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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기

밤은 먹는게 아니라던 미국인 남편이...

by 스마일 엘리 2012.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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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의 소재가 먹는게 참 많네요.
그 이유는 아마도 제가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이고, 둘째는 미국인 남편과 다른 식성의 차이 때문에 에피소드가 많이 생기기 때문인가봅니다.

남편과 데이트를 할 때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에 간 적이 있어요.
차이나타운인 만큼 중국색이 가득한 거리에 중국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고, 길거리에서는 중국식 만두와 구운 단밤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오랫만에 데이트 시절 사진을 보니 풋풋하네요 ㅎㅎㅎㅎ

여러분도 눈치 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제 입맛은 참 거침없거든요.

닥치는대로 다 먹을 수 있는... (앗! 못 먹는게 있긴 있습니다만) 그런데 입맛이 거침없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주 아주 좋게 표현하자면 클래식해서, 밤, 홍시, 팥, 떡, 죽등 주로 할머님들이 좋아하시는 것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금 음식 소재의 포스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ㅋㅋㅋ 여러분들이 싫증 내실까봐 나눠서 ^^;; )

아무튼 그냥 밤도 아닌, 단밤은 손톱으로 꼭 눌러서 양 옆을 꽉 눌러주면 밤이 "오?" 하며 입을 쫙~ 벌리고, 알맹이를 쏙! 하고 토해내잖아요???
까는 재미도 있고, 먹는 재미도 있고, 맛도 있어서 너무너무 좋아하기에 그 앞을 또 지나치지 못하고, 한봉지 샀습니다.
남편은 밤을 이때 처음 보았는지 저에게 물어보더라구요.

그게 뭐야??

체스트넛 (밤)이야, 나 이거 너무 좋아해!

뭐? 밤을 먹는다고?? 밤은 먹는거 아니야!

밤 먹는거 맞아, 한국에서도 밤 먹고, 일본 사람들도 밤 먹어. 얼마나 맛있는데!!! 한번 먹어봐!!!

이렇게 맛있는 밤을 '먹는것' 이 아니라고 하니 황당했지만, 분명히 맛 보면 달달한 밤 맛에 좋아할 것이라는 걸 확신하고는 남편에게 밤 까는 법까지 알려주며 먹어보게 했죠.

그렇게 해서 밤 한알을 쏙 입에 넣던 남편은 두 세번 우물우물 씹더니 갑자기 온갖 인상을 다 찡그리며 밤을 삼키지도, 더 이상 씹지도 못한 채 어버버버 소리 내며 말하길~

나, 이거 도저히 못 먹겠어, 뱉어도 돼?? 미안해

하더라구요.
못 먹겠으면 그냥 뱉으면 되지 뭘 또 허락까지;;; 이런 매너있는 남자를 봤나 ㅋㅋㅋ
아무튼 그렇게 남편은 밤을 먹어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결국 못 먹고 뱉어 냈답니다.
밤은 먹는게 아니라는 편견을 가지고 먹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먹어볼려고 시도는 했고, 안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후로 저는 남편에게 밤을 권하지 않았죠.

그러던 어느날, 샌디에고에 있을 때 한국 슈퍼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남편의 수정과 사랑은 다들 아시겠지만 남편은 한국 슈퍼에 갈때마다 반드시 수정과를 사고, 과자는 바나나킥과 마가렛트를 샀어요.
그러다 우연히 아이스크림 코너를 갔는데, 남편이 갑자기 이거 뭐야? 하고 집어든 아이스크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요것!!!

                                               이미지 출처 : http://olpost.com/v/6741620

바로 밤 맛이 나는 바밤바였죠.
위의 대화에서 짐작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밤을 본 적이 없어요.
제가 단밤을 체스트넛이라고 얘기 했기 때문에 남편은 단밤밖에 모르니, 옆에 밤 사진이 떡~하니 그려져 있어도 이게 밤인지 모르는겁니다. ㅋㅋㅋㅋㅋㅋ
저희 남편이 바로 '눈뜬 장님 미국인 버전' 이였던 것이죠 ㅎㅎㅎㅎㅎㅎ

이게 뭐야? 이거 맛있을것 같아, 어때? 맛있어?

순간 고민합니다. 이거 밤이라고 얘기해 줄까 말까??
분명히 제가 밤이라고 하면 단밤의 기억을 떠올리며 금방 내려놓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편견없이 우선 맛을 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먹여보고 얘기해주기로 합니다.
그래서 이게 뭐냐는 남편의 질문을 교묘히 피해서

이거 정말 맛있어!!! 이거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야!! 한번 먹어봐!

라고 했죠.
실제로도 저희 친정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기도 합니다.
장모님이 좋아하신다니, 저보다 믿을만 했던지 덥썩 장바구니에 담더라구요.
미국에서 파는 바밤바는 낱개가 아니라 보냉팩에 6개 (제 기억이 맞다면 6개)가 들어서 셋트로 판매하길래 그렇게 한 셋트를 구입해서 집에 오자마자 뜯어서 하나씩 사이 좋게 나눠 먹었습니다.
저는 남편의 눈치를 살폈죠.
한입을 베어 먹더니 입안에서 바밤바의 맛을 음미하던 남편은

오오~ 이거 꽤 맛있는데??? 나 이거 좋아!!!

그래?? 그 아이스크림 무슨 맛 나는데???

바나나맛! 이거 바나나맛 아이스크림 아냐??




해맑게 웃고 있는 이 귀여운 밤들의 존재는 깡그리 무시한 채, 너무나 태연하게 바나나맛 아이스크림이랍니다. 참내~

이거 밤맛이야, 맛있지??? 그때 먹었던 밤이랑 맛이 틀리지? 그치?

거짓말!!! 이거 바나나야, 바나나 과육도 씹혀!

그거 밤이야! 그리고 포장지를 봐라, 얘네가 바나나냐? 한국인이 바보냐? 바나나 넣어서 만든 아이스크림 포장지에 밤 사진을 그려놓게? 이거 밤 사진이야!

제가 바밤바 포장지를 남편 눈앞에 들이대고 흔들어대며 목소리를 높이니 자기도 무안한지

알았어!! 알았다고!!! 좀 진정해!!!

하더니만 밤은 사람이 먹는게 아니라던 편견과 맛없다는 옛기억을 버리고 마지못해 받아 들이는 듯 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저는 마침 저희동네에 살고 있던 일본인 친구가 생겨서 그녀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하고 외출을 했지요.
그때가 토요일이라 남편은 집에 있었어요.
친구와 네 시간 정도 신나게 수다를 떨고 집에 왔더니 남편이 제 눈치를 자꾸 살피는겁니다.
그러더니 저한테 어제 한국 슈퍼에서 뭐 빠뜨리고 안 사온거 없냐며, 살 거 있으면 가서 사오자는거예요.
한국 슈퍼는 제가 가자고 하지 않는 이상 남편이 먼저 가자고 한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남편이 뭔가 사고 싶은게 있다는 의미였죠.
난, 살거 없는데? 왜?? 뭐 살거 있어?

그랬더니 제 눈치를 흘끔 흘끔 살피더니 갑자기 제 마음 약해지게 만드는 애교 기술인 입술 내밀고 고개를 푹 떨어뜨리기를 보여줍니다.

자기야... (한숨 푹~) 진짜 미안한데 내가 바밤바 4개 다 먹어서 냉장고에 하나도 없어 ㅠ.ㅠ  진~짜 미안해.

하며 기가 푹 죽어서는 죽을죄를 진 사람마냥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일부러 더 오버하며

뭐?? 그걸 혼자서 다 먹었다고?? 내꺼도 안 남겨 놓고?? 어떻게 감히 그럴수가 있어?? 자기는 밤 안 좋아한다 그랬잖아! 밤은 먹는거 아니라고 그랬잖아! 그런데 4개씩이나 먹었다고??

그랬더니 막 입술을 삐죽삐죽 거리면서

너무 맛있어서 나도 어쩔수가 없었어! 두개만 먹고 두개는 남겨 놓을려고 했어. 그런데 스낵을 찾을려고 냉장고 앞에 갔다가 바밤바를 보니까 나도 참을수가 없었다고!!!!!
그래서 정말 마지막 남은 하나는 절대로 안먹을려고 했어.
얼마나 내가 노력했는데...... 그런데 자기가 너무 늦게 왔잖아.
자기가 세시간만 놀다 왔으면 마지막꺼는 안 먹을 수 있었어!!!

ㅍㅎㅎㅎㅎㅎㅎㅎㅎ 제가 너무 몰아치니까 급기야 바밤바 다 먹은걸 제 탓으로 돌리는 이 영악함!!!!!!!!
 그리고 밤이 맛있다고 스스로 목소리를 높이며 인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일부러 그걸 다 먹었냐며 나무라기는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정말 뿌듯했어요.
어쨌든 먹을 수 없다고 하던 음식에 대한 편견을 깨고, 그 음식의 참맛을 알았으니까요.
그 이후 한국 마트 갈때마다 남편은 수정과와 함께 바밤바도 항상 장바구니에 담곤 했었죠.
일본에 온 이후로는 한번도 못 먹었기에 아마도 바밤바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이 블로그를 포스팅하기 전에 궁금해서 구글로 검색을 해봤더니 미국인들은 거의 밤을 안 먹는대요.
뉴욕의 맨하탄(이라고 쓰고, 맨햇응이라고 읽는다 ㅋㅋ) 에서는 군밤을 팔기도 하는데 아마도 그건 뉴욕에 다민족이 밀집해 있어서인것 같아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밤 먹어도 안전하냐는 질문까지 봤네요 ^^





군밤이 생각나는 계절이 돌아왔네요~
여러분들이 저를 대신해서 군밤 많이 드셔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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