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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세포라 일기

미국 세포라 일기- 미국에서 도둑놈들에게 감사한 이유

by 스마일 엘리 2023.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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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세포라에 일하는 동안 자잘한 도난 사건들을 많이 겪었는데, 사실 그동안 손 떨리게 무서운 도난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은 지역 뉴스에도 나올 정도 였고, 또 미국 살면서 미국의 어두운 한 면을 직접 깨닫게 되었던 일이 있어서 그 얘길 해 볼까 합니다.

 

아마 작년 이맘 때 쯤이였을 것 같은데 저녁 한가한 시간에 가가양과 저 둘이서 근무를 하고 있었어요. 저희 매장에는 계산대가 정면 입구를 바라보고 있고, 계산대의 오른쪽으로는 향수 코너가 있어요.

 

아무래도 향수가 고가제품들이기도 하고, 도난도 가장 빈번해서 계산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게 아닐까 하는 제 뇌피셜...

아무튼 그날 따라 세포라 매장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는데 키가 큰 남성이 후드티로 머리를 덮어 쓰고, 검정 스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백팩을 메고 향수 코너로 직진 하더라고요.

이때는 제가 세포라 일을 시작한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던 때라 그것이 도둑들의 기본 착장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전 해맑게 " 하와유 투데이" 하며 인사를 했는데 눈길도 안주고 저를 지나쳐 향수 코너로 가더군요.

 

그러나 도난 방지 부서에서 일을 하는 J는 이미 영상실에서 감을 딱! 잡고 저희 매장으로 오고 있는 중이였어요.

그놈은 들어서자 마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백팩을 열고는 향수를 마구잡이로 백팩에 집어 넣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 짜잔~ 나타난 J가 그 백팩을 확 낚아채려 하자 그 도둑놈은 백팩을 뺏어서 도망가려 했고, J는 그놈을 잡아 채려하면서 둘다 바닥에 넘어졌어요. 그치만 도둑놈은 잽싸게 일어나 가가양과 저를 밀치다시피 하며 도망가 버렸고, 향수들은 깨어지고, J는 손에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더라고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였고, 동료가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심장이 요동치고, 진정이 안되었어요. 가가양도 놀랬는지 손을 바들 바들 떨고 있었고요. 우선 J에게 휴지를 건네고 떨고 있는 가가양을 안아주었어요.

슬리퍼 한짝을 남기고 간 도둑렐라님은 이후 경찰에 리포트 되었고, 전 그 사건으로 인해 약간의 트라우마가 생겨 후드티를 뒤집어 쓰고 얼굴을 가린 마스크를 쓴 특정 인종의 남성이 매장으로 들어오면 긴장을 하게 돼요.

 

그리고 몇 개월 후에 또 늦은 저녁 시간, 그땐 저 혼자 근무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특정 인종의 두 남성이 오자마자 향수 코너로 오더니 두명이 저를 코너 구석으로 쥐몰이 하듯 몰아 가면서

'겨울에 뿌리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향수' 가 뭐냐고 묻더라고요.

 

우선 저를 코너로 몰아가는 것이 너무 이상했고, 향수를 구입할 사람이 하는 질문치고는 매우 이상 했기에 직감적으로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최대한 그들을 편안하고 기분 좋게 대해야 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는 척 하며 ' 겨울에 뿌리고 싶지 않은 향이요? " 하며 되묻고, "그럼 여름에 뿌리기 좋은 향으로 추천 해 드리면 되나요?" 하면서 물었죠.

사실 그들 중 한명은 후드티로 머리를 가리고 있었지만 둘다 얼굴은 가리지 않았기에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J에게 무전을 하진 않았는데 너무너무 후회가 됐어요. 제발 J가 이상황을 영상실에서 지켜 보고 제가 위험한 상황인걸 알아 차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눈 앞에서 도와 달라고 무전을 할 수는 없으니) 그들을 응대하며 최대한 코너에서 빠져 나갈 방법을 궁리 했습니다. 제가 이미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한명은 계속 제가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막으며 말이 안되는 질문을 했고, 나머지 한명은 향수를 보는 척 하는데 둘다 뭔가 술에 취한 것은 아니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마약을 한 듯 흐물거렸달까? 아무튼 그래서 더 무서웠어요. 

 

그런데 역시나 도난 방지 부서의 J가 나타나더니 향수를 보고 있던 나머지 한명에게 다가가 옷 속에 숨긴거 다 꺼내 놓으라고 하더라고요. 

세상에!!! 저를 코너에 몰아 넣고 고새 벌써 해 드셨던거죠!!!! 2인 1조로 들어와 두놈이 저를 위협인듯 위협아닌 위협같은 코너 몰이를 해 놓고선 주머니에 향수를 벌써 세개나 넣어 놨더라고요. 녀석들은 J의 덩치와 인상에 압도 당했고, 경찰이 오고 있다는 말에 뻔뻔하게 살려고 그랬던거라며 돈 주고 사면 되는거 아니냐고 되려 J에게 니가 추천 하는 향수는 뭐냐? 내가 살게! 돈 있다니까!!! 하면서 맞장 뜰 기세더라고요. 그러더니 결국 맘에 드는 향수 없다며 그냥 유유히 나가 버렸습니다. J는 딱봐도 (마)약한 애들이라며 그닥 대수롭지 않게 넘기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코너에 몰리는 동안 혹시 총이라도 꺼내면 어쩌나 정말 조마조마했어요. 이런 일이 있고 나니 앞으로 조금 의심 스러워 보이는 사람이 들어오면 일단 이곳을 벗어나자! 라고 마음 먹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상품이 털리는건 둘째 문제고, 전  아직 키워야 할 애들이 있으니 제 안전이 제일이니까요. 

 

그리고 몇 주전, 금요일 휴무를 끝내고, 토요일에 오프닝 멤버로 출근을 했더니 메모가 남겨져 있더라고요. 금요일 저녁 8시쯤 왠 남자가 산타 선물 주머니 처럼 큰 쌕을 가지고 와서 향수 코너의 향수 테스터를 싸악~ 쓸어 담아 갔다는거예요!!!!

 

헐~ 

그나마 다행이라면 하도 향수 코너의 도난이나 배낭에 쓸어 담아가는 도둑놈들이 많아서 아예 상품은 선반 아래의 서랍에 넣어두고, 손님이 구입을 원하면 열쇠로 열고 꺼내 주도록 시스템을 바꿨거든요. 그래서 상품은 진열되어 있지 않았지만 테스터들이 다 사라져 버렸으니 상품으로 테스터를 만들어야 해서 결국 세포라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해를 입은거였어요.  다음 날 도난 당한 테스터의 가격을 합산하니 4000불 (약 450만원)  정도라고 나왔고, 그렇게 경찰에 리포트를 했습니다. 

 

전날 혼자 있으면서 이런 일을 당한 동료 L 양이 얼마나 놀랬을까 걱정이 되어 괜찮냐고 메세지를 보냈더니 괜찮다고, 그 사람이 훔쳐 가는 동안 너무 무서워서 자기는 매장 밖에 나가 있었다더라고요. 회사측에서는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는 그녀의 목숨이 제일 중요하니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저라도 그렇게 했을거예요. 

 

금요일에 그런 일이 있었고, 저희 매니저는 그때 2주간 휴가 중이였고, 일요일에 라라양이 출근해야 새 테스터에 관한 지시 사항이 있을 것 같아 일단 토요일은 그렇게 테스트가 없는 채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에 출근했더니 라라양과 일요일 출근한 멤버들이 테스터를 전부다 새로 만들었더라고요. 

 

그리고 그 다음날이던 화요일... 그날은 제가 클로징 멤버였고, 저 혼자 매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8시 40분쯤,  그러니까 매장이 문닫기 20분 전에 두 남자가  커다란 쌕을 짊어지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 오는데 딱 봐도 아! 금요일에 왔던 그놈이 친구 데리고 또 왔구나 싶더라고요. 

 

금요일, 그리고 제가 있던 그날 화요일밤, 모두 도난 방지 부서의 J는 없었습니다. 오자 마자 쌕에 새로 만든 향수 테스터를 정신 없이 쓸어 담더라고요. 향수 테스터에는 도난 방지 알람이 부착되어 있어서 그 알람들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하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냥 다 집어 넣었습니다. 

 

저는 그냥 편안하게 볼 일 보시라고 자리를 비켜 주었어요. 제가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막았다고 상 받을 것도 아니고, 괜히 나섰다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매장 밖으로 나가서 콜스의 고객센터 쪽으로 갔습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손님들도 이미 고객 센터에 몰려 있고, 여고생들은 너무 겁 먹어서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님께 빨리 데리러 오라고 전화 중이고, 콜스의 수퍼 바이저는 J에게 전화해서 이 상황을 알리고 있었죠.  (아니 근데 집에 쉬고 있는 J에게 이 상황을 알린들 뭐 달라질게 있나요? 빨리 경찰에게 연락을 해야지??? ) 당연히 J는 당장 911에 전화 하라고 했고요. 

 

정말 약 5분 만에 두 도둑놈들은 매장의 테스터를 싹쓸이 해갔습니다. 금요일에 왔을 때는 쌕 하나로 다 담아 가질 못해서 남자 향수쪽만 털어 갔지만 이번에는 두놈이서 남녀 향수 코너를 다 털어 갔어요. 

어우, 총 안 들이댄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더라고요. 그냥 조용히 와서 조용히 털어가기만 하는 젠틀한 도둑놈들이라 얼마나 다행이였게요. 

 

담아 가면서 향수도 깨뜨렸는데 감사하게도 쌕 안에서 깨졌는지 바닥에 남겨진 유리도 없고, 바닥에 흘린 향수만 닦아내면 되니 편하기만 했겠나요? 매장에 좋은 향기도 남기고 가셨죠. 

 

 

약 10분 뒤에 경찰들이 왔습니다. 근데 뭐 놈들은 가셨는데...

앞으로 순찰을 좀 더 강화하고, 당분간 주변 지역에서 머무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다음 날 콜스 매니저가 도난 당한 제품들 합계를 내 달라고 했는데 세상에 22000불 이였어요. 5분만에 약 2500만원 , 5일만에 약 3000만원의 손실을 입은거죠. 

가끔 미국의 뉴스나 미디어를 보면 직원들이 눈 앞에 있는데도 너무 태연하게 물건을 대놓고 훔쳐가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왜 직원들은 아무것도 안하냐, 왜 못 막냐 하며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직접 겪어 보고 알았습니다. 왜냐면 미국은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나라니까요. 그들이 무엇을 소지하고 있을지는 누구도 모르죠. 그리고 내 목숨보다 중요한건 그 어디에도 없어요. 또한 리테일에서 일을 시작하면 안전 교육으로 배웁니다. 절대로 도둑과 맞서지 말고, 관련 부서의 직원이 아니면 막지도 말고, 관련 부서에 알리라고요. 

 

그리고 전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이곳에서 일하는 것에 좀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보통 이렇게 위험한 도난 사건은 밤에 주로 일어 나는데 밤 근무자를 혼자만 두게 하는 콜스의 스케쥴링에 실망했고요, 제가 근무했던 화요일에 도난 사건이 일어나던 날, 콜스 매장 통틀어 남자 직원은 단 한명도 없었어요. 스무살 남짓의 여직원들과 저, 그리고 콜스의 60대 슈퍼 바이저 뿐이였죠. 만약 그들에게 총이라도 있었고, 저희를 위협했다면 저희는 그냥 모두 독안에 든 쥐마냥 아무것도 못하고, 그렇게 꼼짝없이 매장에 갇혀서 인질 되는 시나리오 였어요. 

 

그리고 다음 날 전 콜스의 매니저의 망언에 대대대대실망을 하게 되었고요. 그 얘긴 다음에 이어서 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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