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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승무원 일기

한국의 첫눈은 잊지 못할 땡스기빙을 선물해 주었지...

by 스마일 엘리 2025.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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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비행 일기도 많은데 아직 작년의 비행 일기가 끝이 나지 않아, 1년 시간차의 뒷북 블로그 '스마일 엘리의 일상 시트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ㅋㅋㅋㅋ  이 에피소드 스킵할까 했는데... 제가 잊어 버리고 싶지 않은 일상 얘기라서요. 
2024년, 한국의 첫눈 언제인지 기억하시나요? 그 첫눈이 삼십몇년만의 폭설이였다는 것 기억하시는 분? 혹시 그때 인천 공항에서 일하시거나 여행을 위해 공항에 계셨던 분? 손?!?!
저요! 저요!!! 
그때 전 인천으로 비행을 갔답니다. 일부러 이 날짜로 비딩을 해서 스케줄을 받은거예요. 왜냐면 저는 쭈니어라 남들이 선호하는 휴일이나 평일 비행은 받기가 힘들거든요. 특히 11월은 땡스기빙 연휴가 있으니,  저 같은 막내 주니어가 연휴에 그 비행을 받을 수 밖에 없어요. 그치만 땡스기빙은 저와 가족들에게도 의미있는 날이라 꼭 함께 보내고 싶어서 땡스기빙 연휴에 비행을 하되, 땡스기빙 전날에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으로 스케줄로 비딩을 해서 당일에는 땡스기빙 음식을 만들고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겠다는 계획이였죠. 다행히도 그 날짜로 인천 비행을 받게 되었고, 한국에는 곧 눈이 올거라는 소식을 들으며, 운 좋게 한국의 첫눈을 볼 수 있겠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했습니다. 


제 오랜 친구 써니가 저를 보러 와서 함께 스포츠 마사지를 받고, 오다가다 사람들이 늘 줄 서 있던 식당이 궁금해서 들어가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랫만에 먹어 보는 바삭한 김치전

여의도 맛집-조가네 닭한마리 
날씨 쌀쌀 했는데, 마사지 받고,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먹었지만 국물도 깊은 맛이 나고, 건강해 지는 맛이였어요.  

남은 국물에 칼국수 사리 넣어 끓여 먹기!
줄 서 있던 이유가 있었네요. 맛있었어요. 
언제나처럼 시차 때문에 또 이른 새벽에 잠이 깼습니다. 


창문 밖을 보니 눈이 조금 쌓이는 듯 했어요. 아~ 첫눈이다!!!! 날이 밝으면 더 예쁜 풍경을 볼 수 있겠지?? 기대하며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와아~ 눈이 쌓였네?!?!  
저는 눈 보기 힘든 부산 출신 여자라 한국에서 눈을 본 기억은 거의 없기에 이렇게 한국에서 첫눈을 보는 것이 감동이였어요. 

날이 밝아 질수록 날씨는 더더욱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레이오버 알차게 사용해야 하니까, 이번에는 명동 신세계까지 마실 나옴요. 

매번 짜장면이 먹고 싶었는데 맛있는거 너무 많아서 우선 순위에서 확 밀려 버렸던 짜장면 드디어 먹었습니다. 그러나 짜장면은 동네 중국집 짜장면이 찐이라고 믿어서 그런지 백화점 식당가의 짜장면은 아쉬움을 남기는 맛이였어요. 

24시간을 이리 알차게 씁니다. 여의도에서 명동까지 다녀 왔다가 또 네일까지 하러 갔어요. 

춥고, 눈 오니까 아주미들 분위기 타야죠!!!
“커피 마시즈아!!!”

이때부터 눈이 펑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씐난다!!!!!
 
가... 아!! 씅난다!!! 가 될 줄도 모르고...

눈 내리는 한강뷰 너무 분위기 있고 좋아서 비디오 찍는데, 그걸 또 몰카로 찍어준 내 친구...
자~ 그런데 이 펑펑 내린 눈을 뚫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더니... 
어므나!!!! 항공기들이 줄줄이 지연, 캔슬, 공항은 북새통이 따로 없더라고요. 어흑... 이거 예감이 안 좋은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비행기도 지연...
1시간 지연.. 지연... 지연... 
밖에 눈은 점점 더 쌓이고... 
다른 항공사들도 지연을 거듭하다가 결국 파일럿들과 승무원들 법정 근무 시간 초과로 캔슬 엔딩이 나는 것을 지켜 보면서 불안 불안 했습니다. 
다른 때라면 지연 되거나 항공편이 결항 되어도 다음날 가면 되지만 이번에 일을 하는 크루들은 다들 땡스기빙 때 가족과 함께 보낼 계획으로 로 미리 스케줄을 짜고 일을 하러 온거라 제 시간에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거든요. 
저 역시도 가족과 함께 땡스기빙을 보내야 하는 이유가 있었지만, 어떤 크루는 자신이 땡스기빙 파티 호스트가 되어서 음식도 미리 주문해 놓고, 50여명의 손님을 초대해 놓은 상황이라 무조건 땡스기빙 전에 돌아가야 한다고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런데 점점 우리의 법정 근무 시간은 다 되어 가고, 타 항공사는 결항 되는 항공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였습니다. 
초조하게 창 밖의 눈을 바라 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두둥!!! 근무 시간 초과!! 

크루들에게 선택의 시간이 주어 졌습니다. 법정 근무 시간 초과로 인해 호텔로 돌아가기와 자발적 근무! 
한명은 근무 시간 초과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빠졌지만 다들 땡스기빙 명절을 위해 집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자진 근무를 나선 크루들!!!
결항 위기의 비행을 살리고 우리 비행기는 출발을 했답니다. 
그날 저에게는 인천에서 씨애틀 집으로, 일하는 크루가 아닌, 승객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어요. (시간 초과로 빠진 크루는 호텔로 돌아가지 않고, 다음날 있을 데드헤딩 비행을 몇시간 뒤인 씨애틀행으로 바꿔서 저희보다 먼저 씨애틀로 도착함) 그랬다면 전 아마 땡스기빙 전날 집에 도착했을 것이고, 잠도 편히 집에서 잤을 것이고, 땡스기빙을 가족들과 보낼 수 있었겠죠. 하지만 전 함께 온 동료들과 애틀란타로, 일하는 크루로 돌아가는 것으로 선택했습니다. 이미 한명이 빠진 상황에서 저마저 일을 안하겠다고 하면 최소 탑승 승무원 부족으로 비행은 결항이 되는 상황이였거든요. 사실 속으로는 눈물 흘렸.... ㅠ.ㅠ

나중에 파일럿이 저에게 직접 와서 함께 와줘서 고맙다고 말해줬고, 50명을 초대했다는 크루도 덕분에 파티 무사히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맙다고 인사해줘서 좀 위로가 되었어요.  한 크루는 자기 아버지가 제 덕분에 땡스기빙때 자기 딸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고맙다고 전해 달랬다며 저에게 인사해줘서 '그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잘 된 일이니까, 좋은거지' 라고 스스로 위안했답니다. 그리고 함께 일했던 한국어 스피커 대선배님께서 다음부터는 다른 크루들 눈치 보지 말고 제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미국인 크루가 저처럼 이렇게 씨애틀까지 커뮷을 해야 되는 상황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절대로 저같은 선택을 안 했을거라고... 이렇게 쭈니어는 미국 직장 생활 스킬 하나를 또 배웁니다. 
결항의 위기에 있던 비행을 살려 무사히 애틀란타에 도착 하고, 모두들 다음 날 가족들과 보낼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돌아 갔지만 전.. 집으로 돌아갈 씨애틀 마지막 비행기가 떠난 뒤 였습니다. 
애틀란타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 날 첫비행기를 타고 씨애틀로 돌아갈까 했지만 씨애틀에 도착하는 것이 오후쯤이라 최대한 일찍 도착 하기 위해, 그날 밤 엘에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그곳의 크루 라운지에서 노숙을 한 뒤, 다음 날 첫비행기로 가면 그래도 오전에는 집에 갈 수 있겠다 싶어 부랴부랴 엘에이 가는 마지막 비행기를 탔어요. 
새벽 2시 반에 엘에이 공항에 도착했는데... 역시 땡스기빙 전 날이라 그런지 공항도 텅텅 비었더라고요. 저는 크루 라운지를 찾아 가는 길을 헤매다 비슷해 보이는 입구로 들어 갔는데
'어랏!! 여기가 아니네?? '하고 나갈려니... 

어머??? 문이 안 열리네?!?!?!  당황쓰!!!

어??? 이거 어쩌지??? 
하고 보니 밖에서 들어올 수는 있어도 다시 나갈려면 보안 카드가 필요한 구역이였지 뭐예요???? ㅠ.ㅠ 

이거 뭐야??? 나 갇힌거야?!

근데 그 안에서도 다른 곳으로도 갈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아 버린 나!!!!  출구가 하나 더 있었지만 그것은 비행기가 있는 밖으로 나가는 문이고, 보안 구역일테니 함부로 제가 문을 열 수도 없었어요. 
하아!!!! 눈물 또르르륵!!!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맨날 시트콤이야 ㅠ.ㅠ 
새벽 3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공항에는 아무도 없고, 나는 밖에서 누가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나갈 수도 없고, 난 이미 시차를 넘어 15시간의 긴 근무 비행과 플러스, 4시간의 통근 비행으로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상태이고... 한 겨울에 어딘지 내 위치도 파악할 수 없는 공간에 갇혀 버린 상황!!! 
그냥 그대로 주저 앉아서 소리 내서 울고 싶었어요. 그때 또 후회가 막~ 밀려 왔죠. 나에겐 집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는데... 난 모두를 위해서, 그리고 300명이 넘는 승객들을 위해서 좋은 선택을 했는데,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ㅠ.ㅠ 
이 상황에 어디에 연락해야 할지도 몰라서 더 난감해 동기들 카톡방에 상황을 설명했죠. 물론 동기들이 답을 할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어요. 새벽 시간이라 깨어 있을리 없으니까... 
그런데 다들 안 자고 뭐하는겨?!?!?! 
깜짝 놀래서 다들 걱정해주고, 해결 방법을 모색해주는 찰라, 밖에서 청소기가 윙~ 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서 유리창으로 내다 보니 청소기 선이 청소기를 따라 움직이는게 보이더라고요. 
'하!!! 살았다!!! 누군가가 여기에 있다!!!! '
'청소기 선이 내 눈앞에 보인다는건, 분명 누군가 이 앞을 지나갈 것이다!!! '
그래서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렸어요. 제발 제발 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청소기 소리가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청소기 윙윙 하는 소리만 들리더라고요. 
'제발!! 제에~~~~ 발 여기 좀 봐 주세요!!!!!'

이 기회를 놓치면 이 구역에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는 집에 갈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고, 언제까지 여기 갇혀 있어야 할지 모른다 생각하니 너무 절박해 지더라고요. 
소리를 질러도 공항의 소음과 청소기 소리 때문에 들리지도 않을거고, 그저 애타게 문 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누군가가 저를 봐 주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한 10 분 정도 지났을까? 청소기를 끌고 저어쪽 건너편에 나타나신 아주머니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헬프" 를 외쳤어요. 그랬더니 드디어 그 분과 눈이 마주쳤고 제가 있는 문 쪽으로 걸어 오시더라고요. 

아!! 살.았.다!!!!! 

문을 열어 주시며 안에서는 문을 못 여는거냐며 어리둥절!! 
그니까요, 들어갈 때는 맘대로 들어갔는데 나갈 때는 맘대로 못 나가는 구역인줄 누가 알았겠냐고요 ㅠ.ㅠ 
그날의 우울함은 이렇게 저를 구해 주신 아주머니의 등장으로 인해 싹 가시고, 가슴을 쓸어 내릴 만큼의 안도와 기쁨으로 바꼈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빠져나와 제대로 크루 라운지를 찾아서 리클라이너 의자에 누우니 긴장이 풀렸는지 약간 서러움이 몰려오더라고요. 
'다른 크루들은 내가 집에도 못가고, 엘에이 공항에서 갇히기도 하고 노숙도 해야 했다는걸 모르겠지??? 그들은 집에서 따뜻한 침대에서 자고, 내일 가족들과 즐겁게 땡스기빙을 보내겠지' 
라는 생각하다가 언제 잠든지도 모르게 기절... 
그리고 몇 시간 눈만 잠시 붙이고 알람 소리에 허겁지겁 일어나 첫비행기로 씨애틀에 도착, 1시간 운전해서 집 도착... 가족들과 땡스기빙을 보낼려면 터키도 굽고, 명절 음식도 해야 하고 할 일이 태산이지만 일단 잠 부터 잤습니다. 다행인것은 와플이 아부지가 어차피 우리 가족들끼리 보내는 땡스기빙인데 꼭 땡스기빙 당일에 할 필요 없다고, 하루 미뤄서 다음 날 우리 가족만의 땡스기빙을 보내면 된다고 해줘서 우리의 명절은 다음날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보내기로 했죠. 
그러나 명절 치루는 엄마 맘은 그런 말을 들었어도 느긋하지가 않죠. 
몇시간 자고 일어나 음식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치즈 콘 브래드 굽고요. 

피칸 파이 굽고요. 

마시멜로 듬뿍 올린 스윗포테이토 캐서롤도 굽고요.

마시멜로 안 태울려고 오븐 들여다 보고 있었음. 

스터핑에 과일을 넣으면 아삭하고 맛있다는 미국인 친구의 조언에 따라 새로운 레시피를 찾아서 만들어 본 스터핑

예전에 모제스 레이크 살 때 아이들 때문에 여름 성경 학교에 갔다가 그곳에서 점심 시간에 준 샐러드 샐러드 먹었는데, 아 글쎼 심봉사 눈 떠지는 맛이 아니겠어요??? 누가 가져온 샐러드인지 추적해서 그 분께 직접 만드는 방법을 배워 온 앰브로시아 샐러드 

미리 냉장고에 해동 시켜 둔 터키는 갈릭 버터 소스로 마사지

초대한 손님은 없지만 우리 가족들끼리라도 분위기 내야 하니까 땡스기빙 테이블 셋팅도 완료!

아차차!! 크란베리 소스는 비행 가기 전에 미리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어요. 하나라도 미리 준비 해 둬서 다행!! 

이렇게 땡스기빙 디너 테이블이 완성 되었습니다. 

비록 남들보다 하루 늦은 땡스기빙이였지만 그게 뭐 대순가요??? 우리 가족들 함께 모여 따순 밥 먹고, 명절 음식 나눠 먹으면 그 날이 땡스기빙인거죠 뭐. 식사 전에 돌아 가면서 한 해 동안 감사한 것에 대해 얘기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난 이 시간만 되면 그렇게 눈물이 나드라?!?!?! 
이미 일년 전의 이야기라 아이들이 뭐에 감사해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제가 감사했던 건 기억이 나네요. 갑자기 집을 자주 비우게 되는 와이프를 대신 해 아이들을 돌봐주고, 서포트 해 주는 와플이 아부지에게 감사하고,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집에 없는데도 잘 적응하고, 엄마 일 서포트 해 주고, 이런 엄마를 자랑스러워 해 줘서 고맙다고 했었어요. 

우리 와플이와 제제는 이 한 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만들기까지  엄마의 지난 24시간이 어떠했다는 것을 알까요? 

지나간 24시간 알아서 뭐해!!! 앞으로 다가 올 24시간을 포함 해 3일 동안 이 엄마 키친은 휴업이란 것만 알면 돼!!!

냉장고에 그득 그득하게 남은 명절 음식들로 늬들끼리 알아서 잘 찾아 먹는거야 알았지??? 나 찾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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