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큰 태풍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피해도 심각하다고 하던데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도 허리케인 매튜로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제가 살고 있는 사우스 캐롤라이나가 바로 그 매튜의 영향권이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자연재해를 맞이(?)하고,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미국 정부를 경험해 보았기에 공유 해 볼려구요.
저번주 화요일, 그러니까 10월 4일, 제제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휴대폰을 들고 뛰어와 저에게 읽어 보라고 하더군요.
'비몽사몽한 내게 읽으라 하지 말고, 먼저 읽은 당신이 브리핑을 해 주면 좀 좋겠습니까...'
라고 생각하며 본 내용은 허리케인 매튜가 미국으로 올라오고 있고, 태풍의 위력이 매우 강하니 대피령을 다음날인 수요일 3시에 주지사가 직접 발표하겠다는 내용더라구요.
허리케인이면 한국의 태풍인데, 무슨 대피까지나... 하며 호들갑에 코웃음을 쳤다지요.
그러나 남편은 와플이와 제제도 있고, 태풍이 오면 정전이 될 것이고, 혹시라도 지붕이 날아간다던지 하는 사고가 생길 수 있으니 지시대로 대피를 하는게 좋겠다고 해서 대피를 가장한 애틀란타 여행을 급 계획 했습니다.
일단 자동차에 가스를 채워야 하니 주유소에서 가스를 채우고 오겠다고 나간 남편...
난리통을 처음으로 실감할만한 사진을 보내 옵니다.
주유소를 세군데나 돌았는데 이미 가스가 동나고 없어서 네번째 겨우 찾아 간 곳은 이미 줄이 주유소 밖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며 시간이 좀 걸릴것 같다는 메세지를 보내 오더군요.
이것이 피난의 시작이였습니다.
이미 아이티에서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낸 허리케인이라 어느 정도 피해를 예상할 수는 있지만 대피를 해야 할 정도인가 여전히 의문이였죠. 하지만 모든 상점도 문을 닫고, 학교도 휴교령을 내렸고, 모든 회사들도 휴업을 하고 대피령에 따라 대피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저희도 일단 뒷마당에 나와 있는 날아갈 만한 것들은 차고로 다 옮기고, 테이블도 뒤집어서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해 두고 목요일 오전에 애틀란타로 떠났습니다
.
떠나기 전 뒷집을 보니 집 창문을 합판으로 덧대어 못을 박고 있더군요.
저희집도 허리케인을 대피한 저 합판이 있는데 저렇게까지는 안 했습니다.
나중에 하고 왔어야 하나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별 일은 없었어요
허리케인을 대비하기 위해 창문에 테이프를 붙여둔 이웃도 보입니다.
원만한 대피를 돕기 위해 국가 경비대 (내셔널 가드)가 도착했습니다.
목요일 아침 애틀란타로 출발하는데 남편과 저의 휴대폰으로 메세지가 왔습니다.
뷰포트 카운티 비상 대피 긴급 전화 번호
돌아오기에 안전한 때가 언제인지 토요일과 일요일에 확인전화를 하라는 내용이였습니다.
주지사의 승인이 있어야 돌아올 수 있고, 다른사람들에게도 이 내용을 공유하라는군요.
대피로를 만들고, 타지역에서 허리케인 위험 지역인 저희 지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도로를 통제합니다.
허리케인은 금요일 저녁에서 토요일 새벽쯤 저희 지역을 강타할 예정이지만 대피는 화요일 오후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대피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교통이 마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며칠에 걸쳐 분산해서 대피하도록 하기 위함이였습니다.
아마 토요일에 오는 허리케인에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대피령을 발표했다면 대피자들로 도로가 막혀서 아예 대피가 안되고 도로에 갇혀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겠죠.
화요일 저녁부터 떠난 사람들이 많지만 목요일 아침에도 여전히 수많은 차들로 속도를 내지 못합니다.
반대 방향의 차선을 폐쇄하고 경찰차들이 배치되어 도로를 통제하고 있는 모습이예요. 허리케인 위험 지역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그건 잠시 후 보여 드릴게요~
원래 애틀란타까지는 70마일(약 120키로)의 속도로 4시간 반 정도면 도착하는데 10마일~40마일 정도로 밖에 속도가 안나니 7시간 안에도 도착 못 할 것 같더군요.
오오~ fox 채널에서 촬영도 왔네요.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던 중에 뻥 뚫린 반대방향 차선을 봅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차 두대가 속도를 내며 저희와 같은 방향으로 슝~ 슝~ 달려 가더니...
갑자기 그 뒤로 수많은 차들이 그 뒤를 따라 슝~슝~ 달려 가더라구요.
폐쇄된 도로를 대피로로 확보해서 교통 마비가 왔을 때 분산 시켜 교통 흐름을 다시 원활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였습니다.
제일 앞에 경찰차가 선두로 달리고, 그 뒤를 차량들이 따라 달리는거죠.
저희도 저쪽 차선으로 갈아탈까? 하며 어쩌지? 니가 결정해 내가 결정해 하며 실랑이 하는 사이에 반대방향 차선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9시간이 걸려 드디어 애틀란타에 도착했습니다.
호텔에 도착하자 마자 뉴스를 틀었더니 허리케인 매튜는 플로리다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며 사망자 289명중 아이티에서 283명이 사망하고, 이미 95000가구가 정전이 되었으며, 놀스 캐롤라이나의 카운티중 100여곳에 비상체제에 돌입했고 제가 사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는 280000명이 대피중이라고 나옵니다.
심지어 허리케인 매튜를 살인마 허리케인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금요일엔 플로리다, 토요일엔 조지아주 사바나와 제가 사는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거쳐 일요일에는 놀스캐롤라이나로 올라간 매튜는 주정부의 빠른 대피령으로 침수가 있었지만 사상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뉴스를 봤을 당시 플로리다에서 5~6명이 사망하고 토탈 9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본 게 마지막이였습니다. (사고 후 미국에서의 희생자수는 43명입니다)
매튜가 지나가고 나자 주정부의 관계자들이 피해 상황에 대해서 브리핑을 해 주더군요.
허리케인 매튜가 토요일 새벽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지나간다고 해서 저희는 토요일 오후에 집에 갈 생각으로 호텔을 2박만 예약 했는데 뉴스를 보니 친절하게도 "아직 돌아오지 마십시오" 라네요 ㅡ.ㅡ;;;
허리케인도 지나갔고, 해도 나오고 날씨가 좋아서 모든게 좋아보이지만 안전하다고 확신이 들때까지 복귀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였습니다.
복귀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은 돌아오는 도로를 폐쇄하겠다는 말...
고로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가는거죠.
그래서 호텔 1박 연장 신청과 함께 휴가도 강제 연장되었습니다.
대피를 했지만 우리 동네 상황은 어떤지, 어느 정도의 피해가 있었던건지 궁금했습니다.
저희 커뮤니티에 대피를 하지 않은 몇몇분들이 커뮤니티 페이스북에 허리케인 상황과 커뮤니티내의 상황을 계속적으로 업데이트 해 주고 있어서 소식을 들을수가 있었어요.
단지내에 호수가 물이 불었지만 다행히 넘치진 않았다는 소식이...
(이곳에 악어가 산다고 했었죠? 다행히 악어도 매튜를 무사히 넘기고 안녕하십니다)
하지만 새벽 4시를 기점으로 정전이 되고 말았다고 하더군요.
저희 동네의 메인 도로 중 하나의 도로 상태가 이 지경이 되었답니다.
마치 깊은 산속의 숲속같지만...
원래는 이런 도로입니다.
그런데 양가쪽의 나무들이 다 쓰러지고 바람에 잎이 날려서 숲속이 되어 버린거죠.
도로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허리케인이 지나가고 난 후 제일 먼저 도로 청소 작업부터 하고, 그게 끝나야 주지사가 돌아와도 좋다고 승인을 해 주는거죠.
주지사의 승인 없이는 돌아올 수 없구요.
한국에서는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거리에 간판들이 떨어져 날아다니는데 여기는 온통 나무들이 쓰러져있습니다.
쓰러진 나무들이 못해도 다 10년이상, 많게는 제 나이보다 많은 나무들도 많을텐데 두동강이 나서 쓰러진건 물론이고, 처참하게 뿌리채로 뽑혀 버린 나무들도 많았어요.
도로 교통 상황과 허리케인 상황을 알 수 있는 웹사이트에 도로가 아직 닫혀 있고, 바리케이드를 넘어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리케이드의 의미는 아직 안전하지 않다는 얘기
그 와중에 단지안에 남아 있는 이웃들이 현지의 소식을 업데이트 하는데 허리케인이 몰아치던 날 밤, 누군가가 벨을 누르고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도망을 갔다는 내용을 올리더군요.
아마도 사람들이 대피한 틈을 타서 좀도둑들이 활동을 개시한 모양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통금령도 내려졌습니다.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는 밖을 돌아다니면 안되는 통금령.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으니 집 걱정도 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지만 다음날인 월요일이 되어도 주지사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돌아갈 수 없게 되어, 애틀란타를 떠나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2시간 반 떨어진 메이컨이라는 지역에 다시 1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지사의 승인이 떨어지면 대피자들이 한꺼번에 몰릴것을 우려해 미리 출발해서 도로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차량들...
일단 밀어붙이면 도로를 열어 줄거라 생각하겠지만 얄짤 없습니다.
그냥 기다려야 합니다.
이렇게 오도가도 못하고 도로에 갇힌 상황이 되는거죠.
그렇다고 굶지는 않습니다.
허리케인이 지나고 난 후, 두군데의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는데 그곳에서 구호 음식들을 가져와서 나눠 주었다네요.
월요일 오후에 도로를 제한적으로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제한적이라는 말은 면허증을 제시하고, 주소가 침수 지역일 경우, 피난처 (근처의 고등학교)로 이동하고, 안전한 지역일 경우에는 집으로 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였죠.
역시나 무엇보다 안전을 우선으로 한 방침이였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블러프턴 지역은 침수가 없었지만 힐튼헤드 아일랜드는 침수 사태가 일어나서 힐튼헤드 아일랜드로 들어가는 도로는 여전히 폐쇄중이였습니다.
월요일 저녁 8시에 블러프턴으로 향하는 도로는 완전 개방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애틀란타 간 김에 한인마트에 들려서 김치를 (부탁받은 김치 포함) 4통이나 사 두었기에 집에 빨리 가야 할 의무와 이유가 있었죠. 김치 뿐이더냐!! 열무김치도 있고, 냉동 순대도 있고, 오징어 초무침도 있고... 이 귀한 양식들을 최대한 신속하게 적재적소에 저장해 두어야 했거든요)
화요일 오전 집으로 향하는 길~
도로가 열렸다는 소식을 들은 피난민들은 다같이 한마음으로 (차가 밀리기 전에 가야 한다라는...) 고속도로로 올랐기에 역시나 정체가 시작되었지만...
그래도 좀 일찍 출발한 탓인지 나중에는 슝~슝~ 속도를 내며 달렸습니다.
동네에 다다르니 정말로 쓰러진 나무들이 곳곳에 ㅠ.ㅠ
허리케인 매튜가 한바탕 휩쓸고 갔음을 실감했습니다.
사진으로 잘 안보이겠지만 저 나무가 쓰러지면서 펜스가 끊어졌더라구요.
펜스가 끊어질 정도로 무거운 나무인데, 허리케인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졌다니...
매튜... 강한놈이 맞았나봅니다.
뿌리채 뽑혀 버린 나무...
인명 피해는 거의 없어서 다행이지만 나무도 살아있는 생명인데 이렇게 많은 나무들이 처참하게 뽑혀 버리거나 부러진걸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나무 뿌리가 뽑히면서 함께 들려진 아스팔트
이 정도면 허리케인 매튜의 위력이 실감나시나요?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지날 때 그 위력이 레벨 3에서 2정도였다는데, 아이티에서 레벨 5였으니 지붕이 날아가고도 남았겠죠. 실제로 지붕이 날아가는 영상도 보았구요 ㅠ.ㅠ
이렇게 키 큰 나무도 견뎌내지 못하고 뿌리가 뽑혀버렸습니다.
허리케인이 지나가고 1주일이 지난 지금 주요 도로는 대부분 정리가 되어서 거의 다 열린 상태이고, 대피한 사람들도 대부분 돌아와서 집정리를 끝낸 상태입니다.
하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제가 사는 카운티에서는 휴교령을 내린 학교들은 다음주 월요일에 다시 오픈한다고 합니다. 대피령 발표를 저번주 수요일에 했으니 약 12일 동안 휴교를 한 셈이죠. 저희 남편도 약 8일간 강제 휴가를 보내게 되었구요.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겪는 허리케인에다가 대피령이 내려져 피난가는 경험도 다 해보네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난리인가 했지만 나중에는 미리미리 대피령을 발령해 준 주정부의 대처로 큰 혼란없이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고, 안전하다고 확신한 후 도로를 열어 주어, 돌아와서도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경험을 통해 느꼈던 것은 주정부가 무엇보다 시민의 안전과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였어요. 대피령이 내려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 수, 목, 금요일에 걸쳐서 대피를 했지만 혹시라도 남아 있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 금요일 오전 주지가사 직접 나와서 위험성을 강조하며
" 이 상황을 심각하게 봐야 합니다. 꼭 대피하십시오" 라며 호소하던 장면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허리케인이 지나간 후 서둘러 돌아올려는 사람들에게도
"안전이 확보 될 때까지는 돌아오지 마십시오" 라며 브리핑도 계속 하구요.
그리고 저희처럼 일찌감치 대피를 한 사람도 있지만 대피를 하고 싶어도 대피를 할 곳도 없고, 대피할 비용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쉘터 (피난처)를 개방하고, 또 인근 학교에 임시 쉘터를 만들어, 학교의 스쿨 버스로 피난을 돕기도 했습니다.
TV나, SNS등 각종 매체에서 워낙 허리케인 매튜의 위험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다루고, 대피령까지 내려지고 하다보니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나중엔 좀 겁이 나기도 했지만 체계적이고 잘 통제 된 대처 덕분에 큰 혼란도 겪지 않았고, 모든게 여유있고, 순조롭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지금 무사히 이 글을 쓰고 있음에 감사하고, 또 자연재해로 큰 피해를 입은 아이티의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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