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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기

미국 마트의 쭈꾸미 쟁탈전

by 스마일 엘리 2016.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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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어느날...

 

돈벌이 모드로 전환하여 열심히 바코드를 스캔하는데 지금껏 본 적 없는 상품이 저를 향해 계산대 벨트를 타고 점점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오잉?!?!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더 확인했죠.

 

팩키지에 포장 된 그것의 이름은

 

baby octopus

 

아기 낙지?

 

라고 씌여져 있지만 그것은 쭈꾸미였어요. 쭈꾸미나 낙지나 영어로는 그게 그건가? 흠흠...

 

아무튼 이 쭈꾸미를 저희 마트에 팔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고, 일한지 반년이 다 되었지만 이 쭈꾸미를 구입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었기에 쭈꾸미의 출현은 저에게 베리베리 스페셜한 일이였죠.

 

이걸, 여기에서 팔고 있는지 몰랐네요, 어디에 있었어요?

 

제가 점원인지, 손님인지 ㅋㅋㅋ 손님한테 되려 쭈꾸미 어디 있느냐고 묻고 있는 이 상황은?

 

해산물 코너에 있어요, 바베큐 할 때 그릴에 살짝 구워 먹으면 맛있어요~

 

라며 친절하게 알려 주시는 손님~

 

쭈꾸미가 있다는 소식에 더 이상 쭈꾸미를 구입하는 손님이 나타나지 않기만을 기다리며 일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해산물 코너로 달려 갔습니다.

 

보통 밤 10시, 11시면 일이 끝나기 때문에 해산물 코너는 이미 문을 닫고, 진열대도 다 정리되어 있더라구요. ㅠ.ㅠ

 

그런데 해산물 코너 옆에 따로 소포장 해 놓은 코너에서 따~악!!! 고물 고물 귀여운 쭈꾸미들이 새초롬 하게 포장되어 놓여져 있는 걸 봤지 뭡니까?

 

그것도 딱! 한팩 남은....

 

미국땅에 온 후, 처음으로 만나는 쭈꾸미인지라 이 귀하신 해물을 어떻게 요리해 드려야 그 이름에 누가 안될지 심사숙고했습니다.

그리고 매운 고추가루 양념과 각종 모듬 야채를 대기 시킨 후, 귀하신 몸을 그 안에 뉘어 드렸죠. 고추 가루 양념을 전신에 골고루 범벅 마사지를 해 드리면서 말이죠.

 

 

쭈꾸미 볶음 납시오~

 

 

이 쭈꾸미 볶음을 마주하던 순간, 임금님의 수라상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귀하디 귀한 쭈꾸미 볶음을 만들었는데 함께 즐길 사람이 없다 ㅠ.ㅠ

같이 눈물 콧물, 땀 한바가지 흘리며 쭈꾸미 건져 먹고, 남는 양념에 참기름과 김가루 넣고 볶아서 약불에 올려 누룽지 만들어 가며 긁어 먹어야 제 맛인데!!!! '

 

그러나 그 슬픔 따위, 이 맛있는 걸 혼자 다 먹을 수 있어서 더 좋으다~ 라며 긍정적 자세로 받아 들이고, 오랫만에 강렬하고 따끔한 캡사이신의 자극으로 잠자고 있던 위를 깨웠죠.

 

그리고 그 후폭풍은 대단했습니다.

 

만성 변비로 열심히 찍고 있던 '울 집 화장실은 어디인가?'가 대 단원의 막을 내렸고, 남편이 매운 음식을 먹고 경험했다던 화염 내뿜는 엉덩이를 직접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이 지나니 또 이 쭈꾸미 볶음이 생각나는 겁니다.

게다가 날이면 날마다 파는 것도 아니고, 지금이 딱 철이라서 들어 온다는 말에, 있을 때 먹어야한다는 일념으로 다시 쭈꾸미를 사러 해산물 코너로 갔죠.

 

그런데 쭈꾸미는 없습니다 ㅠ.ㅠ 아니, 쭈꾸미만 없습니다. 다른건 다~ 있는데 말이죠.

 

'나는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잖아, 직원의 특혜를 좀 누려야 겠어! '

 

해산물 코너 직원에게 가서 직접 물어보았죠. 게다가 해산물 코너 직원과는 초큼 친한 사이? ㅋㅋㅋ

 

쭈꾸미 없어요?  

 

오늘 팔았는데, 남은건 이미 다 버렸는데?


뭐라고라? 그 아까운걸 다~ 버렸다고라? ㅠ.ㅠ 안타까운 표정으로 울상이 된 저를 본 그 직원은

 

내일 또 들어오니까 내일 오전 중에 와 봐요.

 

아~ 이런 내부자만 알 수 있는 정보? 좋아! 좋아! ㅋㅋㅋㅋ

그리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그 날은 그렇게 퇴근을 하고, 다음 날 저녁 일 끝나고 다시 해산물 코너로 갔습니다.

 

그런데 또 쭈꾸미만 없지 뭡니까?

 

쭈꾸미 없어요?

 

오늘은 다~ 팔렸어요. 월요일에 들어 오니까 월요일에 와 봐요.

 

 

'미국인이 이렇게 쭈꾸미를 사랑하는 민족이였던가?'

 

실망한 채, 월요일은 꼭 쭈꾸미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부진 다짐을 하며 해산물 코너를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일도 끝나기 전, 도중 휴식 시간에 부리나케 해산물 코너를 찾았죠.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남은 쭈꾸미를 싹쓸이 해 오겠다는 생각으로...

 

그러나 저를 보자 마자 해산물 코너 직원은 자기가 더 안타깝다는 듯

 

아~ 오늘 쭈꾸미가 들어 왔는데 한 여자 손님이 오늘 들어온 물량을 전부 다 싹쓸이 해서 구입해 갔어요.

 

뭐...라?!?!?!?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여자가 나 말고 또 있단 말인가?!?!?!?!

 

다~ 팔렸다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이 다~ 싹쓸이를 해 갔다는 말을 들으니 이거 왠지 얼굴도 모르는 여자랑 쭈꾸미 쟁탈전을 하고 있다는 묘한 경쟁 심리가 발동하더라구요.

 

오케이, 그럼 쭈꾸미 다음번엔 언제 들어와요?

 

 

거의 매일 하루에 한번씩 들어 오니까 와 봐요

 

마음 같아서는 정말 매일 매일 하루에 한번씩 해산물 코너를 들리고 싶지만 알바가 주에 두 세번 밖에 없고, 일부러 오기에는 차로 운전해서 20분이나 와야 하기 때문에 다음 알바 하는 날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알바 시작 전에 미리 해산물 코너에 들러서 사고 싶지만 해산물이라 냉장 보관을 해야 해서 일하는 동안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고, 직원에게 부탁해서 따로 빼 놓아 달라고 하고 싶어도 제가 일 끝나는 시간은 이미 그 코너가 냉장고를 정리하고 난 뒤라 부탁하기도 마땅치 않구요.

 

 

'어쩔 수 없지... 일 끝날 때 마다 매일 들리다 보면 쭈꾸미 레이디가 안 오는 날, 남은 쭈꾸미가 있는 날이 있겠지'

 

제가 일 끝나고 매일 쭈꾸미 있나 확인하러 오는데, 쭈꾸미 남는 날은 포장해서 옆에 냉장고에 진열 해 주세요~

 

라고 부탁하고, 그 이후부터 알바가 있는 날은 어김 없이 해산물 코너를 들렀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물론 허탕 치는 날이 대부분이였구요.

 

'삼겹살은 안 팔아서 못 먹었는데... 쭈꾸미는 팔아도 못 먹는구나... '

 

먹고 사는게 참으로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점점 쭈꾸미에 대한 희망을 잃어 가던 어느 날!!!

 

소포장 해서 진열해 놓는 냉장고에 쭈...쭈꾸미가!!!!

 

잽싸게 남아 있는 쭈꾸미를 싹쓸이 해 왔습니다. 움하하하하하

 

그리고 다음 날 또 행복한 고민에 빠졌죠.

 

이 쭈꾸미님을 어떻게 요리해 드릴까~

 

 

 

 

쭈꾸미님은 콩나물과 고추가루 양념으로 삼위일체가 되어 쭈꾸미찜으로 거듭나셨습니다. 할렐루야~

 

한동안 한국 음식을 못 먹어서 욕구 불만으로 잠시 위기가 찾아 왔었지만 이 쭈꾸미찜 덕분에 욕구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쭈꾸미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는 없어요. 제 냉동실에는 손질 된 쭈꾸미가 대기 타고 있으니까요 ^^

 

누군지는 모르지만 보고 있나? 쭈꾸미 레이디?!?! --> 보고 있을 가능성은 0.000001프로도 없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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