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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기

미국 세포라 일기- 짜장면과 불닭면으로 허물어진 벽

by 스마일 엘리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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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라에 일을 시작하면서 두려웠던 것은 제가 과연 이 일을 해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과 직장 동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평탄한 직장 생활이 될려면 인간 관계도 중요하잖아요?  직장 동료들과 친구는 될 수 없더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료 정도만 되면 바랄게 없겠다는 마음이였어요. 

처음으로 매장에서 일을 했던 날, 엄청 바빴는데 저는 모르는게 너무 많았어요. 다른 동료들은 이미 오픈 전부터 매장 디스플레이 작업을 하며 일에 익숙해진 상태였지만 전 오픈 직후에 들어갔기 때문에 손님들에게 상품이 어디 있는지 알려 드리는 것 조차 버겁더라고요. 그래서 첫날은 눈치껏 인사나 열심히 하고, 쇼핑 하는 손님들 상품 담을 바스켓이 필요한지 일일이 여쭤보며 그것을 건네주는 것만 열심히 했어요.  제발 실수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요... 그렇게 긴장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제가 모르는게 있으면 동료들에게 물어봤는데 모두들 정말 친절하고 착하게 알려 주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맙다고 했더니 한 동료가 

" 당연한걸, 그러라고 우리가 여기 있는거야, 궁금한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날 도와 주기 위해 여기에 있는거라니!!! 너무 든든한 말 아닌가요? 그렇게 동료들에게 물어가며 스스로 공부해가며 점점 일에 적응은 했지만 여전히 거리감은 있는 그런 관계로 일을 했죠. 다른 동료들끼리는 서로 조금씩 스몰톡도 하는 분위기였는데 저한테는 다들 친절하긴 하지만 사적인 스몰톡은 걸지 않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뭐 제가 바쁜 시간에 일을 하기도 했고요. 

아마 제가 이십대, 삼십대 시절에 이런 느낌으로 일을 했다면 '이런 분위기 어색해서 싫다아~' 하며 너무 신경이 쓰였을 것 같아요. 동료들 눈치도 봤을거고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 철이 들어서 그런건지 아님 미국 사회에 이민자로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서 그런건지 '나는 여기 일을 하러 왔을 뿐! 주어진 시간 동안 내 일만 열심히 하고 가자!' 라는 마음이 더 크게 들어서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고, 그 일에 집중했어요. 

저에게 주어진 이 기회가 너무나 소중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만에 사회에 나가 일을 하니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하루 하루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신나고 마치 우물안 개구리가 우물 밖의 큰 세상을 보고 신나서 여기 저기 뛰어다니는 모습 그대로였거든요. 

그렇게 약 한달 넘게 그 누구와도 친해지진 못했지만  출근할 때 모든 동료들에게 항상 빅스마일과 큰 소리로 절친을 오랫만에 만난 것처럼 반갑게 인사하기 만큼은 잊지 않고 했어요. 

그러던 어느날...조금은 한가해진 저녁 시간대에 일을 하는 날이였는데 혼자서 열심히 테스터를 청소하고 있던 저에게 동료 한명이 다가 오더니 말을 걸더라고요. ( 앞으로 제 블로그에서 동료들은 가가, 나나, 다다, 라라 라는 애칭으로 부를게요. 그리고 이 친구는 나나양으로 칭하겠습니다. ) 그냥 평범하게 집이 어디야?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서로 가볍게 신상털기 하는 정도였죠. 그러다 제가 미국 오기 전에 일본에서 살았다는 말에 갑자기 급흥분 하더니 

"나 애니메 완전 좋아하는데... 나루토랑 원피스 완전 좋아해" 하더라고요.

"음... 난 나루토랑 원피스를 격하게 좋아해 본 적은 없지만 우리집의 어른이 한명이 오타쿠야" 라고 말하고선 갑자기 그 어른이가 좋아하는 나루토 테마의 라면집이 딱! 떠오르는거예요.  그래서 

"너 나루토 좋아하면 타코마에 있는 나루토 라면집 가봤니? 거기 인테리어가 나루토 테마인데 맛도 괜찮아" 라고 했더니 

100미터는 되는 것 같았던 마음의 거리를 급격하게 10미터로 좁히며 

" 뭐?? 나루토 라면집? 안 가봤어, 같이 가보자! 가가랑 같이, 가가도 나루토 라면집 좋아할거야" 이러지 뭐예요? @.@ 

이거 너무 훅! 들어오는데??? 싶었지만 애니메 사랑이 넘쳐서 그런거려니 하며 언젠가 휴무가 같으면 시간 맞춰서 가보자고 했죠. 

나루토 라면집으로 트인 스몰톡의 물꼬는 급기야 댐 방류를 방불케 할 정도로 그녀의 수다는 멈추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는 

" 나, 그 완전 매운 한국 누들 좋아하는 거 있는데... " 하길래 "신라면?" 했더니 아니래요

"불... 불 뭐시긴데.. 닭이 그려져 있고, 불댁?" 

"불댁? 아~ 불닭면?" 했더니 물개 박수 치며 맞다고 불닭면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남편과 제가 한번 먹고 똥꼬로 화염을 분출하듯 퐈이어 드래곤을 출산했던 그 불닭면을 얘가 먹는다고?!?!?! 

그렇게 불닭면 얘기로 나나양과 저는 마음의 거리를 1미터까지 좁힐 수 있었어요. 그리고 며칠 뒤 또 저녁 근무 시간, 이번엔 가가양과 함께 일을 했는데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니 가가양이 먼저 다가와 

"너 정말 열심히 일하는구나, 넌 쉬지 않고 일하는 것 같아" 라고 하더라고요. '여기는 일 말고 내가 할 줄 아는게 없어서 그래...' 가 속마음이지만 그냥 땡큐로 화답했습니다. 

그랬더니 " 나나한테 나루토 라면집 얘기 들었어, 다음에 같이 가자" 하길래 "너도 아시안 음식 좋아해? " 했더니 

"난 라면보다 불닭면이 더 좋아, 그런데 나 한국 음식 중에 진짜 맛있게 먹은게 있는데.. 짜장면이던가?" 

@.@ 

넌 또 짜장면을 어디서 먹어본거뉘?!?!?!?!  너무 신기하고 반갑더라고요. 

"짜장면을 좋아해?? 나도 짜장면 완전 좋아해. H mart에서 먹은거야?" (전 이동네 생활이 오래되지 않아 짜장면은 H mart에서만 파는줄 알았음) 

" 아니, 씨애틀에서 먹었어, 진짜 진짜 맛있었어. 또 먹고 싶은데 씨애틀까지 갈 일이 없어" 하길래 오호라~ 가까운 H mart에도 짜장면 구경이 가능한걸 모르는구나 싶어

" H mart 안에도 짜장면 있어, 담에 같이 먹으러 가자!" 했더니 꼭 꼭 같이 먹으러 가자며 신나 하는 가가양 

내가 사회 생활을 안하는 사이 K food의 흐름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싶더라고요. 옛날에는 한국 음식 하면 다들 불고기??? 아니면 코리안 바베큐?? 하더니... 이제는 불닭과 짜장면이라니... 

그리고 얼마뒤 신입으로 들어온 다다양과 처음으로 일을 하게 된 날, 서로 소개를 마치고, 제가 한국 출신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그녀가 " 나 한국 음식 너무 좋아하는데... 짜장면이랑 불닭 완전 좋아해" 

이 말을 듣자 '얘네가 다 같이 짜장면을 먹으러 갔나? 다 같이 친구인가?' 싶어 

"너 짜장면 씨애틀에서 먹었지? " 

"응" 

"너 짜장면 가가랑 먹었지?" 했더니 

"아니?" 

감으로 한 탐문 수사 실패!!!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짜장면과 불닭면 덕에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그렇게나 멀게 느껴졌던 동료들과의 벽이 허물어졌고, 한층 더 가까워 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7월 중순에 제가 보라보라한 머리로 염색을 하고 출근했는데 갑자기 왠 여자 두명이 마치 납치라도 당하는 듯 

"꺄아아아악!!!!!!"  하길래 저도 그 소리에 너무너무너무 놀란 나머지 

"어우 깜짝이야!!!!" 하며 순식간에 한국어가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러고선 뒤를 돌아 봤는데 가가양과 나나양이 제 머리를 보고 꺅꺅 거리며 소리를 지른거였어요. 그런데 제가 또 한국어로 아우 깜짝이야 하니까 그게 너무 웃겼는지 방금 뭐라고 한거냐고 그거 한국어냐고 자지러지게 웃지뭐예요?!?! 

머리 너무 예쁘다고 가가양 나나양 둘이서 난리 난리, 머리가 예쁜데 왜 나를 안고 난리냐고!!!! (그런데 싫지가 않았다....?ㅋㅋㅋㅋ) 

그러다 급 화제 전환 하더니 빨리 나루토 라면 먹으러 가자고 하다가 또 샤브샤브도 먹으러 가자고 하더니 결국 비비큐 양념 통닭 먹으러 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서로 스케쥴이 맞지 않아 아직 가가양과는 아무것도 먹으러 가진 못했지만 나나양과는 비비큐 양념 통닭도 먹고, 나루토 라면집에서 새우 튀김 덮밥도 먹고, 몽골리안 바베큐도 먹었어요.

가가양은 또 어디서 먹어 봤는지 떡볶이 먹어 봤는데 너무 맛있었다고 떡볶이 사러 H 마트에 함께 가자길래 제가 가진 덕복희 여사 떡볶이를 기꺼이 나눔해 주었습니다. 불닭과 짜장면 덕분에 동료들과도 더욱더 친해지게 되었고, 심지어 가가양과 나나양은 제가 출근하고 퇴근할 때 마다 꼭 안아주면서 인사를 해요.  그리고 다다양은 공짜로 베이비싯 해 줄테니까 남편과 데이트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얘기 하라고 하더라고요. 

K food덕에 동료 관계도 원만하게 잘 풀린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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