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이사온지 벌써 3개월이 지났네요. 지난 석달간 전 나홀로 처절한 전투를 하고 있었더랬죠. 이름하여 '개똥 전투'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저희집 앞 마당에 개똥들이 수북하니 널부러진게 눈에 띄었어요. 이미 시간이 지나 말라 비틀어 진것들이 대부분이여서 입주전인 집이라 그냥 개똥을 안 치웠나부다 하고 제가 다~ 치웠어요. 그리고 개똥은 잊고 지냈는데 언제부턴가 또 앞마당에 개똥이 쌓여 있는겁니다. 또 제가 치웠죠. 사실 내 새끼 똥도 드러운데, 얼굴도 모르는 남의집 개똥은 더 더럽지 않겠어요?
이집 주인이 개똥을 주의 깊게 살펴 보고 있다는 메세지를 개똥주인에게 알려 주기 위해 개똥 사인을 꽂아 두었습니다. 일부러 귀여운 녀석으로 골랐어요.
이 정도면 알아 먹겠지~ 했는데, 보란듯이 이 개똥 사인을 꽂아둔 다음날 앞마당의 다른쪽에다가 개똥을 싸고 그냥 갔더군요. 이 동네는 이제 새로 지은 동네라 입주민도 몇명 없는데 이쯤하면 막 나가겠다는거죠?
그래서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도어벨 카메라까지 합하면 무려 3대!!! 단지 개똥주인을 찾겠다는 의지로다가!!!
잡았냐고요?
네!!! 다음날도 어김없이 왼쪽에서 나타나 오른쪽으로 내려가면서 앞마당에 개똥을 누이고 유유히 사라지는 여자가 카메라에 잡혔죠. 이후로 저는 그녀를 개똥녀로 부르기로 합니다. 현장을 잡았으니 다음날 대면을 할 생각이였죠.
개똥녀의 산책 시간은 새벽 5시 50분부터 6시 10분 사이였어요. 그 시간은 저의 수면시간이지만 현관문 앞에 신고 나갈 신발도 준비해 두고, 비닐 봉지도 몇장 준비하고, 침대 옆에는 외투도 올려 놓고 잤어요. 모션 감지 센서가 울리면 얼른 뛰어 내려가서 그 개똥녀를 불러 세워 반갑게 굿모닝 인사를 건네고, "혹시 비닐봉지가 없어서 똥을 못 치우는거니? 난 항상 비닐 봉지를 준비해 둘테니 이게 없어서 못 치우는거라면 우리집 벨을 눌러~" 라고 말할 생각이였어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데 이 개똥녀가 다음날 부터 안 나타나는거예요. 약 일주일 동안 저는 아침마다 대기타고 있었는데 안 나타나고, 자동차가 도로가를 지날때마다 울려대는 모션 감지 알람 때문에 새벽잠을 깨게 되서 다시 카메라를 껐답니다.
그런데 또 며칠 후 앞마당에 개똥이 여러군데 남겨진거예요. 아, 진짜!!!!! 그래서 다음번엔 개똥 누는 현장을 검거해서 달려나가 담판을 지을 작정으로 카메라를 켰죠. 그리고 남편이 잔디밭에 고추가루라도 뿌려 보라고 해서 귀하디 귀한 한국에서 공수 받은 고추가루를 앞마당에 골고루 뿌려주었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매일 새벽에 산책을 하기는 하는데 이 개가 저희집에 똥을 안 누고 그냥 지나가는거예요. 고추가루의 효과인건지, 아니면 변의가 없는것인지 모르겠지만 매일 새벽 카메라 화면으로 산책하는 모습만 지켜 보기를 일주일 넘게 하다가 더 이상 우리집이 그 개녀석의 화장실이 아닌가보다! 하며 카메라만 켜 놓고 개똥녀 지켜보기는 중단했습니다. 저의 새벽잠은 너무 소중하니까요~
또 그렇게 한 2~3주가 지났던것 같아요. 요즘 날씨가 점점 풀려서 아이들이 앞마당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데 와플이가 잔디밭에 넘어졌고, 일으켜 세워 들어왔는데 애한테서 개똥 냄새가?!?!
킁킁킁 하면서 보니 개똥 조각이 바지에 묻어 있지 뭐예요?!?!
아, 진짜!!!!! 누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나요? 저승 안 가보고 개똥밭에 구르면 그게 what the hell!! 헬, 저승인거지!!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 모션 감지 알람이 울려서 확인하니 그 개똥녀였습니다. 한두번도 아니고, 개똥 사인도 붙였는데 가볍게 무시하는 인성!
게다가 심지어 개똥 누는 동안 저희집을 올려다 보면서 보는 사람이 없나 확인까지 하는 장면을 보니 더더더 열받더라고요. 스스로도 부끄럽고 들키면 안되는 행위라는걸 알기 때문에 저희집을 확인하는거니까요. 지 개만 소중하고, 남의집 잔디와 남의집 어린 아이들은 안 소중한가요? 자기도 치우기 싫어서 안 치우는 개똥을 얼굴도 모르는 남은 좋아서 치울까요? 이렇게 되니 저의 분노와 생판 모르는 남의 개똥이 내집에 남겨 졌을 때의 기분이 어떨지 똑같이 알려 주는 참교육이 필요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아침 바로 작은 상자를 구입해서 집으로 왔어요. 그리고 개똥녀의 범행 현장 사진 두장을 프린트 하고,
'분실물, 고마워 할 필요 없어'
라고 쓴 메세지도 프린트 한 다음 개똥을 고이 담았습니다.
개도 대형견이라 똥도 어찌나 크고 푸짐한지... 윤기가 좔좔~ 신선하기 까지 해서 그 향이 얼마나 진한지, 많이 기뻐해 줬으면 좋으련만~
그리고 그 집 현관문 앞에 고이 내려놓고 왔어요. 개똥은 안치우면서 집은 참 신경써서 꾸몄구나~ 하면서요.
아, 이 집은 어떻게 특정하게 됐냐면요. 와플이와 제제가 밖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동안 그 개똥녀가 도로의 제일 끝에 있는 코너집에서 개를 데리고 나와 반대쪽으로 가더라고요. 그 반대쪽은 출입금지라고 씌여진 황무지거든요. 그래서 그 코너집이 있는 방향으로 아이들과 함께 슬슬 걸어가봤는데... 어이쿠 세상에!!! 그 코너집의 앞마당은 똥밭 천지였어요. 진짜 얼마나 똥이 많았냐면 제가 하나 둘 셋 넷 세다가 30까지 세다가 포기함요. 30까지 셌는데도 아직 반도 다 못 세었거든요. 그 정도로 똥밭 천지여서 그때 생각했던게, 자기집 앞마당도 안 치우는데 남의 집 앞마당 개똥 따위!!! 이렇게 생각하는 여자구나! 라고 생각했죠.
개똥녀는 개똥 택배를 잘 받았을까요?
그 이후 어떻게 됐을까요?
그날 밤 9시 반, 누군가가 저희집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옙!!! 총 찬 경찰이 찾아 왔지요. ㅠ.ㅠ
미국 살면서 아직 속도 위반 티켓 한번 끊긴 적 없는 모범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밤중에 경찰이 찾아 왔으니 초큼 긴장 했지요. 안했다면 거짓말이고요. 그렇다고 제가 한 일에 후회를 하거나 잘못한 일이라고는 생각치 않았기에 경찰 앞에서도 당당하리라 마음을 다잡았어요.
친절하게 인사를 건넨 경찰관은 이웃에서 개똥 택배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 집에서는 네가 보냈을거라고 짐작하던데 아는바가 있냐?라는 질문에 그간 있었던 일을 조목 조목 설명했죠. 그랬더니 경찰 왈
"니가 그렇게 한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해해, 그런데.... 번지수가 틀렸어!"
"내가 직접 봤는데 그집 개는 골든리트리버야, 사진속의 개는 검정색으로 보이는데 맞아? 그리고 사진속의 여자도 그 여자가 아니야, 그 분은 엄청 겁먹었더라고"
아!!!! 이럴수가!!! 엉뚱한 집에다가 개똥을 배달했다니!!!! 진짜 말로 다 못할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일단 경찰관한테 그 여자분에게 다음날 직접 사과하러 가겠다고 전하고, 경찰도 자기 명함과 케이스 넘버를 주며 그 여자가 누군지 알게 되면 연락을 달라고 하더군요. 저.. 소심하게 범죄 기록에 남는거냐며 물었더니 웃으며, 개똥 주인한테 개똥을 찾아준게 아니라, 엉뚱한 사람에게 개똥을 주면 무단 투기와 무단 침입이 될 수도 있지만 이번은 그냥 토킹이라고, 반대로 저희집에 개똥을 연속적으로 안 치우고 간 그 여자 역시 저희 사유 재산안에 침범해서 개똥을 투기한것이니 무단 침입과 무단 투기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의 모든 계획이 완벽한 듯 했는데... 결정적으로 개똥녀의 집을 더블 체크 하지 않은 것이 큰 실수가 되어 엉뚱한 사람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기게 되었어요.
다음날 아침 일찍 꽃 한다발과 펫코 (개용품 마트)의 기프트 카드를 들고 그 집을 찾아 갔습니다.
'어제는 개똥을, 오늘은 꽃을!!!'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ㅠ.ㅠ
너무 순하게 생기신 여자분이 골든리트리버와 함께 나오셨어요. 보자마자 백배 사죄 했어요. 진짜 진심으로, 제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사과하고, 그간 있었던 일들을 설명 드리니 이해한다고, 사과를 받아 주시겠다고 하시고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뭐, 이렇게 마무리 되긴 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로 잠재적 등극 했겠죠 뭐.
그런데 말입니다. 그날 오후에 옆집이 입주를 해서 옆집 아저씨와 길에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거짓말 처럼 제 눈 앞에 그 검은개와 그 여자가 지나가는겁니다. '저 여자 잡아야 하는데...' 맘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옆집 아저씨가 말을 멈추지를 않아 ㅠ.ㅠ 도중에 끊을수가 없는 분위기!!! 그래서 눈으로 쫓고 있는데 이번에도 다시 코너집을 지나 출입금지라고 씌여진 그 황무지 안으로 개를 데리고 시야에서 사라질려는 거죠. 오늘은 무조건 잡아야 해!!! 옆집 아저씨 말을 도중에 끊고 " 개똥녀가 저기 지나가서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하고는 차를 타고, 그 출입금지 구역이 끝나는 다른 동네의 초입에서 그 개똥녀를 기다렸죠.
개를 데리고 유유히 나타난 그녀, 얼른 차에서 내려, 익스큐즈미! 맴! 하고 불러 세웠습니다. (그 전에 휴대폰에 녹음기능 켜 둠, 혹시 모를 법적 다툼을 대비해서?) 전날 개똥 배달 사고덕에 저의 분노는 한결 가라 앉았기에 배운 여자 답게 ㅋㅋㅋ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죠.
"매일 아침 6시경에 *** 스트릿 산책하지 않나요?"
"네~"
"저 ****호에 사는데 그쪽 개가 볼일을 보고 나서 치우는걸 잊으셔서요"
"저 항상 치우는데요?"
"아, 저한테 영상이 몇개가 있는데 그쪽 개가 볼일을 보고 그대로 떠나는 영상입니다만..."
"항상 치우는데, 가끔 잊을 때가 있어요. 알았어요. 앞으로는 치울게요. 하지만 우리 옆집도 개를 그냥 풀어 놓고, 그 개가 돌아다니면서 우리집 앞마당에 똥을 싸기도 하고, 여기저기 똥을 싸기도 하거든요"
"저희집 똥은 그쪽 개가 남긴것으로 영상이 증거 영상이 다 있거든요"
"알았어요. 앞으로 치울게요"
개똥 안치우는 개똥녀답게 그녀의 태도는 뻔뻔했고, 영상이 있다는 말을 하기 전엔 거짓말까지 하는걸로 보아 그냥 사람 좋은 이웃은 아닌걸로 그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잘 치운다고 했으니 지켜보고 있는데... 그 이후로 저희집 앞을 절대로 산책하지 않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뒷집 이웃이 약 한달반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자기네 잔디밭과 양 옆집의 잔디밭이 완전 똥밭 천지더라는겁니다. 뒷집은 큰 대형견 두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뒷집의 이웃인 왼쪽집은 아직 입주전이고, 오른쪽은 개가 없는 싱글남이 사는 집인데 대형견의 똥이 널부러져 있으니 혹시라도 자기네 개가 그랬다고 오해 받을까봐 남편이랑 둘이서 개똥을 주웠다는데... 저야 그집 잔디밭의 증거 영상은 없으니 그 개똥녀의 소행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그저 카메라를 설치하고 새벽 5시50분에서 6시 10분 사이를 잘 지켜 보라는 말만 했네요.
추가 포스팅
이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서 추가 포스팅을 하자면 저번주에 앞집 이웃과 대화를 나누던중 그분이 저에게 개똥녀랑 얘기를 좀 해봤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그간의 일을 쫙~ 얘기하고선 개똥 치우겠다고 그녀로 부터 확답을 받았는데 그 이후로 우리집 앞을 절대로 안지나간다고 했더니 그 앞집 이웃 왈!
“ 고마워 엘리씨, 덕분에 개똥녀가 우리집 앞마당을 사용하기로 한 것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 웃으면 안되는데 개똥녀의 ‘산책로를 바꿀지언정 절대로 개똥은 치우지 않겠다’는 꿋꿋하고 한결같은 개지조에 웃음이 나더군요. 아마도 저의 복수는 제 이웃분들이 대신 해 줄 것 같아요. 제가 개똥녀에게 개똥 배달을 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고 했더니 잎집 이웃분이 “ 나만 그 생각을 하고 있었던게 아니구나!!!ㅋㅋㅋㅋㅋ” 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제가 아니여도 그 개똥녀는 개똥 배달을 언젠가는 받게 될거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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