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그리 오래 비워둔 것 같지 않은데 벌써 한달이 지났네요...
그동안 블로그에 올릴 글들을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컴퓨터 앞에 앉기가 힘들었어요.
아시다시피 일도 시작한데다, 뭔가 일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면서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나가다 보니 시간이 걸렸네요.
그간의 얘기는 천천히~ 나중에 하나씩 풀어 드리도록 할게요 ^^ --> 늘 당시에는 말 안 하고, 나중에 터뜨리는 저, 그게 제 캐릭터라는거 아시죵? ㅋㅋㅋ
제가 알바를 시작하게 되면서 알바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도 들려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오늘 그 중에 하나를 들려 드릴게요.
정확하게 제가 하는 알바는 마트의 캐쉬어 (계산원?)인데요, 단순한 노동이지만 매일 매일 상대하는 사람은 아주 다양한 인종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있어요.
그냥 그런 하루였는데, 한 손님의 한마디로 그 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한 손님의 태도에 더더욱 다운되는 날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손님들 사이의 작은 선행에 제가 오히려 더 흐뭇하고, 뿌듯한 그런 날들이 있어요.
저는 한국에서 30여년 가까이 살았고, 일본에서 7년 살았고... (앗!! 이러면 강제 나이 노출 되는거임?)
아무튼, 나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국과 일본에 살았음에도 그동안 한국에서나 일본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인데, 이곳에서는 일주일에 두 세번 정도로 자주 있는 일이 있어요.
그런 바로 "뒷 사람이 앞 사람의 모자란 동전을 내어 주는 일" 이랍니다.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 있다 보면 앞 사람의 상황을 지켜 보게 되잖아요.
그럴 때 자주 일어나는 일인데요,
앞 사람이 계산을 하면서 앞 사람이 돈이 부족하면 뒷 사람이 아주 흔쾌히 앞 사람의 모자란 돈을 내어 준답니다.
에피소드 1
한 여자분이 물건값을 현금으로 계산하면서 딱 24센트가 모자랐어요.
1센트, 2 센트 정도면 제 선에서 그냥 해결하고 보내 드릴 수 있는데 24센트는 어중간한 금액이라 저 역시 난처한 표정으로 지갑을 뒤지는 손님을 보고 있는데 뒤에 계시던 남자분께서 너무 당연하게 25센트 동전을 주시며
"나한테 쿼터 (25센트)가 있어요, 걱정 말아요"
이런 상황을 저는 그 당시 처음 경험했는데, 그때 제가 느꼈던 점은...
' 아~ 예쁜여자는 낯선 남자의 선행을 이끌어 내는구나~'
그런데 그 뒤에 있던 낯선 남자는 아내와 함께 있던 중년 아저씨였거든요.
'아~역시 예쁜 여자는 유부남이 아내를 두려워 하지 않고 선행할 수 있는 용기마저 주는구나~'
뭐, 이런 엇나간 교훈을 얻었습니다. ㅎㅎㅎ
에피소드 2
실버 컬러의 긴 곱슬머리를 찰랑 거리며 나타나신 할머니는 자신의 먹을거리와 고양이 캔음식을 잔뜩 구입하셨어요.
스캔이 다 끝나고 약 28불 정도가 나오자 놀라시며, 자기는 20불어치만 구입해야 한다며 필요없는걸 빼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다시 자신이 골라담은 식료품들을 다 끄집어 내시더니 하나 하나 살펴 보시며
"이건 필요해, 이것도 필요해~"
하시며 뒤에 긴 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시며 하나 하나 고르시더군요.
일단 사람이 먹고 살아야 하니 전 고양이 음식을 가르키며
"이걸 뺄까요?"
했더니 할머니께서 너무 단호하게
" 노~ 노~, 이건 우리 아기꺼야"
하시며 고양이 음식들은 다시 전부다 담으셨어요.
그리곤 자신이 먹을 식료품들을 하나씩 골똘히 생각하면서 뭘 빼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뒤에 줄 서 계시던 중년의 신사분께서 10불을 꺼내시며
" 걱정 말고, 다 담아 드려요, 내가 지불할게요"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선 한국식으로 세번은 거절한 뒤에 못 이기는 척 "감사합니다" 하고 받았겠지만
이 할머니는 돈을 지불해 주신 이 신사분 보다 더 쿨하게
"아 유 슈얼? 땡큐 쏘 머치"
거절 한번 없이 단 두마디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지요.
뒷분에게 10불을 받고, 약 28불 정도의 금액을 계산하고, 거스름돈이 1불 몇 센트가 생겼는데, 이 돈은 누구에게 건내야 할까 0.1초 고민하다가 당연히 10불을 내어 주신 신사분께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드렸더니 살짝 미소를 지으시며 할머니 드리라고 손으로 할머니를 가리키시길래, 할머니께 나머지 거스름돈을 드렸죠.
그랬더니 역시나 쿨내 풀풀 풍기시는 할머니께서는 당연한 듯 거스름돈을 받아 들고, 양손 무겁게 고양이 음식을 들고 사라지셨습니다.
에피소드 3
이번엔 뒷 사람이 아닌 앞 사람이 뒷 사람의 식료품을 계산한 이야기인데요,
제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분이 자신의 식료품을 계산하시고는 저에게
"제 뒤에 계시는 분 것도 제가 계산할게요"
하시길래 뒤를 보니
경찰관 아저씨께서 제복을 입고 계셨고, 구입하신 물품을 보니 푸드코트에서 구입한 도시락 두통과 음료수였어요.
저녁 시간대였으니 아마 저녁 식사를 구입하신 것 같았어요.
앞에 계시던 여자분이 자신의 저녁 식사를 대신 지불한다고 하니 경찰 아저씨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땡큐를 날리셨죠.
이 사람들에게는 못 이기는 척의 거절 따위는 없습니다.
그냥 땡큐 한마디면 되더라구요.
경찰관 아저씨의 땡큐에 그 여자분께서는
"Thank you for your service"
라
며 오히려 수고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전하더라구요.
아~ 여기서 저는 그 어느때 느껴보지 못한 찐한 감동을 느꼈죠.
그리고 저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군인이나, 경찰관, 소방관분들에게 이런 작은 선행을 베풀 기회가 있으면 커피나, 식료품을 제가 대신 계산하는걸로 그 감사함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앞 사람 뒷 사람에게 작은 선행을 베푸는 일들이 자주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기분 좋은 선행을 받을수도 있는거고, 내가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에게 흔쾌히 베푸는것도 어렵지 않은것 같아요.
결국 선행은 돌고 도는것... 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에피소드 4
이건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인데요,
추수 감사절이 이번주 목요일이라 지금 마트는 정말 바쁜 시기예요.
쇼핑 목록도 다들 명절 음식을 만들 재료들이죠.
어제는 정말 평일이였음에도 각 계산대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제 몸한번 스트레칭 할 시간 조차 없었어요.
손님들도 대기하는 시간이 길다보니, 줄 서 있는 동안, 앞 뒷 사람과 수다가 끊이질 않았구요.
한 중년 부부가 구입한 목록이 냉동 칠면조와 야채, 펌프킨 파이를 만들 재료등, 모두 명절 음식이였고, 금액은 약 30불 정도 였어요.
그런데 뒤에 계시던 여자분께서
"오, 이분들껀 제가 낼게요"
하시더라구요.
그러자 그 부부가
"아니예요, 괜찮아요"
라며 거절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한번도 거절하는걸 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거절하는게 이상한??)
그런데 뒤에 여자분께서
" 정말이예요, 제가 낼게요, 추수감사절이잖아요~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해피 땡스기빙~"
하시는데 그 말만으로도 이 여자분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누고 싶어서 조금 어려워 보이는 타인에게 약간의 식료품값을 대신 지불함으로써 자신이 더 행복해 지는 느낌.. 제가 그분에게 느껴졌던 건 바로 이것이였어요.
행색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는거지만 보기에는 그 중년 부부의 생활이 그리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그분들이 정말로 형편이 넉넉치 못한 분들이였다면 명절을 위한 음식값 만큼 도움을 받았으니 정말 고마웠을것이고, 또 여유로운 분들이였다고 해도, 낯선 사람으로부터 명절을 맞이해 나눔의 기쁨을 얻었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하루가 되었을테구요.
내일이면 미국 시간으로 추수 감사절이네요.
미국에서 대목이라 하니 어색하지만, 어쨌든 저희 마트는 대목이니 만큼 이번주는 풀~ 출근입니다.
다행히 내일부터 스케쥴을 빼놔서 저도 나름의 추수감사절을 즐기러 가지만요 ^^
감사와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는 땡스기빙, 미국에 와서 직접 몸으로 체험하니 그 의미가 팍팍 와 닿습니다.
연휴 끝나고 다른 에피소드들 정리해서 다시 돌아올게요~
여러분 해피 땡스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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