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따뜻한 봄날, 일본에 사는 한 배 불뚝이 임산부는 깻잎이 너무 먹고 싶다며 깻잎을 찾아 헤매다 좌절해 있을 무렵, 집 구석 어딘가에서 갑자기 툭 튀어 나온 깻잎 씨앗을 발견합니다.
그 들깨잎 씨앗은 2010년도 미국에서 구입했던, 그러나 심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고이 모셔 두었던 씨앗이였죠.
오래 묵은 씨앗인 만큼 발아율이 1%도 안될거라며 그냥 버리고 싶었지만, 깻잎에 대한 열망과 욕망이 그 임산부의 챌린지 정신을 자극하여, 저질러 보기로 했답니다.
네, 그 무모한 임산부가 바로 접니다!!!
그리하여 농사꾼 모드로 접어든 저는 씨를 뿌렸습니다.
혹시라도 발아율 0%로 인해 자라나는 제 뱃속의 새싹에게 좌절감을 맛보게 하고 싶지 않아 상추 씨앗도 구입하고, 이왕 시작하는 농사?인데, 내 씨뿌리는 자리 옆에 자기 씨도 좀 뿌려 달라며 완두콩 씨앗을 제 손에 안겨 준 남편님하!!!
그렇게 저의 텃밭, 아니 아이스박스 밭 가꾸기 생활이 시작되었답니다.
씨 뿌리고, 매일 아침 물 주고 그랬더니 씨가 좋았던 탓인지 금새 새싹을 틔우고, 잎을 내던 상추!!!!
처음 지어보는 농사라 어떻게 씨를 뿌려야 하는지도 몰라 막 뿌렸더니 상추가 저렇게 다발로 자라나더군요. ㅡ.ㅡ;;;
제가 하는 농사에 살짝 빨대만 꼽겠다는 심보로 맡겨놓은 남편의 완두콩도 힘을 내어 싹을 틔우고, 푸른 잎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씨앗 한봉지를 다 투척했는데도 불구하고, 호응이 없는 깻잎 화분 ㅠ.ㅠ
심지어 깻잎 심은 밭에 왜 상추 새싹이 나고 있는거냐며!!! (버럭!!! ) 아마도 씨앗이 바람에 날려 갔나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상추는 무럭 무럭 자라고 있었습니다.
제가 6월에 한국에 가 있는 동안,남편에게 농사일을 인수인계하고 가긴 했지만 왠지 이 양반이 나의 식물들을 초토화 시킬것만 같은 불안함에 매일 아침 물을 줬는지 확인 문자까지 보냈더니 자라나는 새 생명에 남편도 신이 났는지 요렇게 잘 키우고 있더라구요.
저에게 인증샷까지 보내며 상추 걱정 말고 잘 놀다 오라며;;;
어이쿠~ 남편의 완두콩은 키도 제법 컸습니다.
그러나 감감 무소식인 깻잎밭!!
드문 드문 자라나는 녹색잎들은 여전히 상추 새싹들...
이 집안은 역시 씨가 문제였어요.
밭이 좋아도 아무 소용 없네요 ㅠ.ㅠ
한국의 친정집에서 열심히 친정 엄마가 해 주는 밥 먹으며 뱃속의 아기 키우기에 전념하고 있는 동안
남편은 아이스박스 속의 상추 키우기에 전념하고 있었더랬지요.
상추들이 좁아 터진 이 집구석에서 못살겠다고 마치 아우성이라도 치는 듯한 사진을 남편이 보내옵니다.
잘 키웠다는 저의 칭찬을 바란듯....
저 대신 그의 장모님이 폭풍 칭찬을 해 주셨다는 후문이.....
자신의 콩이라며 소유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남편의 완두콩!!
그런데 물어 봅시다.
콩 씨앗은 제가 구입했고, 제가 심었고, 제가 싹을 틔웠어요.
물론 남편이 2주간 돌보긴 했지만 실제로 이 콩의 소유주는 누구인것일까요?
그 콩 씨앗을 살 돈을 벌어온 사람은 물론 남편이긴 합니다. ㅡ.ㅡ;;;
조만간 남편과 이 콩의 지분 다툼이 일어날 듯 해서 말이죠.
그렇게 남편과 콩의 소유권을 두고 분쟁을 하는 동안, 우리의 깻잎이 분발하고 분발해서 드디어 그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냈다는거 아니겠습니다.
아이스박스를 뚫고 나올 듯 무서운 기세로 자라고 있는 상추보다, 발아율 0%를 예상했던 3년 묵은 깻잎 씨앗이 이렇게 힘을 내서 싹을 틔우고, 그럴싸한 깻잎 잎을 돋아냈으니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더라구요.
좁아 터진 아이스박스에서 괴로워 하는 상추 녀석들을 위해 드디어 수확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크고 실한 잎들은 뜯어서 저녁반찬으로 올리고, 나머지 녀석들은 더 넒은 아이스박스를 장만해서 다시 나눠 심었지요.
'이것들아! 더 많은 일용할 양식을 내 놓으렷다!!'
그 사이 아직 소유권 분쟁이 한창중인 콩은 키도 훌쩍 자라 지지대가 필요할 정도가 되었답니다.
물론, 제가 그 지지대를 구입했고, 지지대와 콩 줄기를 지지해 주는 작업 역시 제가 했지요.
그리고 잎이 타 들어가는 증상도 좀 보이고, 어떤 녀석들인지 잎을 갉아 먹는 녀석도 있는 것 같아 병을 예방하는 스프레이도 구입하여 살짝 뿌려주기까지 했답니다.
(이 정도면 저에게 더 지분이 많은것 아니겠습니까?!?!?!?!? )
그 사이 저의 깻잎은 향긋한 깻잎향을 내며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발아율은 20%를 훌쩍 넘겼습니다.
큰 깻잎 아래에 작은 깻잎들이 발아를 시작했거든요.
성장 속도가 콩이나 상추에 비해 느리지만 그래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기에, 그리고 원래 저의 쁘띠 농사 (?)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 바로 이 깻잎이였기에 이 정도에도 대만족입니다.
일본에서 깻잎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힘든데, 적어도 이곳 이와쿠니에서는 그렇습니다 ^^;;;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면, 분명 깻잎을 좋아할테고, 그 깻잎을 구할 수 있다면 당삼빠따로 (이...이건 무려 15년만에 써 보는 부산 유행 사투리?? ㅋㅋㅋ ) 기뻐할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깻잎 모종이 있는데 키워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문자를 날렸지요!
다시 한번 당삼빠따로 좋다고들 하시며 달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리하여 아직 때 묻지 않은, 어린 깻잎들 중, 이왕이면 좀 싱싱하고, 될성부른(? ) 녀석들로 선별하여 모종을 나누어 드렸습니다.
'부디 무럭 무럭 자라서, 이 이와쿠니땅에 한국의 들깻잎향을 널리널리 퍼트리거라~ '
모종을 제일 처음으로 받으셨던 챠타니상이 그날 저녁 사진을 보내 오셨어요.
나의 어린 깻잎들을 벌써 옮겨 심기 하셔서 이렇게 좋은 화분밭에 정착을 시켜 주시다니!!!!
부디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서 제 손바닥 만한 잎으로 그 보답을 해야 할텐데 말이죠.
깻잎 모종과 함께, 민간 외교 캠페인(?)의 하나로 깻잎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 3선도 제가 나름 엄선해서 레시피까지 함께 보내 드렸다는..... ^^
그것은 바로.... 깻잎 참치 김밥, 깻잎 닭갈비 덮밥, 그리고 상추 깻잎 샐러드!!!!!
빨리 깻잎이 자라서 이 요리들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던 챠타니씨는 깻잎이 자라는 걸 기다리지 못하시고는 그날 즉시 깻잎 없는 닭갈비 덮밥을 만드셨다며 또 사진을 보내 오셨습니다.
레시피가 매울 것 같아, 고추장 양도 좀 조절했는데 입맛에 너무 잘 맞고 맛있었다면서 말이죠 ^^
모종 나눠 드리기를 하고, 한국서 김치를 담아왔던 아이스박스에 다시 나눠 심기한 나의 애기 깻잎들...
(엄마!!! 엄마의 김치 아이스박스는 이렇게 200% 재활용 되고 있답니다 ^^ ㅋㅋㅋㅋ)
순치기를 해 줘야 깻잎이 더 많은 가지를 만들고 잎을 만든다길래, 아직 아기 손바닥 만한 사이즈의 잎들이지만 좀 따먹기로 했습니다.
한 잎 한 잎 따는데 깻잎향이 어찌나 좋던지!!!!!
그리고 완두콩은 그 사이 장족의 발전을 하여, 드디어 열매를 맺었습니다!!!!!!
콩이다!!!!!!!
아직 알이 꽉 차지 않은 것 같지만, 좀만 더 키우면 알도 커지고, 콩이 더 많이 맺히겠죠?
콩이 맺힌 걸 보니, 남편은 어느때보다 강하게 자신의 콩이라며 콩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 분쟁은 먼저 따 먹는 사람이 임자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실컷 콩을 키워 놓고, 출산하러 나가야 하니 아무래도 남편이 저 콩들을 먹게 될 것 같.... ㅠ ㅠ 아... 요.
젠장할~
그러나 떠나기 전에 전 저의 깻잎을 수확했으니 그 수확의 기쁨을 누려 보기로 합니다. 우하하하하하~
깻잎과 상추를 깨끗이 씻어 씻어~~~
작은 애기 깻잎들이지만 그 향만큼은 큰 깻잎들 못지 않게 진해서 닭고기의 풍미를 살려주는 역할을 제대로 하더라구요.
남편도 맛있다며 한 그릇 뚝딱!
방금 따온 상추는 물에 살짝 담궈 뒀더니 파릇파릇 더욱더 싱싱함을 발하며, 살아 나갈 기세~
얼른 샐러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올리브 오일로 만든 소스 뿌려서 냠냠~
내가 직접 키운 무공해 야채를 먹는다 생각하니 더 건강해 지는 느낌.
그리고 식물들을 돌보는 동안, 태교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 같구요.
일본에서 키운 한국 상추로 (씨앗 이름이 한국 치마 상추 였거든요) 멕시칸 요리도 만들어 먹어 보아요~
얼마전에 포스팅한 타코쉘~
햄버거를 만드는데 뭔가 허전한~ 상추가 없다!!!
밖에 뛰어가서 상추잎 몇장 얼른 뜯어와 찬물에 씻어서 햄버거 사이에도 몇장씩 물려 주었습니다.
이만하면, 올해 농사, 초보 농사꾼이 한 것 치고는 풍작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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