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 전 급하게 시댁에 다녀 올 일이 있었는데 시외할머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독립 기념일 연휴의 계획을 취소하고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당황스럽고, 슬픈 마음, 그리고 미국의 장례식 문화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제가 뭘 해야 할지, 실수하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마음으로 일단 장례식에 입을 옷만 사서 시댁으로 갔습니다.
가족들을 만나뵙고, 다음 날 장례식에 참석하고, 그 다음날 돌아왔는데 시댁에 있는 동안은, 이 장례식에 관한 얘기를 포스팅 할 계획이 전혀 없었기에 사진 같은건 찍을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몇주가 지나고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장례식이였지만 전혀 무겁지 않았고, 오히려 밝았고, 고인의 가는 길이 장례식으로 인해 편안하고 즐거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이런 미국의 장례식 문화를 제 블로그를 통해 공유하는것을 시외할머님도 기뻐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어머님의 말씀으로는 그랬어요. 시어머님이 제가 블로그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와플이 아부지가 시어머님께 그렇게 자랑을 많이 했대요. 실은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미국의 한 한인 신문사에 일년이 넘도록 제 블로그의 글을 연재중이거든요. 그래서 시외할머님도 저를 자랑스러워 하실거라고 열심히 꾸준히 하라고 격려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시외할머님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제가 느낀 한국 장례식과 미국 장례식의 다른점을 포스팅 해 봅니다.
1. 미국의 장례식은 말 그대로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
장례식은 시외할머님이 돌아가시고 1주일 뒤의 토요일에 진행되었어요.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시외할머님께서 생전에 좋아하셨던 노래들이 식장에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식장의 분위기는 밝았구요. 식장 입구에는 시외할머님의 아기때의 사진부터 어린 시절, 학생 시절, 시외할아버님과의 연애시절 사진, 결혼 사진, 출산 후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 아이들과 찍은 사진등등 인생 전체를 통틀어 이러한 시간들을 살아오셨구나~라고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보드가 전시되어 있었어요.
사진 출처: google image
또 다른 사진 보드에는 할머님이 살아 생전에 이룬 가족 사진, 즉 할머님이 1남 2녀의 자녀를 두셨고, 1남 2녀의 자녀들이 각각 가족을 이루고, 그 자녀들이 장성해서 또 각각 가족들을 이루어 할머니를 뿌리로 해서 만들어 진 가족 사진들이 전시 된 사진 보드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당연히 저와 우리 와플이 제제 사진도 들어 있었지요. 나중에 장례식 시간에 사회자가 시외할머님 소개를 하실 때, 손자 손녀들의 결혼, 재혼으로 생겨 난 증손자 증손녀, 양 증손자, 양 증손녀까지 합해서 32명의 증손자, 증손녀가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입구에서 시외할머님의 살아 생전의 사진들과 가족 사진들을 구경하고 나니 상주 되시는 저희 시어머님, 시이모님, 시외할아버지가 계서서 그냥 아무말 없이 꼭~ 안아 드렸어요.
2. 예쁘게 단장하고 관 속에 누워 있는 시외할머님
그렇게 상주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나면 식장 제일 앞에 예쁘게 단장하고 관 속에 누워 계신 시외할머님을 보게 되는데요, 저는 아무래도 볼 자신이 없어서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 앉았어요. 그러나 제가 가까운 가족이다 보니 앉은 자리가 앞에서 두번째 줄이라 시외할머님이 너~무 잘 보여서 볼 수 밖에 없더라고요. 가까이서 볼 자신은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떨어져서 보니 그냥 주무시듯 너무 평안해 보였고, 혈색 있게 화장도 하고 생전에 끼시던 안경도 낀, 살아 생전의 모습 그대로라 생각했던 것 처럼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투병을 하신 것도 아니고,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하신 것이라 가족들에게는 그야말로 맘의 준비없이 갑작스레 보내 드리게 된 상황인데, 이렇게 마지막을 예쁘게 화장하고 평안하게 누워 있는 모습으로 보내 드리게 되니,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도 위안이 되고, 이별을 하는 시간이 너무 고통스럽지만은 않은 것 같았어요.
3. 슬프지만 우울하지 않은 분위기
장례식에 참석한 손님들이 모두 착석을 하고 장례식 시작 시간이 되면 사전에 예약 해 둔 목회자가 식을 진행합니다. 식을 진행하기 며칠 전에 만나서 고인의 사진도 보고, 고인의 가족 관계와 고인의 삶은 어떠했고, 어떤 사람이였는지 얘기를 나누는 듯 했습니다. 그때 나눴던 이야기들을 토대로 식을 진행하는데, 시외할아버지와 시외할머니의 러브 스토리를 장례식장에서 진행자에게 듣게 되었습니다.
시외할머님께서 토요일마다 광장에 롤러 스케이트를 타러 오셨는데, 그 모습에 반해 시외할아버지께서 대쉬를 하셨대요. 그리고 시외할머님의 인생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건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만드시고는 제일 마지막에 비밀 조미료를 항상 한꼬집씩 넣으셨대요. 그게 어떤 요리건 간에 항상 그 비밀 조미료를 빠뜨리지 않고 넣으셨는데 하루는 증손자인 벤자민이 그 조미료가 너무 궁금해서 열어 봤더니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텅빈 조미료통이였대요. 그래서 벤자민이 "할머니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동안 뭘 넣으신거예요?" 라고 물었더니 "이것은 사랑의 조미료란다~ 모든 음식에 가족들을 향한 내 사랑을 한꼬집씩 마지막에 넣은거란다" 라고 말씀하셨대요. 진행자분이 이 얘기를 하시면서 너무나 감동적이라며 할머니의 조미료통을 직접 가지고 와서 보여 주시더라고요. 이런 살아 생전의 소소하지만 시외할머님만의 인생 스토리를 얘기한 후, 좋아하시던 노래를 두 곡 정도 다 함께 듣는 시간을 가지고 마지막에 시외할머님과 가족들에게 스피치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가서 고인과의 추억에 대해 스피치 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면 식이 끝납니다.
아무도 소리내서 우는 사람은 없었고, 그저 슬플 땐 눈물을 훌쩍이는 정도이고, 식이 진행되는 동안 사회자가 고인과 관련한 농담을 하기도 해서 다같이 웃기도 하는, 지금까지 제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장례식장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어요. 이들이 소리내서 울지 않는것도, 장례식장에서 심지어 소리내서 웃는것도 고인의 죽음이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서 그런것 같았어요. 장례식 자체가 고인을 생각하고, 추억하고, 고인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니, 앞으로 만날 수 없어서 슬픈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고인의 행복했던 삶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마무리 해 주는 시간이라는 느낌이였거든요.
4. 뷰잉
모든 예식이 끝나고 나면 장례식장을 떠나기 전에 식장 앞에 놓여진 관 앞으로 가서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합니다. 관 앞에서 아무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는 사람, 눈물을 훌쩍이는 사람, 또 그 앞에서 가족들이 손을 잡고 고인을 위해 기도 하는 사람들, 자신만의 표현 방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가더라고요. 마지막 뷰잉은 저도 할까 했었지만 제가 앉은 자리에서 보여진 시외할머님의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할려고 뷰잉은 안 했어요. 남편과 와플이는 마지막 뷰잉을 했는데, 와플이는 아직 죽음의 의미를 잘 모르는것 같았어요. 한국에서는 임종의 순간 고인을 보지 못하면, 친가족이 아니고서는 그 이후에는 볼 기회가 없는데 미국에서는 이 "뷰잉" 이라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죠. 장례식의 목적과 의미를 잘 보여주는 시간 같았습니다.
출처: google image
5. 식사시간
장례식이 끝나고 나면 문상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데요, 장례식 식사 준비도 팟럭이더라고요?
장례식 전에 시어머님께서 단체 문자로 상주의 가족들에게 음식 하나씩을 장만해 오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내셨어요. 그리고 식사 대접할 장소를 사전에 예약 해 두셨는데, 그곳에 온 가족들이 음식을 하나씩 만들어 와서 올려 놓으니 그 많은 문상객들을 대접할 뷔페 식사가 순식간에 완성 되었습니다.
음식들은 보통 팟럭 파티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음식들이였고요, 메인 메뉴, 사이드, 디저트, 빵, 핫도그, 과일, 음료등등이 준비 되었어요. 저희는 비행기를 타고 간지라 음식을 준비해 갈 수는 없었고, 시댁에서 뭘 만들기도 그래서 각종 과일을 큰 파티 접시에 예쁘게 담아 갔어요.
6. 조의금
미국에도 조의금 문화가 있어서 장례식장 입구에 조의금을 담는 통이 있었어요.
조의금을 준비해 온 사람은 그곳에 넣기도 하고, 페이스북의 Go fund me 라는 온라인 모금 계좌를 개설해서 그곳을 통해 조의금을 보내기도 하고요. 꼭 현금이 아니더라도 기프트 카드를 보내기도 하더군요.
이렇게 장례식을 마치고 시댁으로 돌아왔는데 마침 그날이 저희 결혼 기념일이였어요. 시외할머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식 치른 마당에 결혼 기념일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런데 시어머님과 시누이에게 등떠밀려 결혼 기념일 데이트 하러 나가야만 했어요. 심지어 50년 넘게 평생을 같이 한 아내를 잃은 시할아버지는 페이스북에 결혼 축하 메세지도 남겨 주시고요. 그덕분에 생각치도 못하게 애들 맡겨놓고, 둘이서 오붓하게 (보다는) 평화롭게 조용히 외식도 하고, 쇼핑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숲속에서....... 뭘 생각하시는 겁니까? 버럭!!!
반딧불이 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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