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항공의 승무원으로 입사하게 되면 6개월간 프로베이션 (수습 기간)이 있어요. 이 기간 동안은 지각도, 결근도,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몸이 안 좋거나 일이 생기면 결근을 해야 하겠지만 해서 좋을게 없다는 것은 확실해요. 그래서 전 앞으로 6개월간은 절대로 안 아플 예정입니다. ㅎㅎㅎ 문제는 제가 컨트롤 가능한 제 몸이 아닐 경우가 있죠.
바로 얼마전 있었던 일인데요, 저 처럼 비행기를 타고 출퇴근 하는 커뮤터들은 비행 스케쥴에 따라 결근이나 지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이것이 커뮤팅 하는 승무원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항상 스케쥴이 있는 하루 전에 베이스에 도착 하도록 하고 있고, 회사에서도 최소한 비행 2편 정도를 탈려고 했던 노력을 증거로 제출해야 제 책임으로 인한 지각이나 결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 줍니다. 그래서 전 항상 비행 두편을 예약 해 두고, 첫번째 비행편은 스탠바이 티켓으로, 두번째 비행편은 점프싯을 예약해요. (점프싯은 예약하기만 하면 무조건 탈 수 있지만 보통 1개 정도 밖에 여유가 없어 이것도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확보할 수 없어요. 물론 기종에 따라 3개도 있지만 제가 오가는 노선은 거의 대부분이 1개예요)
언제나처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저도 베이스인 애틀란타로 가기 위해 시간 맞춰 공항에 도착했는데 제가 타야 할 비행편이 저녁 9시 30분 비행기로 지연이 되어 버린겁니다. 전 다음날 새벽 5시부터 애틀란타 공항에서 스탠바이 스케쥴이 있어서 무조건 새벽 4시에는 도착해야 하는데 9시 반 비행기를 탈 경우, 애틀란타가 3시간 빠른 시차를 감안하면 새벽 4시반에 도착하게 되는 스케쥴이라 지각이 되는거죠. 4시반 도착이래도, 비행기에서 내리고, 스탠바이 장소인 크루 라운지까지 갈려면 30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점프싯을 예약 해 둔 비행편을 무조건 타야 하는데 솔직히 점프싯으로 커뮤팅은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 피하고 싶거든요. 점프싯에서는 잘 수도 없고, 휴대폰을 하는 것도 금지이고요. 그리고 점프싯을 탈 수 있는 복장도 엄격해서 편안하게 티셔츠,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탈 수도 없어요. 그러나 이 비행편을 못타면 전 빼박 지각이 되는거라 무조건 타야만 했습니다. 물론 남는 좌석이 있으면 점프싯이 아닌 일반 좌석에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이미 이 날 비행편들이 딜레이가 많이 되면서 다음 비행편으로 자동 예약된 승객들로 오버 부킹 상태라 저에게 돌아 올 남은 좌석은 없었어요. 그런데 또 이 비행편도 오후 5시 반으로 딜레이가 되었지 뭐예요?!?!
더 이상의 딜레이는 안돼애애애애!!!!! 지.각.만.은. 막.아.야.해!!!
5시 반에 출발하면 애틀란타에 자정이 넘은 12시 반 도착이고 크루 라운지에 새벽 1시 좀 넘어 도착이니까 지각은 안하겠지만 5시부터 스탠바이라 몇시간 쪽잠 자고 일어나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아주 피곤한 일정이 될게 뻔했습니다. 애틀란타에 크래쉬패드 (숙소)를 계약 해 두었지만 공항에서 거기까지 밤 늦게 가는 것도 일이고, 귀찮은데다 새벽 일찍 일어나 다시 우버를 불러 공항으로 오는 게 더 귀찮아 그냥 크루 라운지에서 잘 예정이였거든요.
이왕 이렇게 딜레이 된거, 출발 전에 미리 쪽잠이라도 자두자 싶어 씨애틀 공항에 있는 델타 항공 크루 라운지로 가서 이불 뒤집어 쓰고 좀 잘려고 노력해 봤는데...이상하게도 전 씨애틀 크루가 아니라 그런지 씨애틀 크루 라운지가 꼭 남의 집 같이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서 못 자겠더라고요. 내 미래의 라운지인것은 분명한데... 그렇게 뒤척이다가 출발 1시간을 앞두고 게이트로 갈려고 나왔는데... 세상에 마상에!!!
제가 작년 독립 기념일에 시큐리티 체크 줄 때문에 비행기 놓친 포스팅 아시죠???
2023.07.03 - [미국 생활기] - 90불 아끼려다 대환장 파티
그거 버금가도록 긴 줄이 꼬불 꼬불 꼬불~ 물론 저는 크루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가서 아이디 스캔하고 통과하면 되지만 종종 시큐리티로 가서 짐 검사를 하도록 뜨는 날도 있기 때문에 불안 불안 했습니다. 역시나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ㅠ.ㅠ
당!첨! 저~ 쪽으로 가서 짐 검사를 하라네요 ㅠ.ㅠ 근데 제가 사복을 입고 있어서 승객들과 같이 줄을 서야 한다는 것!!! 빠른 통과를 하려면 유니폼을 입어야 하거든요.
'시간이 없어!!!! 이 비행기를 놓치면 나는 애틀란타에 제 시간에 도착 못해!!! 무조건 이 비행기를 타야 해!!! 답은 하나!! 얼른 유니폼을 갈아 입어야 해!!!'
짐가방 들고 미친 듯이 뛰어 화장실로 가서 유니폼을 잽싸게 갈아입고 겨우겨우 빠른 줄로 들어갔지만 그래도 줄이 너무 길어 승객들과 함께 줄 서서 기다려야 했더니 뒤에 줄 서 있던 승객이 " 넌 승무원인데도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거야? 가엽게시리!!!" 그러게나 말입니다. ㅎㅎㅎ 그래도 어찌저찌 빠르게~ 시큐리티를 통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화장도 안한 얼굴로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탑승 구역에 들어 오자 마자 다시 또 미친 듯이 옷을 갈아 입었어요. 비행기 타기 전부터 이미 기력 소진 다하고 초췌해 진 모습으로 비행기에 제일 먼저 탔는데...
어머!!! 저와 함께 트레이닝 졸업한 제 동기가 비행 크루더라고요. 쌩얼은 부끄러웠으나 무쟈게 반가웠어요.
둘이서 얼싸 안고 팔짝 팔짝 뛰며 좋아했지만 그 친구와 저의 점프싯 자리가 떨어져 있어서 이후로의 대화는 거의 불가능 했습니다. 그래도 동기가 서비스 하는 비행이라 그런지 중간 중간에 와서 말 걸어 주고, 챙겨 주고 해서 뭔가 따뜻했어요.
하지만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들 도시락 싸서 학교 보내고, 집안 일 좀 하다가 뛰쳐 나온 탓에 피곤해 죽겠는데 점프싯에서는 잘 수가 없으니 아주 죽겠는거죠. 안 잘려고 안 잘려고 감겨 오는 눈을 부릅뜨고, 도리질을 해댔지만 그 불편한 점프싯에서도 세상 무거울 수 없는 눈꺼풀...
잠과의 전쟁으로 약 5시간을 버티고 애틀란타 도착하니 새벽 1시, 5시 스탠바이 스케쥴에 맞추려면 새벽 3시반에는 일어나야 하니 겨우 2시간 잘 수 있지만 그렇게라도 쪽잠을 자둬야 했습니다. 새벽 3시반 알람이 울렸을 때 딱 3시간만 더 잘 수 있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이였지만, 스탠바이 4시간만 잘 버텨서 불리지 않으면 하루종일 잘 수 있으니 참자 참자~ 스스로를 달래며 씻고 화장하고 유니폼 갈아 입고 대기 상태준비 완료 했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인 동기와 동생의 스탠바이 스케쥴과 비행 스케쥴이 겹쳐서 크루 라운지에 만나게 되어
또 새벽부터 김치찌개와 라면에 밥 데워 한상 거하게 먹고 나니 걸려 온 전화... 그리고 제가 투입된 스케쥴은 로스앤젤레스!!!
안 불려가거나, 짧은 비행을 받길 원했는데 왕복 9시간짜리 로스앤젤레스!! 게다가 호텔에 쉬는 것도 아닌 당일치기로 돌아와야 하는 퀵턴!! 거의 9시간을 쉬는 시간 없이 비행해야 하는 스케쥴에 불려간거죠. ㅠ.ㅠ
진짜 나 이러다가 병 나는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너무너무 피곤 했지만 내 새끼들 신생아 시절의 정신력으로 버티며 비행 했어요.
그 와중에 크루밀은 또 왜 이렇게 맛있는겨~ 역시나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밥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또 점심으로 먹은 크루밀!
피곤은 했지만 배는 불렀다!!!!
9시간의 비행을 끝내고 돌아오니 저녁 7시가 넘은 시간...
크래쉬패드로 돌아갈 기운도 없고 (크래쉬패드 계약은 왜 한겨?!?!) 그냥 얼른 크루 라운지로 가서 리클라이너 펼쳐 놓고 자고 싶은 생각 뿐!!!!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음 날 비행 스케쥴이 오후 1시 반이라서 푹~ 잘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이 이틀짜리 비행이 끝나면 5일 휴무!!! 진짜 어떻게 잤는지도 모르게 곧바로 잠들어 아주 푹~ 꿀잠 자고 일어 났습니다.
해 보기 전엔 알지 못했던 커뮤팅 하는 미국 승무원의 삶... 역시나 커뮤팅은 또 하나의 직업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전 저의 장래희망이 다시 바뀌었어요.
장래 희망! 커뮤팅 없는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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