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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기

미국인 남편에게 내가 한국인 아내라서 미안할 때...

by 스마일 엘리 2012.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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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국제 결혼한 커플들을 보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상에 국제 커플 블로그만해도 수백개는 되니까요.
블로그에서 보여지는 모습들과 한국인과 결혼하신 분들의 결혼 생활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혼수, 예단 문제, 시댁 문제등등)을 보고 국제 결혼을 동경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늘 말씀 드리듯, 무엇이든지 일장일단은 다 있는 법!
한국인끼리 결혼한 부부들도 행복함과 문제점이 있듯이 국제 커플들 역시 행복한 모습과 또 그들 나름대로의 문제점이 있답니다.

국제 커플들의 블로그에서 흔히들 말하는, 국제 결혼의 단점이라면 둘 중 한 사람이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와야 하므로 항상 가족과 친구들,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야 하고, 그동안 쌓아 온 커리어를 포기해야 하고, 소소한 문화차이부터, 정말 이해하기 힘든 문화차이까지...

처음에는 사랑에 눈이 멀어 둘이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이까짓 것들 다 극복할 수 있어, 아무 문제도 아니야 라며 큰 소리치지만 막상 낯선 외국땅에서 친구 없이, 가족 없이, 직업 없이 있다보면 '이까짓 것들이 아니였네~' 하고 깨닫게 되는 시점이 옵니다.
딱 그 시점에 서로 받아 들이기 힘든 문화차이로 싸움이 나면 세상 온갖 외로움과 서러움은 다 내 것이 되는거죠. ^^;;;

하지만 위로가 되는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남편 역시 자신의 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 배우자를 선택함으로써 감수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그런 부분들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어야 원만한 결혼 생활을 지속해 나갈 수 있구요.

이런 얘기는 사실 여타 많은 국제 커플들의 블로그에서 많이 읽으셨을테지만 저희에게도 비켜 갈 수 없는 문제이기에 저도 한번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의 큰 명절인 땡스기빙데이(추수 감사절)가 다가 오고 있습니다.
땡스기빙 데이는 미국인들에게는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큰 명절로, 칠면조 구이를 비롯해, 여러가지 명절 음식들을 준비하고,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음식을 나눠 먹는 날이죠.


남편은 저번주부터 땡스기빙을 손 꼽아 기다리며, 너무너무 신나하고 있답니다.

땡스기빙이 바로 다음주야!! 믿겨? 맛있는 것들 많이 먹을 수 있겠다!! 그리고 땡스기빙 파티도 있으니까 며칠동안 계속 맛있는것만 먹겠네~

한국인에게 추석하면, 연휴에 집에서 각종 전과, 산적, 신선한 햇과일, 고기, 송편등을 나눠 먹는 그림이 그려지듯, 미국인 남편에게도 자신의 명절 그림이 있는것이죠.
머리에 뒤집어 써도 될 만큼 큰 터키와, 캐서롤과 같은 사이드 디쉬들, 디저트, 쿠키등 먹을거리 다양한 식탁과, 가족들과 함께 그 동안 못 나눈 대화도 나누며 느긋하게 연휴를 쉬면서 보내는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추천당근 주세용~ ^^ 엘리는 추천당근을 먹고 힘내서 글을 쓰거등요~

하지만!!!

그 그림속에서, 저희들이 현재 일본에 있으니 가족들이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는 그림은 지워지고, 풍성한 음식이 가득한 식탁에 남편과 저 둘만이 그 그림속에 남겠죠.




그럼 제 그림은요...
저에게 있어 터키란 '형제의 나라' 일뿐 먹는게 아닙니다. 캐서롤은 캐서린의 사촌쯤 되나요?
디저트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면 족하고, 쿠키는 슈퍼에 파는 초코칩 쿠키도 충분히 촉촉합니다.
고로 저에게 있어 땡스기빙은 그저 연휴일 뿐, 남편이 가지고 있는 땡스기빙의 정신과 그 의미는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죠. (아마도 땡스기빙을 추억할만한 기억 자체가 저에게 아직 없어서 그런것일지도 모릅니다. )
그러다 보니, 남편이 기대하고 있는 그런 명절의 모습을 제가 만들어 줄 수가 없답니다.
추석에는 좋아하든 싫어하든 꼭 송편을 먹어줘야 추석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처럼, 남편은 땡스기빙때 터키를 먹어줘야 땡스기빙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전 터키를 만져 본 적도, 요리해 본 적도 없으니 만들 수가 없어요.  ㅠ.ㅠ
요리책을 찾아서 만들어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제 머리통을 집어 삼킬 정도로 큰 사이즈의 칠면조를 하루종일 걸려 요리할 엄두도 나지 않고, 요리해도 남편과 둘이서 다 먹어 치울려면 한달내내 식탁에 올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미드 프렌즈에서 모니카가 칠면조를 뒤집어 쓴 장면

아니면 칠면조 먹어 없애자고 사람들 불러서 파티를 해야 할지도;;;;
칠면조 뿐만이 아닙니다.
캐서롤이나, 펌프킨 파이 쿠키등, 제가 평상시에 서양 요리를 주로 해 왔던 사람이라면 뚝딱 뚝딱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주로 한식 위주로 먹었기 때문에 각각의 요리들을 하나씩 요리책 찾아 보며 요리할 용기도, 그리고 도구까지 다 새로 갖추어 가며 요리할 필요성도 못 느끼다 보니 그냥 안 하기로 한 것이죠.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명절을 기다리고 있는데, 전 그 명절의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가 없어서 너무 미안하답니다.
평상시에는 항상 당당하고, 제가 한국인 아내라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낀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요, 꼭 이 땡스기빙만 되면 미안해 지더라구요.
그리고 이것이 어쩌면 저희 남편이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서 감수해야 할 것들 중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남편이 며칠간 맛있는걸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제가 미안해 하며...

어쩌면 앞으로는 땡스기빙때 자기는 영원히 터키를 못 먹을지도 몰라, 내가 터키 요리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거든. 그리고 미안해~ 다른 미국인들이 즐기는 것처럼 땡스기빙을 즐길 수 없어서...

그랬더니 돌아온 남편의 대답!

아니, 지금은 우리 둘을 위해서 터키를 만들 필요없어,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생기면 그때 아이들에게 땡스기빙 정신을 가르치고, 그 연휴를 함께 즐길거야. 터키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만들거니까 걱정하지마.
가족이 생기면 우리의 땡스기빙은 지금과 많이 다를거야.

서운해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저의 미안한 마음까지 싹 가시게 해 준 남편이였습니다.
그래요, 나중에 아이들이 생긴다면 훨씬 더 명절다운 모습으로 땡스기빙을 보낼 수 있겠죠.
남편이 새벽부터 터키를 굽고, 그때쯤이면 저도 캐서롤인지, 캐서린인지 뭐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돌아오는 땡스기빙데이~
비록 남편에게 풍성한 식탁은 못 차려줘도, 남편이 좋아하는 갈비찜 (매운 갈비찜 말구요 ^^;; ) 으로 감사의 마음을 나누며 즐겁게 보낼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터키는 다음날 있을 땡스기빙 파티에서 많이 많이 먹이죠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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