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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기

코로나의 공포를 맛보다

by 스마일 엘리 2021.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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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시대가 길어지다 보니 점점 안일해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위험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독감처럼  앓고 지나가다 보니, 안 걸리면 제일 좋겠지만 혹시 걸리더라도 우리는 독감처럼 앓고 지나가는 그 누군가에 속하기를 바래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희 시댁쪽 식구들은 코로나가 한번 휩쓸고 지나갔답니다. 남편 사촌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그 덕에 조용하던 시골 마을은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촌은 물론이고 함께 사는 이모와 시외할아버지, 뭐 어쨌든 그 가족은 전체가 다 양성이였어요, 그렇게 시작된 코로나로 시부모님도 영향을 받으셨고, 한 2주간을 독감 앓듯이 고열과 몸살이 있었지만 잘 이겨 내셨거든요.  그래서 좀 긴장이 많이 풀어진 상태였어요. 그렇다고 조심 하지 않는건 아니였지만, 또 너무 조심하는 것도 아닌... 그냥 적.당.히 조심하면서 지낸거죠. 

마트를 가거나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 열심히 하고 사람들이 밀집 되는 곳은 피하는 정도? 

그런데요, 언젠가 한번은 걸려도 걸리고 말거라는 불안함이 있었던 것이... 바로 남편의 직장이였죠. 직장 안에서는 아무도 마스크를 안 쓴대요. 마스크 쓰라고 쓰라고 해도 안 쓰는 말 안 듣는 미국인들이 거기에 다 모여 있나봐요. 남편도 외출할 때는 꼬박 꼬박 쓰지만 직장에서는 마스크를 안 쓴다더라고요. 아무도 안 쓰는데 자기만 쓰는 것도 눈치 보이고 (특히나 지금 남편은 이직한지 얼마 되지 않은 굴러온 돌이라 박힌 돌 사이에서 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 어차피 자기는 자기 방이 따로 있어서 남들과 접촉할 일도 없으니 상대적으로 안전하니 괜찮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코로나 안 걸릴려고 외출도 자제하고, 꼬박 꼬박 마스크 쓰고 다니는 아이들과 저의 노력이 뭐가 되는건가 싶더라고요. 그러다 남편의 직장에서 확진자와의 직접 접촉자가 나오게 되어 그 분이 코로나 검사를 받게 됐어요. 결과는 음성이 나왔지만 양성 확진자와 직접 접촉이 있었으니 일단 2주간 격리를 하라고 했으니 의사의 권고를 따라도 되겠냐고 하더래요. 그래서 그러라고 했다는데, 그 일이 있자 회사 사람들의 분위기가... 코로나 걸리면 2주 유급 휴가!! YAY~  이런 느낌이라는거예요. 

하아~ 정말 이런 똥멍청이들!!!!! 그래서 오히려 더 마스크 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코로나 안 걸리면 좋겠지만 걸려도 좋아~ 이런 분위기래요. 

그러던 어느날, 출근 했던 남편이 오전 근무만 하고 집에 돌아온 거예요. 

"누...구 세요? 우리 남편은 회사에 있는데..." 

"코로나 검사 받고 왔어" 

뜨아악!!!!! 

바로 사회적 거리 6피트 유지하며 "왜? 왜? 왜? 확진자야? 내 그럴 줄 알았지, 회사에서 마스크 안 쓰더니!!!! 나랑 애들은 어쩌라고!!" 

" 확진 아니고, 일단 검사만 받았어, 어제 본사에서 보스가 와서 같이 미팅 했는데 보스가 확진 판정 받았대, 그래서 결과 나올 때 까지 회사 출근 못하고 재택 근무 해야해" 

젠장할~ 

남편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고 하니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코로나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 했습니다. 코로나 걸려도 감기 처럼 앓고 지나가는게 바로 우리 일거야~ 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는데... 막상 코로나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그 자신감은 소멸되고, 치명적일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만 자꾸 떠오르더라고요. 

가! 가란 말야!!!! 

일단 남편은 오피스룸에 감금 시켜 두고, 레몬 생강차를 끓여서 수시로 마시게 하고, 비타민제도 챙겨 줬어요. 솔직히 남편이 양성이면 저도 빼박 양성일거라는 두려움에...저도 주방에서 레몬 생강차 벌컥 벌컥 들이키고 온 몸의 털끝들의 미세한 반응마저 놓칠세라 온 감각을 곤두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남편은 배쓰롭으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가끔 기침을 콜록 콜록 하더라고요. 

왔네! 왔어!!!! 

애들도 아빠와 접촉 금지!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서워 하는 와플이는 아빠가 코로나 걸린거냐며, 그럼 죽는거냐며 눈물 줄줄~ 

그런데 저도 그날 부터 머리가 띵~ 한 것이 무겁고, 가끔 기침도 나더라고요. 미열이 약간 있긴 했지만 심하진 않았고요.  이거 기분 탓인가? 아님 진짜 증상이 오는건가? 빨리 검사 결과가 나와야 저도 검사를 하러 갈테고, 이 불안함이 확실해 질텐데... 뭔놈의 결과는 이틀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겨~ 

진짜 이게 남 얘기 일때는 공포가 막연했는데요, 내 얘기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걱정되고 무섭더라고요.  지금 당장 괜찮지만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안심할 수도 없고... 그래서 산소 포화도 측정기를 급히 주문했어요. (작년에 코로나 시작할 때 구입 해 뒀는데.. 이사하면서 또 박스에 넣어 버린건지... ) 수시로 산소 포화도 확인하고, 따뜻한 레몬 생강물 마시고, 비타민 챙겨 먹고, 그 외에 딱히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인터넷으로 코로나 투병기 검색해서 찾아 보고요. 

남편 보스가 너무 원망스럽더라고요. 텍사스에서 비행기 타고 씨애틀로 온건데, 그 다음날 확진 판정 받았다면 그 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는건데... 그럼 출장을 오지 말았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그리고 마스크도 썼어야죠. 똥멍청이 같으니라고!!!! 

그렇게 불안하게 이틀을 보내고 삼일째 되는 날 아침, 두통도 사라지고, 기침은 아주 가끔씩 나오기는 했지만 전날 보다는 몸이 좀 가벼워 졌어요.  남편은 다음날 콧물이 좀 나온다고는 했지만 역시나 두통은 없고, 기침만 약간 나올 뿐이라고 하더라고요. 코로나 확진자들의 공통 증상이 미각과 후각을 잃는다는데~  꾸리꾸리 방귀냄새 잘 맡아지는걸로 봐선 후각 이상무! 배달 시킨 피자도 잘 먹었으니 미각도 이상무! 

이쯤되니... '우리 아닌것 같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휴대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던 남편이 폰을 냅다 내팽겨 치며 마스크를 벗어 재끼더니

"휴~ 음성이래!!! 자!! 이제 됐지?" 

그 말과 동시에 저도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씌원하고 상쾌한 숨을 들이켰다 내쉬며, 그간의 걱정도 함께 내려 놓았습니다. 

코로나의 문턱에 다녀 온 느낌인데... 막상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느껴지니까 그 공포는 훨씬 더 컸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왜 미국이 코로나가 줄지를 않는지 다시 한번 체감했습니다. 

코로나 테스트 하고도 비행기 타고 주를 넘나들기, 코로나 걸리면 2주 유급 휴가라며 오히려 걸리면 땡잡은 분위기, 걸린 사람 부러워 하는 분위기, 말해 뭐하겠어요. 말 해도 안 듣는 고집쟁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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