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아이들이 낮에 놀고 밤에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밤 낮 구분 없이 깨서 놀고 먹고 하는 아이들 때문에 만성 피로에 시달렸는데 이제 저도 좀 살만하네요.
그래서 풀어보는 한국행 이야기 그 첫번째!
일단 애 둘 데리고 혼자서 비행한 이야기...
하아~ 시작도 전에 그때 생각을 하니 숨이 턱~ 하고 막혀옵니다.
먼저 저희의 비행은 조지아주 사바나 공항을 출발하여, 애틀란타에서 첫번째 경유, 인천에서 두번째 경유를 해서 부산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집에서 새벽 5시반에 출발하여 김해 공항 도착이 저녁 6시였기에 꼬박 24시간의 여정이였습니다. 사바나에서 애틀란타까지의 비행시간은 1시간이였지만 애틀란타에서 인천 공항까지는 실제 비행시간이 무려 14시간 이였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에너지 폭발하는 남자 아이 둘과의 견뎌 내기에는 너어~무 긴 시간이였죠.
그래도 3년만의 한국행이라는 설레임이 있었기에 마음 단단히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출발일은 남편의 출장일과 날짜를 맞춰서 함께 사바나 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도 함께하고, 남편이 먼저 떠날 때까지 함께 할 수 있어서 순조로웠기는 개뿔!
남편의 출발 시간이 일러서 쓸데없이 4시간이나 공항에 일찍 와야 했고, 남편을 보내고 나서 약 두시간 반을 비행 시작도 전에 진을 빼야 했습니다.
2개월 일정에,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옷도 봄옷, 여름옷 함께 챙기고 중간에 괌으로의 여행도 있어서 물놀이 도구, 구명조끼등등 다 챙겨가다 보니 여행가방 2개와 이민가방까지 동원했습니다.
아빠가 탄 비행기가 출발하는 것을 아쉬운 듯 바라보는 아이들~
두달 일정의 한국행이지만 한달 뒤에 괌에서 만나기로 하고 빠빠이~ 했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전 아이들 진 빼기 작전을 시작했죠.
새벽부터 일어나 공항 오느라 아침도 못 먹은 아이들, 일단 뭣 좀 먹이면서 30분 버티기
30분 버티기가 목표였는데 10분만에 앉은 자리에서 먹기는 끝나고 주변을 배회 할 낌새가 보여 얼른 자리 정리하고 일찌감치 아무도 없는 게이트로 데리고 와서 지들끼리 잡고 놀며 힘 좀 뺄 시간을 주었습니다.
드디어 사바나에서 애틀란타로 가는 비행기 탑승~
와플이는 일본에 있을 때 거의 3개월마다 한번씩 한국행 비행기를 탔었는데 기억도 못하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것 마냥 설레어하며 창 밖 풍경을 내다보다 보니 벌써 애틀란타 도착! 1시간짜리 비행은 가뿐 했어요. 그리고 헬 게이트는 비행기에서 내린 순간 시작되었습니다.
기내용 캐리어 1개와 잡동사니, 기저귀 잔뜩 들은 무거운 손가방 1개, 천지도 모르고 사방 팔방 직진 본능으로 뛰어다니는 21개월 아들, 그리고 좀 더 큰 아들을 데리고 주어진 1시간 안에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습니다. 문제는 초행길이라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데다 한손에는 캐리어를 끌고, 어깨에는 가방을 메고, 21개월짜리 아들을 안고, 이리저리 정신이 팔린 만 4살 아들 이름을 불러가며 끝이 안 보이는 공항을 걸어가는데 아후~ 진짜 죽겠더라구요. 가방 때문에 어깨는 빠질거 같고, 한손으로 10키로 짜리 아이를 안고 가니 허리도 부서질 것 같고, 팔은 아파오고, 그 와중에 와플이는 자꾸 엉뚱한 곳에 시선 강탈 당해서 가다가 뒤쳐지거나 멈추거나 하니, 맘은 급하고 육체적 고통은 한계에 다다르고 그때부터 후회가 물 밀듯 밀려 오기 시작하더군요.
'하아~ 내가 미쳤지' '앞으로 제제가 5살이 될 때까지 3년간은 한국 안 가야지'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게이트까지 가는 것으로 이미 극기 훈련이였기에 얼른 비행기에 타서 안전벨트로 애들 묶어 놓고 좀 쉬고 싶었습니다. 다행이였던 것은 경유 시간이 1시간이라 게이트 도착하자 마자 바로 비행기에 타야 해서 기다리면서 또 진을 빼지 않아도 되었죠.
새벽부터 일어나 공항에서 뛰어 놀며 에너지를 방출한 결과 비행기 탄 지 얼마 안되어 떡실신 해 준 고마운 제제
21개월임에도 불구하고 몸무게가 적게 나가서 다행히 배시넷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시넷 좌석의 치명적 단점은 손잡이를 올릴 수가 없어서 의자에 눕혀서 재울 수가 없다는 것! 오히려 배시넷보다 손잡이를 올리고 좌석에 눕히는게 훨씬 편하게 재울 수 있었는데 그럴 수 없었기에 와플이도 불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자야했고, 제제도 안전벨트 사인에 불이 켜질 때 마다 자고 있는데 안아야 해서 도중에 깨고 그러다 보니 길게 자질 못했어요. 그 말은 곧 엄마의 '고난 비행'이 길어진다는 것이였죠.
그래도 와플이 제제 둘 다 식사 시간에 맞춰서 잠을 자 주었기에 이 엄마는 편안히 비빔밥 기내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고, 그 덕에 밥심으로 나머지 시간을 이겨 낼 체력과 기력을 보충했다는 것입니다.
그릇 벽에 달라 붙은 미역 한 조각까지 싹싹 다 긁어 먹었지요~ ㅎㅎ
아이들이 깨어 났으니 이제 비장의 무기 일명 "유희 bag"을 열어야 할 시간~
기나긴 비행을 위해서 아이들 입을 즐겁게 해 줄 간식과, 손을 즐겁게 해 줄 장난감이 들어 있는, 저의 고난 비행의 필수품, 생명수와도 같은 가방입니다.
태블릿에 뽀로로와 코코몽, 겨울왕국 잔뜩 넣고, 게임도 다운 받고, 실컷 볼 수 있을 만큼 보게 하고, 플레이도우로 만들기 하며 한시간 정도 보내고, 간식 먹이고, 화장실 데려 가고 했더니...
또 다시 찾아온 엄마의 휴식 시간...
14시간 비행 중 아이들은 두시간씩 두번을 자 주었습니다. 꿀 같은 휴식 시간 이 애미는 너무너무 심신이 지친 나머지 잠을 잘 기운도 없고 영화를 볼 기운도 없더라구요. 이런 느낌 처음이였어요. 정말 피곤해서 자고 싶은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머리가 아파서 잠들 수도 없고, 영화를 보는 것 마저도 뇌를 피곤하게 하는 느낌이라 그냥 멍하니 멘탈 털린 표정으로 가만히 두시간을 그렇게 있었어요.
기나긴 14시간 30분의 비행을 끝내고 드디어 인천 공항에 도착!!!
아직 한번 더 비행기를 타야 하지만 '이제 고지가 보인다' 는 희망적인 기대감으로 방전 되었던 기운이 10프로 채워졌습니다.
제제가 환장하는 뽀로로 시설물들 덕에 1시간 대기 시간도 잘 보냈어요.
그리고 마지막 인천발 부산행 비행기를 타고 고향인 부산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긴 비행의 후유증으로 전 그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심하게 몸살을 해서 목소리가 안 나와 대화가 불가능 할 정도였어요. 게다가 계속 비행기를 타고 둥 둥 떠 다니는 느낌이 일주일간 계속 되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땅이 울렁거려 너무 힘들었어요. 아이들은 비행 후유증 플러스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오자마자 저희 가족은 병원행이였습니다.
그렇게 또 두달을 잘 보냈으나, 돌아올 때 이 짓을 한번 더 반복해야 한다는 것!
갈 때는 뭣 모르고 했다지만 올 때는 어떨지 이미 알고 있으니 더더욱 두려웠습니다. 게다가 갈 때 가방 세개였던 것이 올때는 수하물이 5개로 늘었다는 것!
늘어난 짐 두개가 바로 저것들이죠. 가지고 오기 전에는 애물 단지 같았던 짐들이였으나 집에 와서 놓고 보니 뿌듯하기 그지 없는 박스!! 왜냐면 저 안에 한국 식재료들이 가득 가득 들었거든요. ㅎㅎㅎ
부산발 인천행 비행기
초장부터 뽀로로 카드를 쓰면 긴 비행에 쓸 카드가 없어지지만 이미 이 엄마는 출국장에 들어 선 순간부터 기가 다 빨린 탓에 어쩔 수 없이 꺼내 놓아야 했죠.
그래도 우리 와플이가 컸다고 엄마 손 갈 일 없도록 알아서 놀고, 알아서 자고 알아서 먹고 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답니다. 진짜 장거리 여행은 만 4살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뼈 저리게 깨달았어요.
인천공항 도착, 뽀로로 친구 통통이 만나서 신난 와플이~
애 엄마가 되고 보니 진짜 이런 시설물들이 얼마나 단비같은지...
뽀로로와 친구들을 만나서 신난것도 있지만 사실 와플이는 아빠를 만난다는 사실에 더 신나 있었어요.
우리 와플이 아빠 때문에 상사병도 걸렸다는... 밥도 물도 못 먹고 토하며 기운없이 누워서 늘어져 있던 애가 괌에서 한달만에 아빠를 만나자마자 기력을 회복하고 갑자기 잘 먹기 시작한 일이 있었거든요.
두달 새 한국에서 부쩍 큰 우리 제제~
대기 시간을 잘 버텨내고 애틀란타행 비행기에 탔습니다.
오자마자 승무원 언니가 주신 뽀로로 색칠놀이 장난감
비행기 출발 하고 좀 버티다가 내 주어야 하는데 출발 전부터 주셔서 이 카드는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비행기 뜨기도 전에 버려진 카드가 되어 버린 엄마에겐 슬프고도 원통한 이야기.
뽀로로 카드도 쓰고 밥도 먹고 간식도 먹고 두시간 자고 일어나서 꺼내 든 비장의 무기
한국에서 새로 구입한 플레이 도우 아이스크림 만들기 셋트
미국에서 한국 올 때는 찍기 놀이를 했으니 한국에서 미국 갈 때는 새로운 셋트를 내어 놓아야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더 오래 놀아 준다는 사실! ( 긴 비행을 하실 때는 새 장난감을 준비하시고 꼭 꼭 숨겨 뒀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꺼내 주어야 빛을 발합니다)
예상대로 새 장난감은 제 몫을 잘 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두시간 가까이 가지고 놀아 주었거든요.
그리고 넣어 놓았다가 잊을 만 할 때쯤 다시 꺼내 주었더니 또 다시 한시간 넘게 가지고 놀아 주었기에 고난 비행의 효자템으로 등극했습니다.
와플이는 떡실신한 와중에 제제는 배고프다며 '맘마'를 찾기에 기내 간식으로 제공되는 삼각 김밥을 줬는데 야무지게 잘 잡고 잘 먹더라구요. 이 엄마는 기내식 먹을려고 상 다 차리고 음식 뚜껑 다 열었는데 큰 아들녀석이 갑자기 "엄마, 똥~" 하는 바람에 숟가락 들다 말고 기내식 다 펼쳐 둔 채로 화장실 다녀 오니 저 앞에서 부터 승무원들이 상 치우러 오고 있어 먹는 둥 마는 둥 했구마는.... ㅠ.ㅠ
아,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는 배시넷이 있는 제일 앞좌석 대신에 갤리 근처의 좌석으로 바꿨습니다. 손잡이를 올릴 수 있어서 아이 둘 다 편하게 잘 수 있어서 탁월한 선택이였어요.
아침에 출발 했는데 어디쯤 온 것인지 또 아침해가 뜨고 있습니다.
고난 비행의 끝이 보인다...
애틀란타에 도착했습니다.
돌아올 때는 인천, 애틀란타구간이 12시간 30분 비행이였는데 마지막 4시간은 지겨워질대로 지겨워진 제제가 가만히 못 앉아 있고 돌아다닐려고 발버둥 치는 바람에 정말 애 먹었어요. 거기다가 애틀란타에서 사바나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3시간 대기 시간이 있었는데 마지막 비행 4시간 대기 3시간, 이 7시간 동안 저 완전 기 탈탈 털려서 끝끝내 사바나행 비행기 안에서 울고 말았습니다.
대기 3시간 중, 제제를 재울려고 한시간 넘게 유모차를 밀며 빙글빙글 돌면서 돌아다닌 끝에 겨우 잠들려는 찰나 와플이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해서 화장실 데려 갔다가 물 내리는 소리에 깨어 버려서 1시간 다리 아프게 돌아다닌 보람도 없이 제제는 천방지축 모드에 불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때부터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하는데 저는 이미 비행기에서 기력 방전 된 상태라 쫓아 다니려니 죽겠는거죠. 겨우 잡아서 앉혀 놨더니 가방을 뒤집어서 다 쏟아 놓질 않나, 하나 하나 다 주워 놓고 보니 이번엔 좀 가만히 앉아서 먹으라고 준 팝콘을 쏟아 놓은게 아닌 뿌려 놓았더라구요. ㅠ.ㅠ 정말 참을 인을 새기는게 아닌 꾸역 꾸역 눌러 담으며 땅에 떨어진 팝콘을 한알 한알 다 주웠습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대기 승객들의 짠한 눈빛이 느껴지는데.... 아니나 다를까 탑승할려고 줄 서 있으니 뒤에 서 계시던 분이 "아이들과 비행하는게 쉽지 않죠?" 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더라구요.
"저 방금 전까지 13시간 동안 비행하고 이게 세번째이자 마지막 비행이예요" 라고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시며 깜짝 놀란 얼굴로 "오 마이 갓" 하시더니 얼마나 지쳤을지 완전 이해한다고 하셨을 때 이미 울컥 했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애들 안전 벨트 채워주고 이제 거의 다~ 끝나가는구나 하며 긴 한숨을 내어 쉬었을 때 옆에 앉아 계시던 중년의 아주머니께서
"너무 힘들었겠어요, 13시간 비행했다고 아까 기다릴 때 들었거든요" 하시는데 제제를 쫓아다니며 꾹 꾹 눌러담았던 '화' 와 정신적 체력적으로 몰려드는 피곤함, 그리고 위로의 말이 한꺼번에 가슴속에서 요동을 치면서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구요. 한번 터지니 주체할 수 없이 줄줄줄 흘러 내리는 눈물, 그렇게 절 힘들게 하던 제제는 사바나 도착 15분 전에야 겨우 잠들었습니다.
사바나 공항에 도착해서 남편을 보니
" 나를 구해 줄 전우가 저기 왔구나!" 딱! 이 느낌이였어요.
그 이후로 전 그냥 애들은 남편에게 맡기고 집에 도착해서 이불 뒤집어 쓰고 잤습니다. 잠이 보약이라고 누가 그랬던가요?
그 고생을 하고 몇 시간 잔 것으로 지친 심신이 달래지다니!!!!
그래서 힘들게 들고 온 한국 식재료 박스를 열어서 펼쳐 보았습죠.
정리해서 넣기 전에 기념으로 떼샷도 찍고...
사실 떼샷 찍을려고 일부러 펼친 건 아니고, 가방을 열어보니 제 가방을 검사했다는 내용의 종이가 들어 있길래 혹시 검역에 걸려서 가지고 온 것 중 압수 당한 물품은 없나 싶어서 펼쳐서 정리를 했어요.
다행히 압수 당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 온 후 시차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잠드는 아이들...
낮에 놀다가 갑자기 쇼파로 올라가 앉아서 저렇게 잠들기도 하고요.
친구집에 놀러가서 잘 놀다가 저렇게 쇼파 등받이 위에 올라가서 갑자기 실신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일부러 빨리 시차 적응 시킬려고 미국 도착한지 3일부터 낮에는 매일 매일 밖에 데리고 나가서 놀았어요. 그래도 완전히 돌아오기 까지는 일주일은 걸리더라구요.
한국 다녀와서 너무 좋았지만 비행이 너무 고생스러워서 향후 3년간은 한국 가고 싶어도 참아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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