계속 나오고 있던 상황이였어요.
그렇다면 이곳 주택 시장에 매물이 쏟아 지기 전에 빨리 마켓에 집을 올려 팔아 치워야 하는데 지금 이 집은 욕실에 누수가 생겨서 바닥을 뜯어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당장 집을 팔 수도 없고, 언제 공사가 끝날지도 모르니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수도 없는 상황이였어요.
그리고 또 다른 걱정은... 지금 미국 전체적으로 정리 해고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어서 재취업 시장의 상황이 아주아주 안 좋았기 때문에 얼마나 빨리 새직장을 구할 수 있느냐도 문제였어요. 아직 짐도 다 안 풀었는데 또 짐을 싸고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스트레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예쁘게 지은 이 집에서 얼마 살아 보지도 못하고 집을 팔아야 한다는 것도 너무 속상하고, 당장 팔아야 한다면, 차라리 빨리 팔 수 있는 상황이라면 좋을텐데 하필 누수가 생겨서 당장 팔 수도 없는 상황이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였죠.
모든 걱정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이곳의 지사가 재오픈 할때까지 모제스 레이크에서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텨보자' 인데... 한 1년 정도는 기다려 볼 수 있겠지만 그 보다 더 길어진다면 저희도 경제적으로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남편과 보스, 그 팀원들도 따로 회의를 했는데 회사가 1년 이내에 다시 오픈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고, 길면 5년 안에도 못 열것 같다고 했기에 남편은 무모하게 회사가 재오픈 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안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당장 열흘 뒤면 무직자가 되는 와플이 아부지, 앞으로 해결 해 나가야 할 일들로 앞이 안 보이지만 그건 정신 챙기고 다시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가면 될테고요,
무엇 보다 정리 해고 통보를 받은 와플이 아부지의 가슴에 난 스크래치부터 해결해야 하니까... 배운 여자 답게
"이런 일이 생길거라고 누구도 예상 못한거잖아, 당신 탓이 아니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 그동안 일 하느라 고생했으니까 당분간 푹 쉬어,
일단 한 석달 동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냥 푹~쉬어. 맛있는거 먹고, 게임 실컷 하고 (보는 나는 속 터지겠지만 일단은 위로의 말 던지고 봄. 잔소리는 그때 가서...) 그리고 3개월 뒤부터 본격적으로 이력서 돌려 봐.
안되면 내가 알바라도 뛰지 뭐. 당신만 정리 해고 된거 아니고, 당신 보스, 동료들 다 같이 정리 해고 된거니까 모두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거잖아. 그러니까 서로 만나서 얘기도 하고 정보도 얻고 그러면 위안이 될거야 "
위로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알.길.이. 없.게. 남편은 매일 매일 맛있는거 자~알 챙겨 먹고, 게임도 실컷 하면서도 밤에 잠은 못 자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그리고 새벽 마다 일찍 일어나서 취업 사이트를 방황 하더라고요.
이러니 잔소리를 할 수도... 위로를 할 수도 없.... 게 할려는 와플이 아부지의 치밀한 백수 전략?
남편 회사의 정리 해고 발표 후에 주재원으로 와 있던 일본인 친구들도 급작스레 이삿짐을 싸고 당장 2주뒤, 또는 3주 뒤에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스케쥴이 줄줄이 잡혔더라고요.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만 지내는 아이들을 위해 뒷마당에 그네 셋트를 들이고 조립하는데만 5시간이 걸렸는데 딱 1주일 재밌게 타고 놀았더니 본국 귀국 소식을 접한 친구도 있었고요.
그리고 저와 친하게 지내는 그룹의 친구들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싹이 튼 깻잎을 나누기로 하고 깻잎 수학할 때 코로나가 사라지면 삼겹살 파티 하자며 수다 떨었는데 보름 뒤에 귀국 일정이 잡혔다는 소식을 알려 왔어요. 심지어 주재원들의 급작스런 귀국 일정으로 인해 미국내의 일본 이삿짐 업체인 Y사는 미국내의 전 직원을 다 모제스 레이크로 동원했다고 까지...
그냥 갑자기 제 삶이 난장판이 된 것 같았어요. 정리 해고, 새집 정리, 그 전에 새집 누수 공사, 남편 재취업, 또는 저의 파트 타임 취업, 그리고 그동안 정 들었던 친구들과의 급작스런 이별...
2020년 1월쯤만 해도 저~ 멀리 한국을 통해서 듣던 중국의 우한 폐렴이 2 월쯤엔 한국의 가족들을 걱정할 정도였을 뿐, 여기 이 미국 까지, 아니 우리 가족의 삶까지 이렇게 뒤흔들어 놓을 줄은 몰랐어요. 그저 먼 남의 나라 얘기 인줄 알았고, 그저 감기 같은 바이러스인 줄만 알았지, 우한 폐렴의 바이러스가 코로나가 되어 전세계를 집어 삼킬줄은 몰랐어요.
이 위기를 저와 와플이 아부지는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스마일 엘리의 일상 시트콤의 vlog도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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