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알바하기-융통성과 매뉴얼 사이 1

일본에서 오랜 시간 직장 생활 했던 저는 매뉴얼대로 교육 받고, 그대로 일하는것에 익숙합니다.

일본에서 매뉴얼이라는 것은 실제적으로도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일하는 방식이기도 했구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룰, 되는건 누구에게나 되는거고, 안되는건 누구에게도 안되는것!

물론 이 매뉴얼 때문에 일본에서 생활하거나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가끔씩 좀 융통성 없다는 불평이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일하는 입장에서는 회사의 지시이고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니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다는 점에서 저는 이 시스템이 정말 맘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에 익숙한 제가 미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정말 답답해서 제 가슴을 후려칠때가 한두번이 아니예요.

물론 미국의 기업들도 매뉴얼이 당연히 있고, 그 매뉴얼대로 일을 합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곳도 그렇구요.

다만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은 매뉴얼이 왜 존재하는지 잘 모를정도로 매뉴얼이 무시되고 있어서 문제죠. ^^;;;;

 

***오늘은 그동안 제가 품고 있던 불만을 제 블로그에 다 쏟아부을지도 모르니 상쾌한 아침을  저의 부정적 에너지로 시작하고 싶지 않으신 분은 가볍게 이 글을 스킵하거나 저녁에 읽어 주세용~ 저는 미리 경고 했지 말입니다!!!!  ***

 

첫번째 이야기- 트레이닝이란 사전 업무 습득을 위한 것이 아니였던가?

 

일단 저는 트레이닝 부터가 불만이였습니다.

제가 캐쉬어 알바를 한다는것은 다들 아실거예요.

뭐 캐쉬어의 주요 일이 물건의 바코드를 스캔하고, 물건값 받고, 거스름돈 돌려 주는것이지만 그 외에 알아야 할 업무가 더 있거든요.

예를 들면 레인 체크 같은, 고객이 사고자 하는 물건이 없을 때 그보다 더 비싼 물건을 원래 사고자 했던 물건 가격에 판매한다던지, 세일상품이 동났을 때, 다음번에 그 상품이 입고되면 세일 가격으로 판매하겠다고 써 주는 확인증 같은걸 계산 화면에서 어떻게 처리하는지 등등...

 

일본에서였다면 레인 체크가 무엇인가 부터 설명하고,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과정을 세세하게 미리 다 알려 줬을거고, 나중에 제가 그것을 처리할 상황에 처했을 때는 이미 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된 상태였을거예요.

 

그런데 전 트레이닝 과정에서 아무것도 화면의 메뉴에 대해서 배운 것이 없었답니다.

저를 가르쳐 준 사람도 그냥 저를 계산대에 밀어 넣고,

"옆에서 볼테니까 그냥 해봐요"

 

이게 다였어요.

물건 스캔하고 나니 결제 수단을 누르는 화면에 대해서 설명도 없이 그냥 옆에서 꾹 눌러 주길래 제 스스로 아~ 이걸 눌러야 하는구나 하고 눈치로 배워야 했죠.

레인체크 따위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아서 일한지 일주일이 되서야 고객이 레인체크를 들고 제 앞에 섰을 때 그때 처음으로 슈퍼 바이저를 불러 레인체크 교육을 받았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일한지 일주일이면 대부분 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은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여긴

"언젠가는 닥칠것이다, 그때 배워라" 가 트레이닝 매뉴얼인듯 했습니다.

 

기프트 쿠폰으로 결제하는 방법도 일한지 몇주가 지나서 그 쿠폰을 사용하는 고객이 나타났을 때, 또 부랴부랴 슈퍼 바이저를 불러 처리하는 방법을 배웠구요. 물건 스캔을 끝낸 후, 결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것을 보류 시키고 다음 손님의 계산을 돕는 것 등등 기본적으로 캐쉬어 화면에 있는 기능들을 모두 막상 그 상황이 닥치고 나서야 하나씩 배우게 되었답니다.

 

그때그때 배우는게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나쁠게 뭐가 있겠어요?

하지만 캐쉬어라는 일 자체가 고객을 상대하는것이고, 고객이 눈 앞에 기다리고 있고, 또 그 고객뒤로 기다리는 고객이 있다는게 문제죠.

미리 배워 두었다면 조금 느리더라도 제 스스로 해결할 수 있지만 그때 그때 배워야 한다면 슈퍼 바이저를 불러야 하고, 그렇다고 슈퍼 바이저가 제 맘처럼 서둘러서 오느냐, 그것도 아니예요,

부르면 느릿 느릿 걸어서 오고 오다가 아는 손님이라도 만나면 또 서서 수다도 떨어요, 기다리는 제 입장에선 속터지고, 조급해 죽습니다.

암튼 이런식의 준비되지 않은 트레이닝이라 할 수도 없는 트레이닝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 회사는 손실을 막자고 하고, 현장에서는 손실이 일상

 

저희 마트 캐쉬어 스크린 화면에는 "프론트엔드 (계산대)에서의 손실을 막자" 라는 문구가 씌여져 있답니다.

보통 계산대에서 일어나는 손실은 카트의 실려 있던 제품을 보지 못하거나 손님이 계산대 벨트에 올리지 않아 캐쉬어가 실수로 계산을 하지 못하는게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항상 카트의 아랫 부분에 실려 있는 제품은 없는지, 이미 개봉해서 다 먹고 난 제품은 없는지 등등을 주의깊게 살펴 봐야 합니다. (카트 아래에 실려 있는 제품도 체크하는 기계가 계산대 아래에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요)

아무튼 교육 받을 때에도 프론트엔드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상당하다며 그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매뉴얼에는 없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꽤 있답니다.

 

예를 들면 손님이 스캐너가 바코드를 인식하지 못해서 그 제품의 가격이 얼마인지 알 수 없을 때, 그 제품을 담당하는 부서에 연락해서 얼마인지 물어보면 되겠지만

 

" 바코드가 인식이 안되네요, 오늘 이 제품은 공짜예요 YAY (예이~)"--> 예이, 이거 중요합니다. 캐쉬어가 공짜라고 말하면서 "예이"리고 추임새 한번 넣어주면 손님이 더 업되서 좋아하거든요. ㅋㅋㅋ

 

평상시엔 손님 잘도 기다리게 하면서 이런땐 손님을 기다리게 하면 안된다며 그냥 공짜랍니다.

그런데 이게 매뉴얼이냐?!?!?

아니요~ 그때 그때 다르고, 사람마다 달라요.

 

또 다른 예로는

세일중인 상품이 막상 스캔 했을 때 세일전의 가격으로 뜨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경우, 캐쉬어 화면에서 세일 가격으로 입력 하는 Mark down이라는 기능이 있는데요, 저를 트레이닝 해 줬던 소년?이 저에게 이 mark down기능을 알려 주면서

 

"만약 손님이 이거 지금 세일 중이라고 하면 그냥 세일 가격으로 주세요, 설사 세일 안 하고 있더라도 그냥 해 주세요, 확인 할 필요 없어요. "

 

'넌 누구에게 트레이닝을 받은거니? 정말 그래도 되는거니?'

 

손님 입장에서 보면 기분 좋은 서비스이고, 융통성을 발휘하는 캐쉬어가 고맙겠지만  캐쉬어로 인한 손실을 막기위해 스크린 화면에 문구까지 써놓은 회사 입장에서는 이것이 허용되는 일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죠.

 

당연히 매뉴얼에도 없는 내용이였구요, 이것 역시 캐쉬어 마다 달라요.

어떤 캐쉬어는 그냥 손님이 말하는 가격으로 주기도 하고, 어떤 캐쉬어는 끝까지 가격을 확인해서 세일인지 아닌지 확인 후에 제대로 된 가격으로 계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캐쉬어가 거의 없다는거죠.

그냥 물건이 진열된 곳 까지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손님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손님에게 맞서지 않고, 손님이 이 가격이더라~ 하면 그냥 그 가격에 계산합니다.

 

그리고 잘 모르는 상품, 특히 야채 코너의 상품들은 캐쉬어들도 잘 모르는 상품들이 있습니다. 흔히 먹는 채소가 아닌, 특정 지역에서만 먹는 야채들은 이름을 모르면 스캔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보통은 야채에 번호가 씌여진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그 번호를 입력하는데 간혹 스티커가 떨어져 있을때가 있어서 그럴 경우는 직접 그 번호를 입력해야 하고, 그 번호를 찾기 위해서는 이름을 반드시 알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야채들을 입력할 수 없는 번호도 없이 가져 올 경우, 저도 이것들의 이름을 모르고, 손님도 모를 경우, 스캔을 할 수도 없고, 번호를 입력할 수도 없어서 난감한 경우가 생깁니다.  

 

chayote라는 야채가 있는데 전 이걸 처음보고 과일인지, 야채인지 조차도 모르고 손님에게 이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는데 자기도 모른다며... 옆의 다른 동료들에게도 물었지만 모른다는겁니다.

 

 

얘가 바로 chayote라는 squash과의 야채인데요, 이걸 저도 몰랐고, 구입하는 손님도 이름이 뭔지 모르고, 다른 동료들도 모르겠다던 그 문제의 녀석입니다.

 

이거 팔긴 팔아야 하는데 이름을 모르니 스캔을 할 수도 없고 난감해 하고 있던 그때

 

엘리, 그냥 줘 버리세요~

 

그렇습니다.

캐쉬어가 모르면 그냥 공짜입니다. ㅎㅎㅎ

 

사실 저에게도 그런 혜택의 기회가 한번 있었더랬죠.

제가 일하는 마트에서 무를 구입했는데, 무에 붙어져 있던 스티커가 떨어졌던거죠.

캐쉬어가 무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이게 뭐예요?"

라고 묻더군요.

'너는 무도 모르느냐?' 라고 묻기에는....

제가 사는 이곳에서는 무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랑 맞먹습니다.

수많은 체인 마트가 있지만 유일하게 제가 일하는 마트에서만 무를 팔고 있고, 안 파는 날도 있고, 팔더라도 무가 이미 바람이 뺘져 말랑말랑하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사정이 그러하니 무를 모를 수 밖에요.

그 상황에서 제가 만약 모른다고 하면 그 캐쉬어는 저에게 무를 공짜로 줄 수 밖에 없겠지만 직업병인지 daikon (한국에서 먹는 무가 저희 마트에서는 일본어인 daikon으로 판매되고 있더라구요)  이라고 말하기 전에 친절하게도 이미 무의 입력 번호인 ****를 캐쉬어에게 불러주었다죠. ㅋㅋㅋㅋㅋ

 

 

이렇게 현장에서 일어나는 손실이 과연 손님을 위한 융통성인지, 회사의 매뉴얼에 반하는 손실인지 이 초보 캐쉬어는 그 사이에서 여전히 헷갈리고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세번째 이야기까지 오늘 끝내고 싶지만 여러분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세번째 이야기는 융통성과 매뉴얼 사이 2에서 마저 해 드리도록 할게요~

 

빠빠이~ (왠 귀여운 척???? )

 

***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글입니다. 이 글이 모든 미국인과 미국 사회를 일반화 하지는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