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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세포라 일기

미국 세포라 일기-미국인 동료의 영업 비밀

by 스마일 엘리 202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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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하면 나나양이 어떤 캐릭터인지 감 잡으신 분들 많으실거예요. 자신감 넘치고, 자기애가 강하고, 자존감도 높은 사람이예요. 그도 그럴것이 외동딸인데다가 부모님한테 굉장히 사랑 받고 컸고, 항상 부모님으로부터 네가 최고다, 넌 뭐든지 할 수 있다, 넌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런 말을 듣고 자랐으니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어요.

물론 저를 아랫것으로 여기긴 했지만 그건 자기 자신이 저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지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가 나나양에 대해 적대적인 마음이 안 생기는거예요. 물론 인생을 그녀보다 두배 넘게 더 살아 온 제 눈에는 사회인으로서 하는  그녀의 행동이나 발언이 미성숙해 보일 때가 있지만 그건 정말 그녀가 아직 사회 경험이 부족하고 어리기 때문이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성장할거니까요.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저의 20대를 돌이켜 봐도 나나양 보다 더했음 더했지 덜하지 않았어요. ㅎㅎㅎ 저도 일하기 싫어서 잔머리 굴리고, 하기 싫은 일 남들한테 미루고, 회사 가기 싫어서 꾀병 부리고, 거짓말 하고 결근 하기도 하고... 지금의 제가 뒤돌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직장인이였어요. 뭐 그런 제 자신을 잘 알았기에 승진 같은건 꿈 꿔 보지도 않았어요. 승부욕 같은 것도 없었고, 야망도 없었고, 직장에 대한 애착도 그닥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집에서 애 키우며 사회와 단절 된 생활만 10년 넘게 하다가 밖으로 나가 일을 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고, 10년 살림 육아 경력직의 아줌마 정신으로 일했을 뿐인데 일 잘한다고 칭찬 받으니 신나서 더 열심히 한거죠. 

저도 그런 사회 초년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나나양의 귀여운 농땡이 정도는 이해 한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예요. 단지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뿐! 게다가 그녀에게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고객 서비스 스킬이 있는데요, 그 누구든 간에 그녀와 대화를 한 손님은 그녀와 친구가 되어 버려요. 정말 정말 눈 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 없음요. 그래서 그녀의 단골도 엄청 많답니다. 

그 고객 서비스 스킬은 바로 말을 너무너무 예쁘게 한다는 거예요. 그 에피소드를 오늘 풀어 볼게요.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딱 봐도 60이 훨씬 넘은 여성분이 오셔서 주름 크림을 추천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땐 제가 어느 제품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때여서 나나양에게 물어봤죠. 

그랬더니 그 손님이 다시 한번 나나양에게 " 알다시피 늙으면 이렇게 피부가 쭈글쭈글 하잖아요. 그래서 주름 크림을 써 보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사실 손님이 저에게도 저렇게 말씀을 하셔서 저는 손님의 고민을 공감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같이 고민하는 표정으로

" 알겠어요, 저희에게 확실히 좋은 안티 에이징 크림이 있어요. 손님에게 딱 맞는 제품으로 찾아봐요" 라고 하면서 나나양에게 안티 에이징 크림 추천과 위치를 물어 봤었거든요. 그런데 손님이 나나양에게도 저렇게 똑같이 말하니까 나나양이 갑자기 손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오우 노!!! Girl friend,  Don't say that!!! You are beau---tiful just the way you are"

( 오우 노!  그런말 마세요,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너~~~무 아름다우시니까요) 

뷰리풀도 아니고

비유우우리풀!!!

이라고 엄청나게 강조함!!! 게다가 나이가 70은 가까워 보이는 손님에게

 "걸 프렌"

이라니!!!!! 동방예의지국 출신녀에게는 어르신에게 감히 갖다대지도 못할 호칭 "걸"  거기다가 누가 봐도 주름이 너무 쭈글 쭈글해서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속보이는 거짓말 같아 차마 하지 못할 것 같은데 너어어무 거리낌 없이 "You're 비유우우리풀" 해 버리니까 제가 너무 민망해지더라고요. 저 말을 듣는 손님도 본인 스스로 나나양이 화장품 팔려고 너무 샤바샤바 한다고 느낄거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오히려 손님은 소녀처럼 살짝 부끄러워 하시며 "오오오~ 땡큐~" 하며 또 이것을 인정해 버리심요.(칭찬엔 절대로 거절을 망설이지 않는 미쿡인들이라는건 알고 있었지만..흠...) 

으응??  저는 그냥 뇌정지 왔어요. 그 뇌가 정신 차리기도 전에 우리 나나양은 쉬지 않고 막~ 던지더라고요. 

"우린 모두 각자 그 나름대로 다 아름다워요, 그러니 그런말 마세요. 손님은 정말 완벽하세요, 나이가 손님의 아름다움을 막을 순 없어요" 

저 정말 나나양 뒤에 따라 가다가 가스불 위에 오징어 되는 줄 알았어요. 오글 오글 오글 오글 오글~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쩜 저런 예쁜 말을 할 수가 있지? 영업 멘트인줄 알면서도 기부니가 좋아져서 그냥 쟤가 막 좋아지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그땐 몰랐는데 이것이 우리 나나양의 엄청난 영업 스킬 이였던거죠. 

손님한테 물건을 팔기 보다는 일단 손님과 커넥션을 먼저 만든달까요? 제품 판매보다 손님과 연결 고리를 만들고, 친분을 만든 다음, 손님이 나나양에게 마음을 열게 만들어요. 그런 후에 나나양이 뭔가 권하면 그냥 홀린듯이 바스켓에 화장품을 담고 있... 

이런 오글 오글 화법이 미국식 화법이냐? 예스이기도 하고 노! 이기도 한데요, 기본적으로 미국인들이 칭찬에 굉장히 후하고 미사여구를 쓰는 것이 흔한 일이여서 한국인인 제 입장에서 들으면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미국인들이, 모든 영업 사원들이 손님들에게 이런 화법으로 접근하지는 않거든요. 저희 매장에서도 오직 나나양 뿐이예요. 가가양 역시도 굉장히 친절하고 예쁘게 말을 하지만 나나양만큼 저런 오글이 화법은 사용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오퍼레이션 담당인 라라양은 좀 쿨하고 화끈한 화법의 소유자라 굉장히 유쾌한 농담을 많이 주고 받는 편이고요. 그런 동료들과 비교해 볼 때 저의 접객 화법은 너무 정적이라고 할까요? 한국과 일본에서의 사회 생활에 익숙해져서인지 손님에게는 '정중하게, 예의 바르게, 친절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농담 치고 받는것이 아직 어색하고, 맘에도 없는 소리를 온갖 아름다운 미사여구 써가며 입 밖으로 내 뱉을 수가 없더라고요. ㅠ.ㅠ  그래서 동료들과 비교 되서 저의 세일즈 능력이 떨어지는건 아닌가 자책하기도 했답니다. 

아무튼 이런 나나양의 화려한 말빨과 오글이 화법덕에 매장에 와서 꼭 나나양을 지명해서 찾고 나나양에게 물건을 사려는 손님들이 꽤나 많답니다. (물론 커미션제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지명해서 물건을 구입해도 특별히 수당을 받고 그런건 없지만 윗사람들 눈에는 보기가 좋겠죠. ) 

그리고 나나양은 모든 손님을 my girl 이라고 불러요. 단골이 매장에 들어서면 그 손님이 들으라는 듯

"헤에이!!! '마이걸' 이 여기 왔네!!"

라거나 처음 본 손님을 부를 때도 " 마이걸, 잠시만 기다려~" 라거나 손님을 저에게 부탁할 때도 "엘리, 마이걸 좀 도와 줄래?" 

그러니 손님들도 자신이 '나나양의 걸' 이라고 믿고, 그렇게 단골이 되어 버리더라고요. 

또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는 어떤 손님이 나나양의 도움으로 물건들을 사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는데 그 손님이 얘기 도중에 

"내가 54살이야" 하는데 저도 놀라고 나나양도 깜짝 놀랐어요. 그 분은 이마 주름이 너무 깊어서 60대가 넘어 보였거든요. (보통 백인분들이 실제 나이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그 분은 특히 더 그래 보였는데 50대였다니 너무 놀랐음요) 그런데 나나양이 손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주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No, you are NOT!!!" ( 아니잖아요!" ) 

그러자 그 손님이 기분 좋게 웃으며 "진짜야!!!" 하니까 나나양이 

"오우, 걸!!!!! 전혀 54살처럼 보이지 않아요, 난 40대 후반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피부가 너무 비유우우우리풀 해요" 

전 정말 나나양의 저런 화법이 너무 신기해서 그냥 턱이 떨어질 지경이예요. 그러다 불현듯 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몇개월 전의 기억...

나나양과 처음으로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갔던 날!!! 

비비큐 치킨 집에서 제 나이를 물어 본 나나양에게 나이를 알려 주자 그녀는 단호하게 답했죠. 

"No, you are NOT!!!!" 

"난 네가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라 그래서 33~34살 정도일거라고 생각했어" 

그 말에 기부니가 좋았던 그때의 나,

정.신.차.려!!!!! 

 

 

미국 세포라 일기 다음 편은 전 편의 뒷 이야기에 이은 '소문' 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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