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와플이의 말.말.말. 시리즈 입니다.
고백하건데 우리와플이 이중언어가 가능한 아이로 키우는건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 보다는 영어가 더 편한 와플이.
한국어를 이해하긴 하지만 제가 일상속에서 늘상 쓰는 말들만 이해하고, 한국 티브이의 어린이 영화 같은건 이해를 잘 못하더라구요. 그래도 아직까지 한국어를 포기하지는 않아서 다른 한국인 이모들을 만나면 한국어로 얘기할려고 노력은 합니다. 이것도 그나마 작년에 한국을 다녀 왔기에 한국인들에게는 한국어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또래 한국애들처럼 유창하게 말은 못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 다 한국어로 했거든요. 정말 뿌듯했고 와플이 목소리로 듣는 한국어가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는데, 그때 생긴 에피소드 하나가 있습니다.
1. 고장 난 와플이?
한국에 갔을 때 친정집에서 머물렀는데 그때 제제가 두돌이 되기 전이라 애기라면 애기였고, 한국의 낯선 분위기와 만나는 사람들이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니 낯가림이 무척 심했어요. 그래서 저한테 붙어서 떨어지질 않으려고 해서 계속 제제를 안고 다니거나 제제를 옆에 두고 스스로 뭐든 할려고 하고, 또 스스로 잘 해 내고, 낯가림도 없이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는 성격의 와플이는 상대적으로 덜 챙기게 되었죠.
그랬더니 그것을 와플이 스스로도 감지했던지 어느날 밤에 잘려고 누웠는데 와플이가 등돌리고 누워서 훌쩍 훌쩍 하길래
"와플아 왜 그래?"
대답도 안 하고 훌쩍 훌쩍 하더니 급기야는 아빠도 없는 한국땅에서 뭔가가 단단히 서러웠는지 으앙~ 하고 울어버리더라구요. 그 당시에 전 아무런 이유도 몰랐기 때문에 너무 놀라서 제 팔에 누워 있던 제제를 떼어내고 와플이를 안아주며 물었습니다.
"와플아, 왜? 왜 이렇게 슬퍼?"
그랬더니 와플이가 한국어로 또박 또박
"엄마, 내 하트가 고장났어"
"응???""
"내 하트가 고장났어"
"니 하트? 그게 뭐야? 그게 어디있는데?" 했더니
자기 가슴을 가르키며
"내 하트, 여기!" 이러더라구요.
"니 하트가 왜 고장났어?" 했더니
"엄마는 와플이 안 사랑해, 제제만 사랑해. 그래서 내 하트가 고장났어. 나 너무 슬퍼"
하면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뚝.
그제서야 무슨말을 하고 싶었던건지 알게 되었습니다.
"My heart is broken (마음이 아파)" 라고 얘기 하고 싶은데 4살짝리 와플이가 이 말을 한국어로 표현할려니 하트가 고장났다고 말을 해야 했던거죠.
얼마나 서운했으면, 게다가 4살 나이에 벌써 마음이 아프다는 감정을 느끼다니... 저도 너무 미안하고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와플이가 표현한 "하트가 고장났어" 이 말이 너무너무 귀여워 미치겠더라구요.
아무튼 와플이가 느꼈을 소외감과 슬픔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이후로 더 신경쓴다고 노력은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와플이가 한국에서 많이 아프다가 아빠를 만나자마자 씻은듯이 나은것도 아마 그때의 섭섭함과 마음의 상처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전 제 고향인 한국이고, 제 엄마와 아빠가 있는 친정집이지만 사실 조부모와 떨어져 살아서 거의 만난적이 없는 와플이에게는 그저 낯선 땅, 낯선 가족일 뿐 믿고 의지할 사람은 단 한 사람 저 뿐인데, 제제가 제 옆에 껌딱지처럼 달라 붙어 있어서 늘 자기는 엄마 곁에 떨어져 있다고 느꼈으니 그 상실감과 외로움은 얼마나 컸을까 싶어요.
다행히도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 온 이후로는 한번도 와플이의 하트가 고장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랫만에 보는 와플이의 애기애기 하던 사진.JPG
2. 이 여자 누구야?
어느날 바닥에 떨어진 제 샘스클럽 회원카드를 발견한 와플이
그리고는 그 회원카드에 있는 제 사진을 보더니 저에게 묻습니다.
"마미 후 이즈 디스?"
아니 얘가 정말 사진을 몰라보고 묻는건가 싶어서
"누굴까?" 했더니
"아이 돈 노! 누구야?" 라고 다시 묻는데 정말 저를 못 알아 보는것 같았습니다. 그래봤자 3년전 사진인데 ㅠ.ㅠ
그래서 같이 들여다보면서 "잘 봐봐, 누군거 같애?" 그랬더니 와플이 왈
"올드 걸"
이 사진속의 여자가 누구인지는 못 알아 보겠는데 나이 든 여자라는건 알아보는걸 보니 니 애미 확실히 늙었나보다....
이런 때가 있었지...제제보다 더 아기일 때가...JPG
3. snake가 한국어로 뭘까?
자~ 이 에피소드를 읽기전에 연습을 좀 하셔야 합니다.
뭐라카노를 경상도 억양으로 딱 열번만 소리내서 연습해 주세요. 그래야 생생하게 이 에피소드를 전달할 수 있거든요. (이래서 브이로그가 필요함 ㅋ) 뭐라카노! 뭐라카노! 서울 억양 안됩니다. 철저히 강세가 "카"에 있는 경상도 억양의 뭐라카노 발음이여야 합니다.
한국을 다녀온지 얼마 안 된 와플이. 매일 매일 한국어를 쓰던 기억이 남아서 한국어 영어 중 하나가 모르는 단어 일 경우 저에게 질문을 하더라구요. 이건 한국어로 뭐야? 이건 영어로 뭐야? 이렇게요. 그렇게 차를 타고 가다가 와플이랑 뱀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와플이의 snake 영어 발음이 너무 좋은거예요. 미국인들이 snake처럼 ke로 끝나는 K의 발음을 할 때 K가 목 안에서 딱 걸리는 느낌의 소리로 발음을 하는데 와플이가 정확히 그렇게 발음하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snake를 계속 말해 보라고 했죠. 그러다가 갑자기 와플이가 snake가 한국어로 뭔지 아는지 궁금해져서 물었습니다.
"와플아, snake가 한국어로 뭐야?"
너무 당당하게 와플이는 뭐라카노의 "카"에 강세가 있는 경상도 억양으로
"스.네.이.크"
라며 "이" 에 강세를 두어 또박또박 말하더군요.
한국을 다녀 온게 실수였는지, 부산을 다녀온게 실수였는지... 암튼 이 애미가 뭔가 큰 실수를 한 것 같구나...
이때는 혼자서 엄마 사랑 듬뿍 받았는데... 지금은 엄마 사랑을 나눠 가져서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
와플이가 레고를 이용해 처음으로 동물을 만들었던 날! 공룡이래요. 이렇게 와플이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니 그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합니다. 내일 아침에 더 세게 더 꼭 안아 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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