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있는 도시가 아닌, 다른 도시를 베이스로 배정 받으면 그 도시로 비행기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합니다.
아침 출근, 저녁 퇴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한번 출근하면 2~3일 짜리 비행을 하고 오거나, 스탠바이와 비행 스케쥴이 겹치면 6일 후에 퇴근을 하게 돼요. 정확하게 말하면 비행이나 스탠바이 하루 전에 베이스 도시에 가 있어야 하니 7일 후에 퇴근이죠.
가정이 있고,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이런 스케쥴이라니… 저도 처음엔 너무 절망적이였답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합격을 했고, 남편의 반대에도 최후 통첩을 날리면서까지 이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리고 그 힘든 7주간의 트레이닝도 겨우 끝냈는데… 이렇게 매번 6~7일씩 집에 가지 못한다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 수 밖에요.
그러나 다~ 살아가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베이스에서의 스케쥴을 누군가가 가져 갈 수 있도록 모두 드랍하고, 누군가가 가져간 후에는 제가 살고 있는 씨애틀에서 누군가가 드랍한 스케쥴을 픽업 하면 되거든요.
물론 아무도 안 가져갈 수 있지만 일단은 던져 놓고 보는거죠. 밑져야 본 전이니까.
같이 졸업한 동기의 스탠바이 스케쥴을 누가 가져갔다며 좋아하길래 부러워 하며 제 스케쥴도 가져가길 기다렸지만 결국 제가 출발해야 하는 날까지 아무도 안 가져 갔길래 저는 공항으로 나섰습니다.
그동안 긴 트레이닝과 오리엔테이션 등으로 제가 두달 동안 집에 없었던 터라 우리 와플이는
“엄마, 도시락으로 볶음밥 싸 줄 수 있어? “ 라고 부탁했는데… 결국 그 부탁을 못 들어주고 일요일 새벽 3시에 집을 나섰어요. 봄방학이 끝나는 주 일요일이라 비행기 좌석도 없어서 승무원들이 앉는 점프싯에 앉아서 5시간을 가야 하는 고된 여정지만 그렇게라도 출근 비행기를 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고 위안하며 뱅기를 탔습니다.
커뮤팅 (출퇴근)을 위해서 점프싯에 처음 앉아 봤는데 마음이 여간 불편한게 아니더라고요. 일 하는 크루들이 앉는 자리이기 때문에 서비스 준비를 위해서 카트를 준비하고, 카트를 넣고 빼고 분주한데 저만 앉아 있기가 눈치가 보이고 그래서 옆에서 조금이라도 도울게 없나 하며 사부작 사부작 돕긴 했지만… 왠지 안 돕는게 돕는 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도 일하는 크루들이 얼마나 또 친절한지…
씨애틀에서 커뮤팅을 하기 위해 새벽 비행기를 탔고, 집 나오기 전인 새벽 3시까지 빨래 개고, 집안 일 하다가 왔다 하니 좀 쉬라며 창문을 종이로 가려 주더라고요.
뒷갤리는 또 춥기는 어찌나 추운지… 덜덜 떨면서 추워 하니까
세상에 마상에!!!
물병에다가 뜨거운 물을 넣어서 안고 있으라고 주지 뭐예요 ?
선배 크루의 이 따수움!!!!!
덕분에 점프싯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편안하게 5시간 잘 왔다는거 아니겠습니까??
그… 그…런데???
착륙을 10분 앞 둔 시점에 제 스케쥴을 확인하니 다음날 3일짜리 스탠바이 스케쥴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댜?!?!?!
어머!! 왠일!!!
누군가가 제 3일짜리 스탠바이 스케쥴을 픽업해버려서 제 스케쥴에서 사라져 버린거예요.
어..어엇!!!!
이…거…. 좋아해야해? 아닌가? 슬퍼 해야 하는건가? 스케쥴이 사라져서 집에 다시 갈 수 있어서 좋은데… 5시간을 실컷 뱅기타고 왔는데 이제서야 사라져서 다시 5시간을 비행기 타고 다시 돌아 가야 하니 슬퍼 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뭔지 모르겠지만 딱 하나!!! 저를 기쁘게 한건, 우리 와플이가 부탁했던 볶음밥 도시락을 싸 줄 수 있다는 사실이였어요.
착륙 하자 마자, 돌아갈 다음 비행기를 예약하고, 시간이 좀 남아서 크루 라운지로 갔습니다. 비상 식량으로 챙겨온 컵밥을 하나 먹고, 다시 게이트로 돌아가 씨애틀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탑승!
역시나 남은건 점프싯 밖에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 점프싯이라도 남아 있는게 감사 할 따름이죠.
크루들에게 인사를 하고, 쿠크다스 하나씩 돌리고, 오늘 새벽 3시에 나와서 5시간 뱅기 타고 스탠바이 하러 왔는데 스탠바이 사라져서 도로 집에 간다고 하니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는 좀 쉬라고… 도와 줄거 없냐니까 도울거 없다고 그냥 너는 쉬라고, 커뮷팅 자체가 일이라고
그렇게 또 조금은 편하게… 그러나 여전히 좀 불편하게 앉아서 오는데…
이 따수운 크루들이 출퇴근으로 10시간 점프싯 앉아 가는 햇병아리 신입 크루가 불쌍했는지 크루밀이 남았다며 먹으라고 가져다 주지 않겠어요?
그래서 득템한 비프 스테이크!
근데 고기는 또 왜 이렇게 야들야들하고 맛있는거야?!?!?!
그렇게 크루들의 보살핌 속에서 5시간 뱅기타고 가서 컵밥 한개 먹고, 다시 5시간 뱅기 타고 돌아 온 썰 입니다.
새벽 3시에 집에서 나와서 집에 돌아가니 밤 9시…
그래도 집에 오니 내 집이 세상 편하고 좋더라고요. 그리고 다음날 우리 와플이 볶음밥 싸 줄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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