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부끄럽게 만든 일본 어린이

드디어 이사를 했답니다.
아직 인터넷이 안되서 블로그 글을 못 올리니 얼마나 답답한지...
그래서 오늘 스마트폰으로라도 써 볼려구요.
중간에 오타가 있을지도 모르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제가 사는 곳은 일본의 번화한 도시가 아닌 일본 젊은 사람들도 별로 살지 않는 시골이랍니다.
이 얘기는 하도 많이 해서 그냥 제 블로그 공지에다가 띄워야 할 판!!! ㅋㅋㅋ
아무튼 그러다보니 도시에서는 흔하지 않은 경험들을 하게 되는데요, 그 중에 하나를 얘기 해 볼까 합니다.

화요일에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답니다.
이 동네 자체가 새로 개발된 지역이라 새동네예요. 집들도 거의 다 신축들이고 이 지역의 특성상 미국인들이 많이 살구요.

아무튼 이사를 오후에 하고 남편과 제가 대문 앞에 잠시 앉아서 쉬고 있었답니다.
그때 그 동네 사는 초등학교 1,2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네 다섯명씩 짝을 지어서 집으로 가는 모양이였습니다.
저희 앞을 지나던 아이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저와 남편에게 "곤니찌와" 라고 인사를 하는게 아니겠어요?
한국 어린이들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인사를 일본에 와서 낯선 어린이들에게 받으니 사실 당황스러웠답니다.
솔직히 그동안 이웃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네본 적도 없고 인사를 받은적도 없어서 이웃이라도 얼굴도 모르고 산적이 대부분이였고, 얼굴을 알더라도 인사하고 가깝게 지내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웃 아이들도 아니고 동네 아이들로 보이는 어린이들에게 인사를 받으니, 나도 인사를 해야 해서 "곤니찌와" 라고 답 인사를 했는데 어찌나 쑥스럽던지요.

남편도 그 상황이 조금 머쓱했는지 저를 보고 어깨를 으쓱하며 웃더라구요.

그리고선 한 5분이 지났나??
이번엔 다른 그룹의 어린이들이 또 한무리가 한참 수다를 떨며 오더니, 저희 앞에 다다르자 멈춰서서 "곤니찌와" 하며 인사를 하는겁니다.
그중에 두명은 저에겐 일본어로, 남편에게 영어로 "헬로~" 라고 하고선 다시 제 갈길을 가더라구요.
역시나 답인사를 건네는게 쑥스러웠지만 어린이들도 하는데 어른인 내가 이웃에게 인사하는걸 부끄러워 한다는 사실이 더 부끄럽더라구요.

이후 남편은 그대로 밖의 계단에 앉아있었고 전 현관앞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밖에서 계속 들리는 아이들과 남편의 "곤니찌와" 인사소리!!!

아마 저희 남편 일본어로 인사해본건 일본 생활동안 그날이 처음이였을겁니다.

밖에서 열심히 인사를 하던 남편이 갑자기 저를 부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보니, 남편이 아주 곤란한 얼굴로 저 아이와 인사를 나눴는데 뭔가 일본어로 얘기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겁니다.
저를 본 아이는 웃으며 "곤니찌와" 하더니 여기 새로 이사 왔냐는거예요.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집은 저 위로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있다고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하는겁니다!!!!!!!!!!

그 아이의 잘 부탁한다는 인사에 함께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하면서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전 지금까지 세상이 삭막해져간다며 남탓만 했지, 제가 먼저 나서서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거나 말을
건네볼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거든요.
오히려 제가 인사를 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나를 이상하게 볼거야 라며 혼자서 지레 짐작하고 시도 조차 안해봤어요.

그런데 기껏해야 8살 9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한테 같은 동네 산다고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받으니 제가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지요
세상이 점점 삭막해져가는게 아니라 어른인 내가 삭막한 세상을 만들고 있는거였더라구요.

그날 전 저보다 한참이나 어린 아이로 부터 오히려 큰 배움을 얻었답니다.
이사온 첫 날 그 아이를 만나게 된 덕분에 전 이 동네가 좋아질 것 같아요.
그 아이로 인해 가슴이 참 따뜻해지는걸 느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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