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국 생활기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눈이 오면 생기는 일

by 스마일 엘리 2018. 1. 15.
반응형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사우스캐롤라이나 블러프턴이라는 곳이죠.

이곳의 날씨는 여름엔 뜨거워 죽고, 겨울에는 온화한 날씨입니다. 한국의 초가을 날씨? 정도랄까요? 좀 많이 춥다 하는 날이면 한국의 늦가을에서 초겨울 넘어갈 때쯤의 날씨 정도 될거예요.

그래서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반팔, 쪼리 신은 사람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습니다.

작년 새해에 저희 시부모님께서 저희집에 방문하셨을 때 힐튼헤드에 있는 콜리그니 비치에 갔었는데, 그때가 한겨울 1월 초였음에도 불구하고, 와플이와 와플이의 사촌형아는 바닷물에 들어가 몸을 담그고 놀았으니까요.

 

그런 이곳에 눈이 온다는 예보가 떴습니다.

눈 구경 하기 힘든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눈이 올거라는 예보에 설레어했지요.  저도 몇년만에 보는 눈인데다 와플이와 제제에게 눈을 직접 보여 줄 수 있어서 당연히 설레었습니다.

1월 3일 눈이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1월 2일에 와플이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음날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자고 약속을 하고 재웠어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 대신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와플이와 저는 잔뜩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6시반에 출근했던 남편은 내리는 비가 빙판을 만드는 상황 때문에 오전 9시에 집에 돌아 왔더라구요.

이게.... 집에 올 일인가?

 

그리고 몇시간 후에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야!!! 눈이다!!!

와플이도 신났지만 와플이보다 더 신난 이 엄마는 눈이 도중에 그칠까봐 조급해져서 얼른 애들 옷 갈아 입혀서 뒷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따뜻한 곳에 살아서 절대로 입을 일이 없을것 같아 두꺼운 겨울 점퍼는 미국에 온 이후로 구입하지도 않았는데 작년에 친정엄마가 보내 주신게 딱! 한벌 있었어요.

일년전에 받았지만 입을 일이 없어 옷장에 보관만 해 두었는데 이 옷이 없었으면 와플이는 눈이 와도 못 나올 뻔 했더랬죠.

​일본 이와쿠니에 살 때, 와플이가 16개월쯤인가? 눈이 내려서 와플이에게 눈을 보여 줬는데 그건 기억에 없을테니 와플이가 기억할 수 있는 첫눈은 아마 이 날 본 것일거예요.

​겨울 외투도 없이 사는 애들이 장갑이라고 있었겠습니까?

벙어리 장갑 대신에 양마리 장갑이라고 급한대로 제 수면양말 끼워 주었습니다.

눈 처음 보고 완전 신난 와플이

이때만해도 얼음 덩어리 같은 눈이 내려서 눈이 얼음처럼 딱딱하고 했어요. 그래서 밟으면 서걱서걱 거리니까 그게 재미있어서 눈이 조금이라도 쌓인 곳이 있으면 가서 밟아보더라고요.

​뭔지 모르지만 재밌고 좋다. JPG

제제는 그냥 나와서 노니까 좋은거예요.  추워서 코가 빨개져도 절대로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뻐팅기던 녀석

​엄마의 수면 양마리 장갑 아주 야무지게 잘 끼고 있습니다.

이것도 없었으면 어쩔뻔 했냐며;;;

​그렇게 눈 구경 시켜주고 너무 추워서 집에 들어왔습니다.

이 애미도 눈 구경 할 거라고 갑자기 창고 뒤져서 방한 용품 꺼내서 대충 둘러 쓰고 애들 따라 다니며 사진 찍어 주고 들어 왔는데 와플이가 이 호피 모자 장갑이 맘에 들었는지 새초롬하게 쓰고 앉아 있더라고요.

내가 썼을 땐 분명 짐승 같아 보였는데....

​오오~ 쌓이지 않을 것 같던 눈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눈보라도 막 날리면서 완전 펑펑 쏟아지더라구요. 역쉬 겨울은 눈이쥐!!!!

​눈 보기 힘든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저는 이렇게 쌓여가는 눈을 보니 갑자기 오래전 가출한 낭만을 찾고 싶더라고요.

애 키우느라 여유있게 카페에서 커피도 잘 못 마시는데, 이런 날 아니면 언제 집 뒤뜰에 내리는 눈 보면서 따땃한 커피잔 양손으로 부여 잡고, 커피 한사발 마셔보겠냐며 또 급하게 커피 타서 뒷마당으로 나갔죠.

가족들한테 자랑할 허세샷도 한장 찍고...

엉덩이 붙이고 커피 들이킬려는 찰나.... 엉덩이가 철제 의자에 들러 붙는줄 알았어요. 영하의 온도에 철제의자가 찬기운 한껏 받아서 드라이 아이스가 된 것 같은 느낌?!

낭만은 개뿔~

​그래도 점점 쌓여가는 눈을 보니 왜 자꾸 설레고 나가고 싶은건지...

​그래서 결국 와플이와 와플이 아부지 데리고 다시 나갔습니다.

와플이와 발자국 남기기도 해 보고...

​와플이 아부지와 와플이는 눈사람을 만들겠다네요.

우리 제제도 함께 했으면 좋으련만 꿀잠 즐기는 중이라 깨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제의 꿀잠=엄마의 꿀휴식

​눈사람을 만들 눈을 쓸어 모읍니다.

눈사람 만들 생각에 신난 와플이는 삽질이라는 노동을 놀이로 승화시켰습니다.

이곳에 눈이 이렇게 쌓일 정도로 내린게 거의 30년만의 일이라고 하니... 저희가 제설도구가 뭐가 있겠습니까?

눈사람은 만들어야겠고, 눈은 쓸어모아야겠고, 벽 닦는 청소 도구 총출동!

​열심히 쓸어 모았는데, 눈이 정말 파우더같아서 뭉치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전 열심히 물을 길어 날랐지요.  온가족 합심해서 눈으로 사람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이 난리;;;

​어느덧 형태를 갖춘 눈사람

 

​눈사람의 눈, 코, 단추가 되어줄 당근과 포도를 냉장고에서 긴급 공수 했습니다.

벙어리 장갑보다 기능성 더 좋은 양마리 장갑의 활약으로 와플이는 눈사람의 눈 코 입도 문제 없이 붙여 주었습니다.

​단추도 붙여줘야죠.

남편이 아끼는? 원숭이 모자도 씌워주더니 목도리도 씌워 줘야 한다며 아주 멀쩡한 저의 목도리를 들고 나오길래

"아니, 이 사람들이!!!" 버럭 한번 해 주고, 조금 덜 멀쩡한 목도리를 내 주었습니다.

드디어 눈사람 완성!!!!

​와플이의 첫눈사람과 기념 촬영

부자가 속닥 속닥 하더니 이름도 지었대요.

트로이래나 뭐래나

눈 사람 다 만들고 장비 부족으로 눈썰매 대신에 눈미끄럼 타는 와플이

실컷 즐기거라, 우리가 여기를 떠나지 않는 한, 와플이 니가 서른이 되기 전에는 눈 구경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르니...

​나중에 뉴스를 보니 블러프턴에 눈이 4인치 (10.16센치)나 내렸더라고요.

눈이 안 내리는 곳에 눈이 내려서 이곳 사람들은 눈사람도 만들고 눈썰매도 타고 눈을 즐기기도 했지만 사실 도시는 패닉에 빠져버렸습니다.

 

구글에서 퍼온 사진인데요, 북쪽 지방에서는 눈이 아무리 많이 내려도 차들이 문제 없이 일상적으로 잘 달리지만 남쪽 지방에서는 눈이 오면 사진처럼 엉망진창에 도로가 마비가 되는 사진인데요, 예전에 이 사진을 본 적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뭘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게 진짜였어요.

 

눈이 내려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조기 퇴근을 하고, 마트며,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섬과 섬을 잇는 다리는 폐쇄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페이스북에 도로 상황을 올리는데 군데군데 교통사고는 말할 것도 없고 완전 난리법석이였어요.

​눈길 운전에 익숙치 않은 운전자들은 이렇게 갓길로 미끄러져서 차 유리에 "Sorry"라는 메세지와 함께 차만 남겨두고 집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눈 때문에 정전이 된 지역도 있었고, 저희 동네도 전기가 깜빡 깜빡해서 불안해하기도 했었어요. 미국집에 벽난로가 왜 필요한가 했더니 겨울에 정전되면 벽난로가 있어야 난방을 하겠더라구요.

 

아무리 눈이 안 오는 지역이라도 이 정도의 눈에 이렇게 도시 전체가 마비 될 정도라니 말도 안된다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눈이 오지 않고, 얼음이 얼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에 제설장비나 제빙장비가 없어서 도로를 복구할 수가 없는거죠. 눈 위에 뿌리는 제설용 소금도 준비 되어 있지 않고요. 운전자들은 빙판길, 얼음길을 운전해 본 경험이 없고, 타이어에 감을 수 있는 체인 장비 또한 준비되어 있는 차량도 없어요.

그러니 도로가 마비되고, 사고가 속출하고, 그래서 안전을 위해서 아예 집 밖에 나오지 못하도록 직장도 조기 퇴근하고, 마트 상점도 다 문을 닫아 버리는거죠. 눈이 온 그 다음날도 대부분의 직장은 강제 휴무였거든요.

 

따뜻한 이곳에 30년만에 눈이 내린건 winter storm 때문이였는데요, 온라인상에서는 우스개소리로 눈의 여왕인 엘사를 열받게 해서 그렇다며...

이렇게 엘사에 대한 현상수배가 걸렸습니다.

 

 

​그리고 엘사는 이상한파를 몰고 온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체포 되었대요. ㅍㅎㅎㅎㅎㅎㅎㅎㅎㅎ

​한파거나 말거나 우리 와플이는 언제 볼 지 모르는 눈 실컷 즐기라며 다음날도 아침 일찍 무장 시켜서 뒷마당에 내 보냈죠. 그랬더니 스노우 엔젤 만들기를 하더군요.

눈으로 인해 도시는 마비 되었어도 블러프턴 온동네 어린이들은 분명 즐거웠을거예요.

사실은 어른들이 더 즐거워 하는 것 같았어요. (블러프턴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속닥속닥)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