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족한 엄마의 반성기에 이은 부족한 엄마의 반성기 2
2018/02/05 - [와플이와 제제 이야기] - 부족한 엄마의 반성기
사실 뭐 엄마로서 반성할라 치면 반성기 1, 2로 되겠습니까? 100편은 나왔어야... 아니 100편이 왠말입니까 매일 매일 반성일기를 써야죠. 그치만 그 중에서도 정말 반성 많이 해야 할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게 바로 오늘의 포스팅입니다.
오뎅 국물을 마시며 반성기 1을 쓰면서 속상한 일이 있어서 블로그에 풀고 싶다던 바로 그 일이죠.
아이 둘 키워 보시면 아시겠지만 늘 에너지 넘치고, 지겨운 것 못 참아하고, 늘 밖에 나가고 싶어하잖아요. 그치만 엄마는 좀 쉬고 싶고, 좀 지겨울 정도로 쉬고 싶고, 이불속에서 더 푹 쉬고 싶은 마음. 그렇다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게 문제죠. 애들 챙겨 먹이고, 애들이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잘 놀아주면 그때 후다닥 집안일도 해치워야 하니까요.
그날도 점심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는데 며칠간 추워서 뒷마당에 나가서 놀지 못한 와플이는 자꾸 나가자고 보채길래 5분만 5분만 하면서 시간을 끌며 계속 제 할일 하고 있었죠. 이미 신발까지 다 신고,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 앞에 앉아서 졸라대길래 일단 애들끼리 나가게 해 주고, 뒷마당이 보이도록 블라인드도 걷어서 애들이 미끄럼틀 타면서 노는걸 보면서 집안일을 하고 있던 중이였어요.
둘이서 신나게 잘 놀길래, 이때다 싶어 거실 정리도 좀 후다닥 하고, 청소기도 돌려놓고, 애들 여전히 잘 노는거 보고 마지막으로 쿡탑에 눌러 붙은 기름때만 제거하고 저도 나갈 생각이였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기쿡탑은 열선을 중심으로 기름때가 눌러붙으면 날카로운 전용칼날로 긁어주고, 전용 세제로 닦아줘야 하잖아요? 열심히 긁다보니 너무 집중을 하는 바람에 애들 생각은 잠시 잊어 버렸어요. 그리고 광나도록 전용세제로 쿡탑을 닦아준 후 반짝반짝 빛나는것 까지 본 후 뿌듯한 마음으로 이제 나가서 애들이랑 놀아야겠다 하고 돌아보니....
애들이 사라졌다!!!!
'어? 어디갔지? 사각지대에서 노나?' 하며 밖으로 나가 봤죠.
그런데 정말로 아이들이 뒷마당에 없는거예요.
심장이 덜컹 내려 앉으며 펜스 게이트쪽으로 달려가니 거기서 와플이 혼자만 게이트를 열고 들어오더니 게이트를 닫을려고 하더라구요.
그걸 보는 순간 이미 전 제정신이 아니였던것 같아요. 제제가 펜스 밖으로 나갔다는 말이니까요. 집 앞이니까 안전할텐데 뭐가 그리 놀랄일이냐고 생각하시겠지만 미국에서는 충분히 놀랄 일이거든요.
우선은 제제처럼 어린 아기가 보호자 없이 혼자 집 밖을 나와 있다는 것, 그게 아무리 집 앞이든, 집 옆이든요. 이건 아동학대는 아니지만 아동 방치에 해당하는것이고 이웃이 신고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집앞으로는 바로 도로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 커뮤니티 안의 도로에서는 속도를 25마일 (40키로)로 제한하고 있고, 다들 그 속도를 잘 지키고, 차량 통행도 거주민이 아니면 거의 없기 때문에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제제가 도로위를 걷는다면 너무 위험한 일에는 틀림없습니다.
또 생각도 하고 싶지 않지만 납치를 당할 수도 있고요. 제가 들은 얘기로는 아무리 집 뒷마당이라고 하더라도 꼭 보호자가 보고 있어야 한다고, 집 뒷마당에서 아이들이 납치를 당한 케이스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펜스가 다 쳐져 있더라도 아이들이 제 시야에 들어오는 걸 확인하면서 집안일을 했던거였어요.
그런데 제제가 펜스 밖으로 나가버렸으니 미친듯이 펜스 게이트쪽으로 뛰어가 문을 닫을려는 와플이를 확 뒤로 밀치고 펜스밖으로 뛰어나가니 마침 차 한대가 멈춰져 있고 도로가에 있던 제제를 이웃이 안아서 제가 있는 쪽으로 오시더라구요. 와플이는 저 때문에 뒤로 넘어져서 울고 있었고요.
이웃이 제제를 저에게 안겨주며
"얘가 도로가를 걸어다니고 있었어요 애들이 워낙 빨라서 순식간에 나온거겠지만..."
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전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정말 그 순간에 차가 작은 제제를 못보고 치어버렸다면... 갑자기 제제가 튀어 나와버렸다면... 너무 끔찍하고 왜 애들을 계속 지켜 보지 않았을까, 왜 애들만 내보내 놓고 나는 집안에서 청소를 한다고 난리를 쳤을까, 왜 와플이를 게이트를 열었을까 후회스럽고, 제 자신이 너무 싫고, 이웃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엄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무슨말을 해도 다 변명처럼 들릴거라는거 알면서도 제제를 건네 받으며
"주방에서 애들을 보면서 청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애들이 안보여서 나와보니 이미 애들이 게이트 문을 열고 나갔더라구요. 너무너무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라고 했지만 한편으로 신고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구요.
어쨌든 둘다 무사했지만 게이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후, 혼자 다시 돌아와 게이트를 닫으려 했던 와플이에게 화가나서 심하게 야단을 쳤어요. 제제에게 너무 위험한 상황이였으니까요. 울면서 와플이는 거실로 나갔고, 전 방에서 그 전의 상황을 다시 생각하면서 남편에게 이 상황에 대해서 메세지를 보냈어요.
"그 이웃이 당신을 혼냈어? 나는 당신이 혼났어야 된다고 생각해. 이번 일은 와플이가 잘못한게 아니라 당신이 잘못한거야. 그리고 와플이는 이제 4살이야. 게이트 문을 열고 밖을 나가는 일이 4살에게는 잘못한 일이 아니야, 그걸 지켜보지 못해서 그 일이 일어나게 만든 당신이 잘못이지"
놀란 마음이 진정이 되고, 남편에게 이 메세지를 받고 나니 그때부터 죄책감이 밀려오기 시작하더라구요. 어떤일이 생겼다면 그건 모두 제 탓입니다. 남편 말처럼 4살짜리 아이가 밖으로 나가는 펜스 문을 연 것이 잘못한 행동이 아닙니다. 그런데 전 와플이를 혼낸거죠. 펜스 문을 닫을려고 하던 와플이를 세차게 뒤로 밀어 버렸을 때 뒤로 넘어지면서 저를 보던 와플이의 눈빛, 그래도 안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리내서 울었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제제만 안고 집안으로 들어와 버린 저. 그리고 집으로 따라 들어와서도 혼날까봐 저에게 애교 떨면서 웃었는데 너무너무 미워하는 눈빛으로 혼낸 엄마.
이 모든 상황들이 다 싫고, 우울하고, 속상했습니다. 무엇보다 와플이에게 너무너무 미안했고요. 그런데 당장 와플이한테 사과할 수는 없어서 저 혼자서 앉아 있다가 나갈려는데 와플이가 후다다닥 발가벗고 클라짓으로 뛰어가더라구요.
그래서 봤더니 쇼파에 앉아서 바지를 입은채로 오줌을 싸 버린... ㅠ.ㅠ
아마도 자기도 너무 스트레스 받았나봐요. 그거보니 더더욱 마음아프고 미안해졌어요.
조용히 쇼파 커버 벗기고, 오줌 싼 바지도 세탁기에 넣고 멍하니 앉아 있었더니 해맑게 웃으며 저한테 다가와 제 목을 감으며
"마미, 돈 비 매드, 비 해피"
하는데 또 눈물이 터지고 말았어요.
오래전에 와플이를 혼내는데 짜증스러운 말투와 감정적으로 혼내고 있는 저에게 와플이가 " 마미 돈 비 매드, 비 해피" 하길래 정신이 번쩍 든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와플이에게
"엄마가 큰 소리로 화 낼때는 지금처럼 마미 돈 비 매드 비 해피라고 말해줘. 그러면 엄마가 무섭게 큰 소리로 야단치는 스위치를 끌 수 있으니까"
라고 했는데 와플이에게 지금 엄마는 그 스위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너무 미안하고, 자기가 무엇을 크게 잘 못한건지 알지도 못하고 혼 났음에도 엄마를 안아주는 우리 와플이에게 진심으로 사과 했습니다. 와플이가 이 일을 잊어주기 보다는 이 일로 엄마가 자신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라면서요. 그리고 그 어리고 여린 마음에 응어리가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일로 그 이튿날까지 계속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와플이가 잠들기 전에 엄마를 사랑하고, 용서한다고 했기에 전 더 나은 엄마가 되기로 한번 더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뒷마당 펜스의 문은 자물쇠를 채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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