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화장품 편집샵 세포라에 근무를 한지 벌써 두달이 넘어 석달째에 접어 들고 있어요.
일하는 것이 즐겁고 동료들도 너무 좋아서 일 시작하길 정말 잘했구나~ 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딱 한가지!! 제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하나 있어요.
바로 반품 제도 입니다. 미국에 사는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의 반품 정책은 하나님 부처님 공자 맹자 순자의 마음 보다 더 어질고 너그러울 정도로 아.묻.따 아니겠습니까?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반품이 꽤 까다로워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국에 살 때인 약 10여년전) 단순 변심의 반품은 잘 받아 주는 곳도 없었고, 옷과 같은 재판매가 가능한 경우는 반품이 가능했지만 이미 사용을 해 버리거나 개봉을 해 버린 제품의 경우는 원래부터 제품의 이상이 있는게 아니고서야 반품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했거든요.
그러나 미국은 반품 기한 내에는 (보통 30일~90일, 심지어 이케아는 1년) 말 그대로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반품을 해 주잖아요. 물론 반품 사유에 대해서 질문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재판매 가능 여부를 알아 보기 위함일 뿐, 구매자의 책임으로 인한 반품 여부를 가리기 위한게 아니니까요. 그래서인지 특별히 제품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반품 기한 내에 실컷 사용해 보고 썩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 해 버리고 전액 환불을 받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예요.
저도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반품 하는 것 자체가 미안하고 눈치가 보여 일부러 아침 시간을 피해서 간다거나 (한국에서는 아침부터 반품 손님 오면 재수가 없다라는 미신이 있어 아침 시간대는 피하는게 매너라고 들었기에) 반품 하면서도 괜히 직원 눈치를 보곤 했었는데 지금은 영수증 내밀며 당당하게 반품을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간댕이가 잘~성장했답니다. 물론 반품 제도를 악용해서 실컷 쓸 만큼 쓰고 제품에 이상이 없는데도, 단순 변심으로 반품해서 재판매도 불가능한 제품을 반품한 적은 없어요.
이렇게 미국물이 들어서 이젠 '반품도 소비자의 권리' 라고 여기게 되어 이곳 세포라에 일을 하면서도 손님이 반품을 하러 오면 저 역시도 아.묻.따 반품을 받아 줍니다. 뭐, 미국물 안 들었어도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 하는 아랫것인지라 당연히 받아줘야 합니다만...
세포라@콜스의 반품 규정은 제품 구입 60일 내에는 무조건 반품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반품이 생각보다 많아요. 얼굴에 직접 바르는 제품이다 보니 피부에 맞지 않아 트러블이 생겼다거나 파운데이션 같은 색조의 경우 색깔이 안 맞는다는 합당한 이유도 있지만 그냥 "맘에 안들어서" 라는 이유도 많아요. 그리고 이미 구입할 때 반품을 염두에 두고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예를 들면 두가지 색을 두고 고민하다가 "두개다 살게요, 안 어울리는건 나중에 반품하죠 뭐"
아무리 반품 규정이 너그럽다지만 이럴 땐 "두개 안 팔아도 되니까 하나만 사세요" 라며 말리고 싶은 맴 한가득~
왜냐면 화장품은 얼굴에 직접 바르는 제품이다 보니 반품 된 제품은 재판매가 100프로 불가능하니까요. 그리고 한 두번 사용한 거의 새것과 다름 없는 제품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포장이나 씰이 손상되거나 그것을 뜯은 제품 역시도 재판매가 불가능해요. 반품 제품 중 다시 매대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은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고, 오픈한 적도 없고, 씰도 손상되지 않은 제품만 재판매가 가능하거든요.
그럼 반품 제품은 어떻게 처리를 하느냐?!?!
아무리 새제품이고, 사용한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제품이라도 제품 씰이 손상이 되었다면 손상 제품으로 간주하고 손상 반품 제품이라는 종이를 붙여서 한 곳에 모은 후 그냥 폐기처리 합니다.
사실 한번, 두번 정도로 사용한 거의 새것과 다름 없는 대용량의 파운데이션이나 스킨, 로션, 크림 같은 것들이 그냥 폐기 처분 되는 것도 너무너무 아까운데 한번도 사용되지 않은 씰 손상 제품 같은 것들이 그대로 폐기 상자에 담기는 것 보면 정말 속이 쓰려요. (심지어 셋트로 판매된 제품 중 한 제품만 사용하고 나머지 제품들은 사용하지 않은 완전 새제품의 경우에도 나머지 새제품까지 그대로 폐기 처리 합니다 ㅠ.ㅠ ) 차라리 직원들에게 저렴하게 판매한다면 제가 사고 싶을 정도로 아깝고 안타까워요. 그리고 환경 오염은 어쩌고요. 매일 저렇게나 많은 반품 제품들이 폐기 처분 되면 화장품 내용물은 물론이고, 그 화장품이 담겨 있던 유리, 플라스틱 용기들이 쓰레기가 되는 것인데, 이것들은 과연 어디로 갈까요?
이유 있는 반품이 아닌, 단순 변심으로 반품한 고객들은 돈을 환불 받았으니 당장 눈에 보이는 손해는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자신이 반품한 제품이 그대로 쓰레기가 되어 내가 사는 땅, 내가 사는 강, 내가 사는 지구를 오염 시키고, 내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을 오염 시킨다는 것을 안다면 과연 내가 손해 본게 하나도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반품 된 제품들을 만들기 위해 이미 일차적으로 끼친 환경 오염은 어쩌고, 그 제품의 원재료나 원자재의 낭비는 또 어떻고요. 반품으로 인한 기업의 손해도 있겠지만 전 그 보다 반품 폐기물로 인한 자원 낭비와 환경 오염이 너무나 걱정이 됩니다.
그럼 사용하지 않은 제품들의 경우는 재판매를 하거나 수익을 얻지 못하더라도 자원 낭비 방지나 재사용의 차원으로 기부를 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나눔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겠지만 피부에 직접 바르는 화장품의 특성상, 그렇게 반품 된 제품을 무상으로 제공한 후, 누군가의 피부에 사소한 문제라도 생기면 그것이 결국 고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공짜로 나눠주고 법정 싸움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합의금으로 뜯기는 것보다 제품 원가를 포기하는 것이 차라리 기업에서는 이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눔이나 기부도 불가능한 것이죠.
그동안 제가 반품한 제품들은 대부분 재판매가 가능한 공산품이였기에 반품으로 인한 자원 낭비, 폐기물 생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세포라에 근무 하면서 재판매가 불가능한 제품들의 단순 변심 반품이 이렇게나 많고, 반품 뒤에 가려진 반품 제도 민낯을 보고 난 후, 과연 미국의 아.묻.따 반품이 진정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비자를 위한다는 그 제도가 결국 내가 사는 땅과 물을 오염 시키고, 내 아이들과 내 자손들이 살아갈 지구를 위협 한다면 그게 진정한 소비자의 권리가 맞는 것인지 이것은 기업에 물어야 할 것이 아니라 단순 변심으로 반품 하는 내 자신에게 반문해야 하는 질문이 아닌가 싶네요.
이 여자가 오늘은 왜 진지 열매 먹고 다큐를 쓰고 난리야?!?! 라고 하신 분들!!!
이제 본론을 말씀드릴게요!!
결론 아니고 본.론!!!!! (하고 싶은 말은 이제부터닷!!!)
매장에 테스터를 배치하여 고객이 자유롭게 직접 발라보고, 그려보고, 테스트 해 본 후에 물건을 구매하는 제도를 도입한 최초의 뷰티업계가 세포라였다는 것 아시나요? 저 지금 세포라 약 파는거 아니고요. ㅎㅎㅎㅎ
아무튼 이 세포라에는 샘플 제도가 있어요. 스킨, 로션, 크림등 대부분의 스킨 케어 제품의 경우, 구매해 보고 싶지만 혹시 피부에 맞지 않아 트러블이 생길까 걱정이 되서 망설여질 때, 파운데이션 색깔이 혹시 맞지 않을까 걱정이 될 때, 두 세가지 파운데이션 색깔을 비교해 본 후 한가지 색상을 정해 보고 싶을 때... 그럴 때 직원에게 샘플을 "만들어" 달라고 하세요.
그럼 본 제품에서 샘플을 작은 용기에 덜어 드려요. 보통 3~4회 정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양으로 담아 드리니 내 피부에 잘 맞을지, 잘 어울릴지 충분히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의 양이예요.
샴푸, 린스, 세럼 같은 헤어제품도 가능하고요, 파우더도 가능하고요, 심지어 케잌 타입의 브론저도 쌉가능 입니다. 어떤 손님이 압축 파우더 형태의 브론저 샘플을 만들어 줄 수 있냐고 하셔서
엘리 둥절?
하며 저희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살살 긁어서 담아 주세요~ 만들 방법만 있으면 다 만들어 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긁어서 담아 줄 생각은 감히 상상도 못했..... 그래서 요즘은 펜슬 타입 아이라이너나 펜슬 타입 립 라이너 샘플은 어떻게 만들지? 하며 혼자서 연구중이예요. ㅋㅋㅋ 부러뜨려서 드릴 수는 있으나, 그걸 어떻게 바를지??? 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샘플과 구매할 제품을 함께 구매한 후에, 샘플을 먼저 사용해 보고, 맘에 들면 본품을 개봉 하시면 되고요, 맘에 들지 않으면 본품은 개봉하지 말고 그대로 매장에 가져 오셔서 반품 하시면 돼요.
그럼 매장에서는 재판매가 가능하니 좋고, 자원 낭비 안하니 반품하시는 분도 죄책감 느낄 필요 없고, 금전적인 손해도 없고, 이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니 좋고, 내 좋은 에브리바디 해피 엔딩 아니겠어요?
그래서 진지열매 씹어 먹고 다큐 쓴 오늘의 결론은 단순 변심 반품은 길게 보면 반품 한 나 자신에게 손해가 되니 반품 대신 세포라의 샘플 제도를 적극 활용해서 반품을 줄이자!!! 가 결론이 되겠습니다.
세포라의 샘플 제도 모르셨던 분들 꼭 활용해 보세요. 샘플 만들어 달라고 하는거 진상 아니고, 귀찮아 하는 직원도 없답니다.
'미국 생활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구마 폭발 사건 (17) | 2022.09.07 |
---|---|
나의 도플갱어를 찾았다! (10) | 2022.08.29 |
400불에 끝낸 화장실 셀프 리모델링 (23) | 2022.08.01 |
눈탱이 맞은 미국 병원의 코로나 검사 비용과 의료 보조 기구 비용 (6) | 2022.06.11 |
야드 세일과 신박한 진상 (6) | 2022.05.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