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항공사는 스탠바이 듀티가 한달에 6일입니다. 스탠바이는 비행 스케쥴은 없지만 갑자기 크루가 아파서 결근을 하거나, 비행이 취소 되면서 특별편이 마련되거나 갑자기 크루가 필요할 경우, 긴급 투입되는 대기조예요. 집에서 대기할 경우는 24시간 대기 하다가 전화가 오면 2~3시간 내로 비행을 하러 가야 하고,(날씨나 어떤 이벤트로 인해 갑자기 많은 비행에 차질이 없다면 하루 전에 비행 스케쥴을 미리 받아요) 공항에서 대기할 경우는 4시간만 채우면 그 날의 스탠바이 듀티는 끝입니다. 물론 비행에 불려가지 않아도 페이는 지급 돼요. 저 처럼 다른 지역에서 베이스로 커뮤팅을 한다면 공항 대기를 하는 것이 좋죠. 4시간만 하면 듀티가 끝나고 그럼 그날 하루는 더이상 불려 갈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는 이 스탠바이 듀티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비행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씨애틀에서 애틀란타까지 커뮤팅을 해서 와야 하고, 불려가지 않을 경우, 호텔이나 크루 라운지에서 시간을 떼워야 하니까요. 그런데 점점 스케줄 비딩에 익숙해 지고, 날짜나 스탠바이 시작 시간 조정이 가능해 지면서 스탠바이 듀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게다가 동기들이랑 스탠바이 일정이 겹치면 오히려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너무 재미있거든요. 각자 집에서 싸 온 음식 나눠 먹고, 그날 안 불려가면 같이 호텔로 가거나, 아니면 공항 밖으로 나가서 맛있는거 먹으면 되니까요. 일하러 왔는데 결국 친구랑 놀고 있는 결말일 때가 종종 있어서 나름 이것도 스탠바이 듀티의 묘미더라고요.
그리고 또 땜빵 크루이기 때문에 어디로 비행갈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서프라이즈’ 선물 같은 비행을 받게 될 때도 있다는 것도 스탠바이 듀티의 매력입니다. 그런데 이번 스탠바이가 저에게 그러했죠.
6일간의 스탠바이 스케줄을 동기인 쭈 동생과 똑같이 받았거든요. 게다가 둘다 첫날은 불리지도 않았어요!! 4시간 대기 하는 동안 그동안 밀린 수다 떨다보니 금방 끝나 버렸지 뭐예요?
다음날 애틀란타에 사는 동기인 쩸이 공항에 갇혀 있는 우리들을 구제해 주러 나타났습니다. 다음 스탠바이 시작까지 시간도 많이 남았고, 더이상 공항 음식은 질려서 못 먹는 우리 사정을 잘 알기에 한국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가쟤요!!! 야호!!!! 신난드아!!!!

무제한 고기 뷔페 회식이다!!!
동료끼리 맛있는 밥 먹으면 그게 회식이지 그쵸?
일 하러 왔는데 동기들과 이런 보너스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일하러 오는게 어찌 즐겁지 않을 수가 있겠냐고요!!!

고깃집 회식의 마무리는 철판에 볶아 먹는 김치 볶음밥이 국룰이쥬?
메뉴에 없어도 재료만 있으면 즉석 조리가 가능한 N년차 주부
배 부르게 먹고 공항으로 돌아가 4시간 대기 듀티를 시작했는데… 엄훠? 오늘도 안 불렸네??? 왠열 왠열?!?!?!
쭈야! 걸즈 타임 하루 더 연장이다!!!!
다음 날, 이젠 슬슬 좀 불러 줬으면 할 때가 옵니다. 이쯤하면 밀린 수다, 입털기 다 끝났고, 이제 공항을 좀 벗어나고 싶어지거든요.
오늘은 좀 불러 줬으면… 그치만 안 불려도 나쁘지 않다 라는 나도 모르겠는 내 마음 ㅋㅋㅋ 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서로 가져온 반찬 다 털고, 한국 코스코에서 쟁여 온 누룽제비 끓여서 나름 푸짐한 아침 밥상을 차렸습니다. (이제 식량이 동나기 시작했기에 어디든 불려 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함) 근데 이렇게 밖에서 한국 음식 챙겨 와서 나눠 먹는 것도 즐겁고 잼나는 이 아줌마, 저 어쩌면 좋아요?
밥 다 먹고 상 물렸는데 띵띠리딩딩~ 하고 울라는 전화벨!!!
스탠바이 때 이 벨소리 들으면 심장박동 급상승합니다.
‘올게 왔다’
“엘리! * 라운지로 가세요! “
“저 어디로 가나요?”
“런던이요”
네에에에에?????
부리나케 갈게요~

왠열!!!! 그동안 스탠바이 때 불려간 국제선은 레이오버 없이 갔다가 바로 돌아오는 퀵턴 비행이였는데 레이오버가 있는 런던이라니!!! 게다가 난 아직 런던 못 가봤다규!!! 이번 스탠바이는 종합 선물 셋트잖아??
동기 스탠바이, 회식, 게다가 런던 레이오버!!! 그렇게 얼떨결에 불려가게 된 런던!!!
비행 끝내고 호텔 가는 길에 본 런던 거리!!! 예쁘다!!!

영국 사는 친구가 크리스마스 때 쿠키가 담긴 크리스마스 빌리지를 선물로 보내 줬었는데, 그 쿠키통과 똑같이 생긴 건물들 보니
'나, 런던 온 거 맞구나!!!'
그…런…데 밤샘 비행의 피로에는 런던도 찌그러짐요. 호텔방 도착하자 마자 창밖의 런던 거리는 커텐으로 매몰차게 가려지고, 고대로 암흑의 방에서 자빠링!!!
사실 제가 일한 비행은 전날 런던 비행이 취소 되면서 다음 날 급하게 생겨 난 특별 비행편이라 보통 24시간 받게 되는 레이오버가 아닌, 12시간의 짧은 레이오버 였어요. 그래서 호텔에서 잠만 자고 후딱 돌아가야 하는 비행이였죠. 그렇지만 영국까지 와서 잠만 자고 갈 수는 없다!!! 여기까지 왔는데 피쉬앤칩스는 먹고 가야지!! 하며 흐물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씻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와서 찬 공기 쐬니까 또 정신이 들더라고요?
앗!!! 빨간 공중 전화 박스!!!

낙엽 진 런던의 어느 거리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여도 내가 가 보지 못한 낯선 곳을 걸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구글 검색으로 찾은 피쉬 앤 칩스 식당
레스토랑일 줄 알았는데 그냥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이였어요.
튀긴 생선에 튀긴 감자, 게다가 양도 많아서 마지막엔 너무 기름져서 다 먹진 못 했지만
‘런던에서 피쉬 앤 칩스는 먹고 왔드아!!!’

그리고 런던 가면 스타킹 꼭 사오라는 우리 동기 루쌰언니 말에 스타킹 잔뜩 쟁여 왔습니다. 그런데 사이즈 에러!!! 아시아 사이즈 라지 생각 했는데, 롱다리에 라지 사이즈였나봐요. 스타킹이 거북이 목 주름 처럼 주름지고 흘러내려.. ㅠ.ㅠ

울 애들 줄려고 산 영국산 포켓몬 카드!! 저번에 한국 데려 갔을 때 편의점에서 포켓몬 카드 사달라는거 집에 많은데 뭘 또 사냐고 안 사줬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그러드라고요.
“한국 포켓몬 카드는 한국어로 씌여져 있어서 더 특별한건데, 그래서 사고 싶었어”
그걸 그때 말하지 왜 이제서야!!! 그래서 그 이후로 제가 한국 비행 갈 때마다 포켓몬 카드 살려고 돌아 다니기를 몇달을 했거든요.
“아들들아!!! 이번엔 영국 왔으니까 영국산 포켓몬 카드다 “
"엄마, 영국산 포켓몬 카드와 미국산 포켓몬 카드는 똑같아! 영어잖아!!!"

아 자쉭들아!!! 딸라 아니고 파운드 주고 산게 달라!!!!


쇼핑의 마무리는 커피 한사발!! 영국 커피 맛 좀 볼끄나????

으응?? 아이스 커피를 종이컵에 주면 커피 감성이 없잖아??
쇼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화장하고 비행 준비를 마쳤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런던이 그렇게 예쁘다는데...

비록 런던 크리스마스 마켓은 못 가봤지만 호텔 로비에서나마 크리스마스 분위기 살짝 맛만 봤습니다.

엄마가 한국인이라며 살갑게 말걸어준 따뜻했던 크루

이번 종합 선물 셋트의 하이라이트!!! 돌아가는 비행은 승객이 한명도 없는 페리 플라잇!!!


그래서 퍼스트 클래스에서 앉아서 갑니다. 공짜 항공권으로 여행 갈 때나 퍼스트 클래스 탈 수 있으려나 했더니만 생애 첫 퍼스트 클래스를 이렇게 일하면서 타게 됐네요. 대신 서비스는 셀프 서비스입니다. 배 고프면 크루밀 셀프로 데워서 셀프로 가져와 먹고, 셀프로 치워야 하죠. 그래도 그게 어딘가요?!?!?

스탠바이때 먹을려고 쟁여 둔 맛징어 냠냠 하면서

영화 보면서, 이불 덮고 누워서 애틀란타까지 갑니다. 물론 페리 플라잇이라고 듀티가 없는건 아니예요. 비행기 보딩 도어 듀티와 이륙 하는 동안은 유니폼 입고, 점프싯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비행기가 10000피트 상공에 도달하고 나면 편안한 옷으로 갈아 입고, 승객 좌석에 앉아 갈 수 있어요. 반대로 비행기가 하강을 시작하면 다시 유니폼으로 갈아 입고, 안전 업무를 다 완료 한 후에 점프싯에 앉아서 착륙 하고, 도어 듀티를 완료 해야 합니다.

중간에 자다 깨서 밥도 챙겨 먹고요.

저 이렇게 편하게 누워 왔는데 월급 받아도 되는거예요? 이게 바로 스탠바이 듀티의 매력이더라고요.
서프라이즈 비행, 퍼스트 클래스에서 잠자며 왔지만 비행 수당 고~대로 다 받는 페리 플라잇!
퍼스트 클래스의 첫경험이 더욱더 특별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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