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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승무원 일기

승무원 엄마의 여름 방학 계획

by 스마일 엘리 202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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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짓기 학원 좀 다녀야 겠어요. 제목 생각만 한 20분 한 듯 합니다. 
승무원 엄마의 여름 방학 계획이라니… 여름 방학에 아이들을 위한 뭔가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 같은 제목이지만… 실상은 전혀 반대라서요. 
 
저의 찐친 같은 구독자님들은 역시나 우리 와플이와 제제 이야기를 궁금해 해주시고, 제가 승무원이 된 후에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덧글을 주셔서 그 이야기들도 포스팅을 해야겠다 싶었어요. 저희 아이들 잊지 않고 덧글 주셔서 감사해요. 

미국에서 일을 시작하거나 특히 집을 비워야 하는 일이 많은 승무원 일을 생각하고 계시는 분이라면 아이 돌보는 일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궁금하실거예요. 
 
저는 사실 와플이 18개월 때 미국으로 온 뒤로, 둘째 제제를 출산하고 지금껏 그 누구의 육아 도움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애를 봐 줄 가족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항상 육아는 스스로 해결해야 했어요. 그래서 여름 방학 계획 플랜 A는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썸머 캠프에 보내는 것이였어요. 작년에 제가 세포라에 일할 때도 여름 방학 시작 후 약 2주간, 여름 방학 끝나기 전 약 한달 동안 YMCA에서 운영하는 썸머캠프에 보냈거든요. 그리고 방학 중간 2주 반은 시댁이 있는 위스콘신에 가서 사촌들과 뛰어 놀고,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 받으면서 놀다 오게 했고요. 이 계획이 아이들에게도 좋았고, 10년이 넘도록 둘만의 휴식을 가지지 못했던 남편과 저에게도 좋았기에 올해도 썸머캠프와 시댁 4주의 조합으로 계획을 짰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시댁에 적응을 못하거나 가기 싫다고 하면 썸머캠프 8주의 플랜 B가 준비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운영하는 썸머캠프 1주일 다녀 보더니 와플이가 더이상 썸머 캠프에 가기 싫다며 위스콘신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방학 내내 있겠다지 뭐예요? 그래서 생각지도 못한 플랜 C로 급변경, 시어머님과 상의를 한 후,  흔쾌히 오케이 하셔서 아이들은 여름 방학 두달 동안 시댁인 위스콘신에서 지내게 되었답니다. 
 
작년에 온 가족 다~ 위스콘신 가는 비행기표를 끊어야 했지만, (그것도 독립 기념일 연휴 껴서 가는 거라 최성수기였는데, 비행기 놓쳐서 다시 재구매 해야 했던 속쓰린 기억) 이번엔 델타 항공 승무원 엄마의 혜택으로 공짜로 아이들을 데리고 위스콘신에 갈 수 있어서 뿌듯 뿌듯~ 했습니다. 
 
그.러.나. 공짜 티켓은 스탠바이 티켓이라 남는 자리가 있어야 탄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지요. 
아이들을 데리고 씨애틀 공항으로 왔지만 초초초 막내 승무원인 저는 시니어리티에 밀려 결국 비행기를 못탔습니다. 
 

“얘들아, 이불 펴라!!! 노숙 확정이다!!!”

 
타지 못한 비행기는 밤 12시 비행기였고, 다음 비행기는 새벽 6시, 이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갔다가 자고 온다고 해도 3시간 밖에 못 자는지라 그냥 공항 노숙을 결정 했어요. 
 
이 애미는 애틀란타로 출퇴근하다 보니 이제 노숙이 일상이라 더이상 
"노.숙.은. 두.려.운.것.이.아.니.다!!! "
 
게다가 아이들도 여름마다 캠핑을 자주 다니다 보니 잠자리가 불편한 것에 불평하지 않고 비행기 놓칠 것도 이미 각오를 하고 있어서, 공항 노숙이라는 말에도 동공 흔들림 조차 없었습니다. 
 
숙련된 공항 노숙자 애미의 사전 정보에 따라 잠을 잘 수 있는 의자가 있는 게이트로 이동해서 준비해 온 담요와 목베개를 베고 잠을 잡니다. 


 
그렇게 약 4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첫 비행기를 타러 게이트로 갔습니다. 다행히 다음 비행기는 여유가 있어서 아이들과 저 좌석을 확정 받고 무사히 탑승 했어요. 
 
뒤에서 보니 와플이와 제제는 벌써 스크린의 메뉴를 섭렵한 후, 둘이서 게임 하는 중입니다. 


 
드디어 미네아 폴리스 도착!!! 


 
원래 계획은 미네아 폴리스에서 그린베이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 타고, 시부모님이 아이들을 그린베이 공항에서 픽업 해 갈 에정이였지만 그린베이로 가는 비행기가 소형 비행기라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더라고요. 결국 세 대를 못 타고, 계획을 급변경 해서 시부모님이 3시간 30분을 운전해서 미네아 폴리스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픽업해 가고, 저는 다시 씨애틀 집으로 돌아 가야 했습니다. 
 
왜냐면.. 이번엔 또 남편을 데리고 위스콘신으로 가야 하거든요.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비행기 좌석이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남편 혼자 스탠바이 티켓으로 오라고 하기가 미안하더라고요. 함께 고생할 고생 동지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전 제 몸을 또 불살라야 했죠. 
 
진짜로 불살랐다니까요. 
 
6일짜리 스탠바이에서 마지막 6일 째 9시간짜리 당일치기 비행을 하고 애틀란타로 돌아와 6시간 라운지에서 노숙을 하고, 5시간 비행기를 타고 씨애틀로 돌아 왔거든요. 그리고 1시간 운전을 해서 집에 돌아 온 후, 약 세시간 정도 낮잠을 잤을까요? 그리곤 아이들 챙겨 먹이고, 짐 싸고, 또 밤 9시에 공항으로 나온거죠. 
그런데 또 공항 노숙, 3시간 비행기 타고 미네아 폴리스 갔다가 아이들을 시부모님께 데려다 주고 또 다시 3시간 비행기 타고 씨애틀로 돌아와야 하는데 델타 비행기는 자리가 없어서 마음 졸이다가 알래스카 항공은 자리가 있지 않을까 해서 가봤더니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무사히 씨애틀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그리곤 또 1시간 운전해서 집 갔다가 남편을 픽업해서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서 미네아 폴리스로 가는 일정이였어요. 제 몸을 갉아 먹고 있다는 느낌을 이때 느껴 봤습니다. 
 
아무튼 다행스럽게도 집으로 가는 알래스카 항공을 탈 수 있어서 한 숨 돌릴 수 있었어요. 항상 느끼지만 알래스카 항공 승무원들은 같은 승무원들에게 너무 친절하고 다정해요. 이번에도 제가 탈 때 반갑게 인사해 주고, 필요한거 없냐고 물어봐 주더니 나중에 스낵 서비스 할 때 제가 물 한잔 달라고 했더니 아예 그냥 물을 이렇게 통째로 주셨어요. 


 
물 마시고 힘내서 1시간 운전으로 무사히 집 도착, 단 10분도 눈 붙일 틈도 없이 집안 일을 하다가  다시 짐과 남편을 챙겨서 새벽 3시에 씨애틀 공항으로 출발~ 
 

이틀을 거의 못 자다시피 했기에 밥이라도 잘 챙겨 먹어야겠다 싶어 미네아 폴리스에 내리자 마자 한식당으로 가서 보쌈과 육개장을 시켜 먹었습니다.

제가 너무 피곤해 하니 남편은 그냥 호텔에서 1박하고 다음 날 시댁으로 가자고 해서 약 3일만에 제대로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잤어요. 
 
역시 사람은 잠자리가 편해야… 

다음 날 너무 상쾌하고 기분 좋게 일어났거든요.  창밖으로 보이는 위스콘신 시골 풍경에 마음이 여유로워 졌어요. 


 
왜 이렇게 무리한 스케쥴로 위스콘신에 갔어야 했느냐 하면요… 
 
우리 제제의 생일 파티를 위스콘신에서 하기로 했거든요.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동안 한번도 친척들을 초대한 생일 파티는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마침, 이번 방학에 시댁에 가 있는 동안 제제의 생일이 다가와서 와플이 제제의 모든 사촌들을 다 초대해서 가족들의 축하를 받는 생일 파티를 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미리 장소도 에약해 두었고, 사촌들만 초대해도 벌써 12명, 아주 시끌벅적한 생일 파티였어요. 
 

 
오늘의 생일 주인공 제제~ 벌써 8살이 되었답니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동안 풍선 불어서 띄우고, 생일 테이블 준비하고, 이 애미는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도 집에서 하는 생일 파티 보다는 훨씬 수월했죠 뭐. 
 
음식 준비 할 것도 없이 파티 장소에서 판매하는 피자로 끝~ (판매 음식 외에는 외부 음식 반입이 안되니 사실 너무 맘에 드는 금지 조항) 


 
해마다 생일 케이크는 직접 만들어 주겠다던 애미의 야심찬 다짐은 워킹맘이 된 이후로 뻘소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냥 월마트표 케이크


처음엔 미안한 마음도 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챙겨 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뭐.. 하는 뻔뻔함으로 바뀌었어요. 
 

이 생일 파티 챙겨 줄려고 이 애미 진짜 불살랐다 아들아!!!! 
 
어머니!!! 두달 동안 저는 육아를 위한 휴직이 아니라, 육아에서 휴직을 좀 하겠습니다. 
 
두달간의 긴긴 여름 방학, 승무원 워킹맘은 이렇게 살아 남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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