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달의 스탠바이 듀티
이제는 스탠바이 듀티의 매력을 알아 버려서 스탠바이를 위해 커뮤팅 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물론 5시간의 비행기 출퇴근은 쉽지 않아요. 특히 비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하는 비행이 가장 괴롭고 힘들어요. 몸이 퉁퉁 붓고, 체력은 바닥이고, 절여지다 못해 삭아 버린 파김치의 모습 그대로거든요.
그렇지만 출근길은 그래도 좀 다르죠. 이번엔 어디로 불려갈까? 하는 약간의 설레는 마음으로 가니까요. 씨애틀에서 출발해서 애틀란타에 내려 크루 라운지로 걸어가는데 창 밖의 뷰가…

멋진 델타 비행기와 비 내리는 창 밖이 너무 예뻐 보여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커피를 사들고 와서 한적한 게이트 근처 의자에 앉아 한동안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리고 이 일은 또 나에게 무엇을 돌려주는지… 그냥 지금 저의 현재가 너무 만족스럽고 감사한 마음 밖에 없기에, 커뮤팅이 비록 힘들더라도 불평 말자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스탠바이 때, 공항 밖을 거의 나가지 않기 때문에 공항에서 음식을 사 먹는데, 공항 음식은 더 이상 물려서 먹고 싶지 않아 집에서 음식을 싸 옵니다. 그런데 이번엔 햇반이 똑 떨어져서 애틀란타 사는 동기 쩸에게 햇반 좀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만…
세상에!!!! 갓지은 밥에 계란말이까지 해 왔더라고요.
역시 동기 사랑 최고!!!

6일의 스탠바이 중, 2일은 운 좋게 (?) 불려가지 않았고 3일째에 드디어 크루 스케줄링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South Dakota주의 Sioux falls 라는 곳입니다. 기내에 탑승하자 마자 일하던 크루가 저를 본 적이 있다며, 애틀란타의 터미널간 이동하는 트레인에서 저를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자기가 말도 걸었다고 아는 척을 하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생각이 났습니다. 약 8000명이 일하는 애틀란타에서 같이 일한 사람도 기억하기 힘든데 트레인에서 잠시 마주쳐 인사 나눈 저를 기억하고 있다니!!!
그런데 그 이유가 웃겼어요. 무슨 영화의 영화 배우 닮았다는거죠.
닮았다는 영화 배우가 사람 역할이여야 할텐데…

그럴줄 알았지!!!
외계인이였다!!! ㅠ.ㅠ

루쌰언니에게 닮았냐고 사진 보여 줬더니 안 닮았다 해서 가슴을 쓸어 내림요 ㅋㅋㅋㅋ
비행을 끝내고 호텔룸 키를 받아 들고 올라가는데 그 크루가 다음 날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같이 점심 먹자고 해서 그러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여기가 나름 관광지라니까 밥 먹으러 가기 전에 한번 둘러나 보자 하고 그 친구와 함께 수스폴로 갔어요.
폭포라 그래서 그래도 나름 규모가 좀 있는 폭포겠거니 했는데…

머야??? 동네 개울 징검다리 수준이잖아!!!
그래도 폭포가 있긴 있더라고요.

폭포는 별로였지만 같이 함께 다녔던 크루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 시간이 즐거웠어요.

아이들 키우는 엄마로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 한번 비행을 나가게 되면 2~3일 집을 비우게 되는 승무원 직업의 특성상, 일과 집안일, 가족들과 삶의 균형을 맞춰 나가는 이야기들… 선배 승무원으로서 경험해 온 이야기들이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점심 식사는 근처에 한국 치킨집이 있다고 해서 가 봤어요.

그런데 메뉴는 한국 식당+ 일본 식당인데 정작 일하시는 분들은 중국인인 정체 불명의 식당..
그동안의 경험상 이런 식당은 그 어떤 음식도 제대로 된 맛을 못 내던데… 불안한 마음으로 김치 라면과 양념 치킨, 포테이토 핫도그를 주문했습니다. 네, 저 혼자서 다~ 먹는거 맞고요 ㅎㅎㅎㅎ
보기에는 그럴싸 했는데… 역시나 라면은 일본 라면맛도 아니고, 한국 김치 라면 맛도 아니고 그 어느 쪽도 아니였습니다. 게다가 짜기는 또 어찌나 짠지 물을 반컵을 들이 붓고도 짰어요 양념 치킨도 당연히 한국식 양념 치킨이 아니였죠.
아까워 내돈 ~

그나마 치즈 콘도그가 제일 본래의 맛을 잘 살렸더란…
그래도 미국의 깡촌 구석이라면 깡촌 구석인 이곳에 아시안 음식이 있었기에 물려 버린 미국 음식 먹는 것 보다는 나았습니다.
함께 비행했던 크루는 이틀만에 정말 많이 친해져서 연락처도 주고 받고, 자기가 살고 있는 새크라멘토로 비행 올 일 있으면 꼭 연락 하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한국 식당이 있는데 거기 꼭 데려가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매번 비행할 때마다 크루가 바뀌기 때문에 한번 비행하고 나면 두번 다시 볼 일 없는 크루가 대부분이고, 친구가 되는 일도 드물지만 이렇게 또 짧은 비행으로 인연을 만들기도 해요. 새크라멘토로 가게 되면 꼭 연락 하겠다고 약속하고서는 저의 마지막 남은 스탠바이 스케줄에 비행이 잡힌게 있는지 확인 해 보라는 그녀의 말에 스케줄 앱을 열었더니 공항 코드 SMF
여기가 어디야??? 하고 물었더니
뜨아아아~

하며 놀란 얼굴을 하고 저를 보던 그녀는 갑자기 흥분하며
“새크라멘토잖아!!!!너 새크라멘토로 오는거야, 내일 호텔 도착하면 연락해, 내가 호텔로 데리러 갈게!!! 너무 잘됐다. 너무 잘됐다!!”
라며 아주 신이나서 물개 박수 치더라고요. 아~ 진심이였구나, 새크라멘토 오면 연락하라는 말!!!!

그렇게 그녀는 비행을 마치고 집이 있는 새크로멘토로 돌아 갔고, 저는 다음날 새크라멘토로 비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녀는 저를 데리러 호텔까지 와 주었어요..


전날 국적 불명의 음식에 실망했던 저를 대만족 시킬 제대로 된 한국 식당에 데려가 주겠다며 그녀가 절 데려 간 곳!!!
세상에 마상에!!!

나, 지금 새크라멘토 잔칫집 온겨!?!
제육 볶음과 순두부 찌개, 파전 !!!딸려 나온 반찬으로도 이미 눈호강 했는데 진짜 어느것 하나 맛 없는 반찬이 없더라고요.
여기 진짜 최고!!!! 새크라멘토 맛집 찾으시는 분들께 강추!!! YD tofu house 입니다.


지금껏 미국에서 레이오버 하면서 먹었던 한국 식당 중 최고!!!
데리러 와주고, 이렇게 맛있는 집까지 데려 와 준 것도 고마운데 진짜로 밥까지 사버린 친구!!! 그저께 처음 만난 친구인데 십년지기처럼 밥값 서로 낸다고 서로 카드 들고 실랑이 한거 실화냐고?!?!!
결국 그녀가 밥 값을 내고, 제가 디저트를 사기로 하고, 대신 그녀가 씨애틀로 오면 제가 맛있는 곳을 데려 가기로 했죠.

디저트는 아시안 빙수 가게였습니다.
한국식 빙수와는 좀 다른 느낌이였습니다. 우베가 들어간 빙수 맛으로 골랐는데 오오~ 맛있었어요.

이 친구 덕분에 스탠바이 하다 불려간 비행도 즐겁게 보내다 왔고, 다음 새크라멘토 비행도 즐겁게 할 수 있었답니다.

제가 집을 떠나 있는 사이 우리 와플이가 상을 받게 되었다며 부모님이 축하해 주러 오라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비행은 즐겁지만 때로는 이런 중요한 이벤트를 놓칠 때가 있어서 아쉽긴해요. 참석하기 위해서 스케줄을 바꿔 보려 했지만 때에 따라서는 또 쉽게 안 바꿔지기도 하거든요. 대신 와플이 아부지가 시상식에 참석해서 축하 해 주었어요. 제가 집에 없으니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훨씬 높아 졌다는 것도 큰 긍정적인 변화이긴 합니다.

저도 제 일을 하면서 스스로 성장했지만 그 사이에 우리 와플이도 훌쩍 성장했어요. 꽤 어른스러워졌고, 집안일도 돕고, 엄마의 마음도 읽을 줄 아는 아이로 커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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