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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기

미국인 남편이 만드는 수제 초콜렛

by 스마일 엘리 201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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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와플이가 그야말로 콩만한 시절, 그러니까 입속으로 들어간 모든 것은 제 몸속의 소화기간을 거치지 못하고, 분노의 역류를 하던 시절이였습니다. (아주 머나먼 오래된 옛날 이야기 같죠? ㅋㅋㅋ 저도 입덧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글을 쓰는 날이 오다니 감개무량 ㅠ.ㅠ 합니다. )  입덧이 정말 한창일 때 였을거예요.

남들처럼 밥 냄새도 못 맡아서 밥도 못한다 뭐 그 정도는 아니였고, 먹지를 못하니 의욕이 없고, 힘이 없고, 또 속이 울렁거리다 보니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아서 거의 음식 만드는 일에 손을 놓았을 때 였죠.

그때 남편은 고맙게도 저녁식사를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곤 했는데 주로 먹었던 것이 편의점에서 파는 계란 샌드위치와 아몬드가 들어간 아몬드 초콜렛이였답니다.

그런데 얄궂게도 제 후각은 다른 냄새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으면서 남편이 유일하게 저녁식사로 먹는 그 계란 샌드위치의 삶은 계란 냄새와 아몬드 초콜렛의 아몬드 냄새만 유독 맡기가 싫은겁니다.
왠지 모르게 삶은 계란의 노른자 냄새가 막 닭의 겨털냄새인것 같고( 뭐 맡아본 적은 없지만 ㅡ.ㅡ;;;;) , 아몬드 냄새는 막.. .뭐랄까.. 막 아몬드 썩은 냄새 (역시나 맡아 본 적 없는)!!!!!!! 
정말 이상한 일이였죠.

하루종일 일하고 와서 마누라한테 밥도 못 얻어 먹는 불쌍한 남편은 유독 자신의 유일한 식량의 냄새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저 때문에 제가 있는 공간을 피해서 먹느라 고생을 좀 했답니다.
제가 거실에서 TV보고 있으면 주로 주방 구석에 서서, 막 서성거리며 먹고는 쓰레기까지 완벽하게 처리하고, 양치하고 나서야 저한테 올 수 있었죠.

그런 생활이 계속되던 3월의 어느날...
아시다시피 3월에는 커플에게 아주 중요하고도 의미 깊은 날이 있지 않습니까?
그 뭐시냐!!! 일명 '하얀 날'이라고나 할까?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도 주고, 초콜렛도 주고, 선물도 주는 그런 가슴 따뜻해지는 훈훈한 날 말이죠.
그날을 며칠 앞 둔 주말에 남편과 장을 보러 갔는데 갑자기 초콜렛 재료들을 막 카트에 담지 않겠습니까?

'아!!!! 이 남자가 화이트 데이를 앞두고 임신한 마누라에게 수제 초콜렛을 만들어 줄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역시, 임신을 하니 대우가 다르긴 다르구나!!!! 이럴 땐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척을 하는게 예의지~ 암!!! '

그렇게 전 남편의 쇼핑 목록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그때부터 주방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초콜렛을 만들기 시작하더군요.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초콜렛을 녹일 때 중탕하는 것도 알고, 고녀석.. 아니 고남편 참... 기특하구만!!!
열심히 중탕한 초콜렛을 베이스로 깔더니만 뭔 정체불명의 사탕 같은 것을 녹이더니 그 초콜렛 위에 바르기 시작합디다?
 
그러더니 그 위에 아몬드를 정성스레 하나씩 하나씩 올리더군요.

                                  사진 출처: 엘리 남편의 아이폰

오오~ 그냥 초콜렛 중탕해서 틀에 부어서 식히기만 하면 되는 그런 식상한 초콜렛 따위는 만들지 않겠다는 남편의 의지가 엿보입니다.
'무슨 3단 초콜렛이라도 만들려는건가?!!!!'

물론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척 하면서 괜히 주방을 왔다갔다 쓸데없이 물도 좀 마셔보고, 냉장고도 열어보고 하면서 남편이 잘하고 있나 살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볼, 남편의 정성이 드음뿍~ 들어가 있을??? 수제 초콜렛인데 망치지 않도록 잘 감시해야 하니까요.

                             사진 출처: 엘리 남편의 아이폰

아몬드 냄새에 민감한 임신한 아내를 위해 초콜렛 토핑으로 아몬드 냄새를 가려주는 남편의 세심한 배려~
비록 만드는 과정은 허접해보이지만 분명 그 끝은 창대하리라!!!!! 

열심히 주방에서 장인 정신으로 한알 한알 직접 올린 3단아몬드 초콜렛을 살포시 냉장고에 넣어 놓더니 기력이 쇠진한듯, 쇼파가 꺼져라, 풀석 주저 앉더군요.

'그래, 고생한 당신!! 좀 쉬어라!!! 남편에게 이런 수제 초콜렛 받아보는 여자 드물거야!!! '

아몬드 냄새가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남편이 이렇게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토하는 한이 있더라도 맛있게 먹어줘야 겠다고 다짐하며, 저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초콜렛이 빨리 굳기를 기다렸습니다.

함께 영화 한편 땡기고 난 남편이 초콜렛이 문득 생각이 난 듯, 급히 냉장고로 가더니 주방에서는 '탁! 탁! 소리가 나더군요.
아마도 완성된 초콜렛의 컷팅 작업중인것 같았습니다.
 
두근 두근~ 기대~ 기대~

그리고는 드디어!!!! 남편의 수제 초콜렛이 남편과 함께 제 눈 앞에 짜잔~ 하고 등장 했습니다!!!!!!!!
이....... 이.........거..............





                               사진 출처: 엘리 남편의 아이폰 


이것은.........
중학교 시절 역사책에서 보던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 가 아니던가?!?!?!?!?!?!?!?!


수제 초콜렛인것도 맞고, 나름 장인정신으로 만든것도 맞는데, 초콜렛이 왜 이모양 ㅠ.ㅠ
컷팅의 실패였나, 레시피의 실패였나, 그도 아니면 애초부터 뗀석기였나!!!! ㅠ.ㅠ

참.... 유구무언은 이때 쓰는 말이였습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더군요.
남편의 정성을 생각하면 우와~ 하며 감탄 좀 해 주고, 칭찬도 해 주고, 맛있게 먹어줘야 하는데 이건 뭐 입에 들어가면 큰 사단이 날 것 처럼 생긴 초콜렛이라.... ㅠ.ㅠ

그래서 전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솔직해 지기로 했어요.

자기야, 너무너무 미안한데, 나 이거 아몬드가 들어 있어서 못 먹겠어, 알잖아, 나 임신하고 아몬드 냄새에 민감한거...미안

(그래도 100% 솔직해 지긴 미안해서 입덧 핑계를;;;; )

그러자 남편이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무심하게

알아, 자기 아몬드 못 먹는거!! 이거 내가 먹을려고 만든거야!!!

뭣이라고라고라고라~?????????
귓가에 메아리치는 마지막 말!!!

내가 먹을려고 만든거!!!
내가 먹을려고 만든거!!!

뭐? 이거 자기가 먹을려고 만든거야? 나 줄려고 만든게 아니라?!?!?!?!?!?!?!?

자기 아몬드 못 먹는데 왜 자기 줄려고 이걸 만들어? 일본 편의점에 파는 아몬드 초콜렛 너무 비싸! 매일 사먹는 것보다 내가 이렇게 한꺼번에 만들어 놓고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만들었어!

그런것이였어?? ㅠ.ㅠ 가슴 훈훈해 지는 화이트데이를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니라?????? ㅠ.ㅠ
지가 먹을려고 만든거였어??? 어쩐지!!! 아몬드를 정성스레 한알 한알 빽빽히도 넣는다 했더니!!!!!!
그렇게 저는 일찍 마신 김치국물에 사레들린 꼴이 되어버렸죠. ㅠ.ㅠ
그리고 남편 머릿속 달력에는 화이트데이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재확인 했습니다.
(뭐 원래 미국에는 화이트데이가 없긴 하지만요, 발렌타인데이때 남녀 서로서로 선물 교환을 하거든요)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도구로 사용하고 싶어지는 저 뗀석기 초콜렛을 먹는것보다야 낫다며 저를 위로하니 뭐 즉시 힐링이 되더라는.... ㅋㅋㅋㅋ
그리고 뗀석기가 간석기로 진화해 가듯, 남편의 뗀석기 초콜렛도 점점 진화하기 시작합니다.
경고: 남녀 불문 입덧을 유발하는 사진이 있음.






애초부터 3단 초콜렛의 꿈이 무리 였음을 깨닫고는 단순한 아몬드 초콜렛부터 다시 도전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나 점점 발전해 가는 컷팅 기술과 레시피 단순화 작업으로 남편은 이런 쾌거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 이후로도 '자신'을 위한 초콜렛 만들기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남편은  



마침내 인간승리를 이루어 내고 말았으니!!!!

그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3단, 게다가 3색 아몬드 수제 초콜렛 만들기에 드디어 성공한것입니다!!!!
(이쯤에서 여러분은 정말 박수를 좀 치셔야 합니다 ㅋㅋㅋㅋ )

최초의 실패를 발판삼아 초콜렛을 초콜렛이라 부르지 못하던 시절의 아픔을 극복하고 마침내 진정한 초콜렛을 만들어 냈으니 말입니다.

다만 이 모든 노력이 임신한 아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본인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여러분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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