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의 생각지도 못했던 리드 제안에 해 보겠다는 메세지를 보냈고, 세포라 매니저는 사흘 뒤에 콜스 매니저와의 미팅을 잡아 놓겠다고 답장이 왔습니다.
'미팅을 하겠다니 인터뷰를 하는건가? '
저도 들은 얘기가 있어 인터뷰가 있을거란 예상은 했거든요. 콜스에 입사했던 S양이 세포라로 이동해 올 때 인터뷰도 하고, 시급 협상도 새로 했다고 들었기 때문이였죠. 그래서 저도 이 미팅때 시급 협상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우리 나나님이 리드 포지션의 가가양과 베스트 프렌이라 가가양의 시급을 언급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대충 얼마 정도 되겠거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제가 몇달동안 일하면서 동료들이나 가가양이 일하는걸 지켜 보니 솔직히 제가 좀 더 받아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처음 입사할 당시에는 제가 미국에서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미국 사회생활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어가 완벽한 것도 아니니 일 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영어 빼고는 동료들 보다 못한게 없더라고요? 자기애 충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우리 나나님도 사실 으마으마한 손님 응대 스킬이 있거든요. (이 얘기도 나중에 포스팅 할 예정) 아마 제가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했어도 우리 나나님만큼 프렌들리한 고객응대 스킬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동방예의지국 출신답게 미국인들의 서비스 스킬과는 또다른 정중하고 예의바른 손님 응대 스킬 정도는 할 수 있거든요. (이 얘기도 포스팅 예정, 예약 포스팅 만수르임) 그러나 여전히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그 외에 업무적인 것은 그 누구에게 뒤쳐지질 않을 만큼 열심히 했고, 또 잘했어요. 오히려 리드 포지션의 가가양이 저에게 직접 와서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이 많아 제가 그녀를 가르쳐 줘야 하는 일이 많았죠. 사실 뷰티 업계 경력으로 치면 제가 그녀 보다 선배이기도 하고요. 뷰티 업계가 아니더라도 일단 제 사회 생활 경험과 연륜이 있.... (인정하기 싫으다!!! )
그래서 가가양의 시급을 기준으로 그것보다 좀 더 요구해 봐도 되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 일 쫌 잘하는 것 같은데 이만큼 주세요~ 라고 할 순 없잖아요? '나 이정도 시급의 가치가 있는 사람' 이라며 매니저들에게 들이밀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번쩍 떠오른 것이 self evaluation
저희 남편이 작년에 이직을 했는데, 이직 후 6개월이 지나니 셀프 이밸류에이션 이라는 것을 작성해야 한다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뭐냐고 했더니 6개월간 이 회사에 입사한 후 업무 능력이나 성과에 대한 '자가 평가서' 인데 이걸로 1년 후에 연봉 인상율이 결정된다고 했던게 기억이 났습니다.
아하!!!! 나도 셀프 이밸류에이션을 작성해서 지난 5개월간 제가 세포라를 위해 어떻게 일해 왔는지를 어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무슨 큰 프로젝트로 성과를 내야 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억대 연봉 받는 직장도 아닌데 셀프 이밸류에이션이라니 너무 오바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과 마음가짐을 객관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고, 이걸로 제 시급을 더 올려 받을 수 있다면야 why not? 아니겠어요?
리테일 업종에 맞는 셀프 이밸류에이션 항목과 콜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들을 쓰고 구글의 셀프 이밸류에이션 서류들을 참고로 해서 저만의 셀프 이밸류에이션을 만든 후, 남편에게 점검을 해 달라고 했죠.
그런데 제 셀프 이밸류에이션을 본 남편은
" 솔직히 난 잘 모르겠어, 리테일에서 이런걸 하지도 않을텐데... "
라며 회의적인 반응에 급 소심해져서 '하지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다시 한번 '내 시급은 내가 정한다' 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에 미팅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셀프 이밸류에이션 서류를 챙겨서 출근했는데 매니저는 저를 보자 마자
"너 됐어!!! 그 포지션 니꺼야"
하며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미팅도 없이 바로? 그럼 시급 협상은??? 저는 기뻐하기 전에 당황스러웠어요.
"미팅은 없는건가요?"
"미팅은 없을거야, 걱정 안해도 돼. 이미 결정 됐으니까"
이.... 이게 아닌데... 그럼 시급은 주는대로 받아야 하는건가?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더이상 시급 협상의 기회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아서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전 오늘 미팅이 인터뷰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준비 해 왔어요. 그리고 시급 협상도 하고 싶었고요"
"원하는 시급이 얼만데? "
"**불이요" 서류 정리를 하던 매니저가 깜짝 놀라며 저를 쳐다보더니
"그렇게는 못 받을거야"
ㅎㅎㅎ 그렇게 못 받을거 전 이미 알고 있었죠. 왜냐면 제가 내뱉은 시급은 가가양보다 더 많은 시급을 불러서 그렇게는 못 준다고 하면 다시 재협상할 것을 예상하고 부른 시급이였거든요. 그렇게 재협상한 시급이 그래도 가가양 보다 많은 시급이 되도록요. 그러니 매니저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계획이 있으니...
"전 오늘 인터뷰가 있는 줄 알고, 이것을 준비해 왔어요"
하며 셀프 이밸류에이션 서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받아든 매니저는 꼼꼼하게 읽으시더니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 캐** (콜스 매니저)랑 얘기 좀 하고 올게"
하며 오피스로 가시더라고요. 그리고 한 30분 정도 뒤에 돌아오시더니
" 캐**가 감동한 것 같아. 셀프 이밸류에이션이 너무 인상 깊었대. 그래서 이 자가 평가서 제도를 도입해서 수퍼바이저급들한테도 적용하기로 했어. 그리고 네가 원하는 시급도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어, 그렇게 해 줄것 같아"
이.... 이게 뭐죠? 제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았는데 더 좋은 이 조건은???? 전 중간 금액에서 협상을 원했던건데 덜컥 제가 부른 금액을 주겠다고 할 거라고는 기대도 안했거든요.
우와~ 이 셀프 이밸류에이션이 이렇게 큰 효과가 있을 줄이야!!!!
남편도 궁금했었는지 어떻게 됐냐고 메세지를 보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부른 금액 그대로 받게 될거 같다고 했더니 남편도 깜짝 놀라서는 속내를 털어 놓더군요.
"사실은 셀프 이밸류에이션 하는거 보고 쓸데없는 짓 한다고 생각했는데 효과가 있었네? 내가 틀렸었어. 미안해, 그리고 당신이 자랑스러워"
원하는 시급을 받게 되는 것보다 제가 하려고 하던 일을 가치있게 생각하지 못했던 남편이 사과하고 저를 인정해 준 것이 더 뿌듯했어요.
솔직히 저 자신도 이거 너무 오바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일에 열심과 열정을 보이는 직원을 싫어할 매니저는 없을거니까요.
이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흘러가서 다행스럽긴 한데 이젠 또 다른 걱정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이 뷰티 리드 어드바이저 포지션을 탐내던 그 분... 저를 아랫것으로 여기던 그 분...
그분이 제가 리드 포지션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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