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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기

밥에 묻혀버린 나의 프로포즈 이야기

by 스마일 엘리 201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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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포스팅들이 결혼 얘기, 프로포즈 얘기가 나오다 보니 저의 프로포즈 얘기도 듣고 싶다는 분들이 많으셨.... 으면 좋겠지만 없네요???? ㅍㅎㅎㅎㅎ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강제로 들려드리겠습니다.


자~ 엘리의 프로포즈는 얼마나 로맨틱했을까요??
지금까지 들려드린 제 남편의 이야기로 추측하자면 정말 정말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이벤트가 당연히 있었겠죠?
일단 기대하시고!!!!
그러나 뒷일은 늘 책임 안 지는 엘리라는거 아시죠? ㅋㅋㅋㅋㅋㅋ


저희는 롱디 커플이였는데요, 남편과 저는 크리스마스에 라스베가스와 그랜드캐년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답니다.
(아~ 지금부터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남편을 남친으로 칭하겠음, 다시 부를수 없는 이름 남친님하!! ㅠ.ㅠ)
제가 여행을 워낙 좋아하고, 남친은 (아~ 어색하구만) 저에게 모든 여행 계획과 호텔 예약, 일정짜기등을 일임한 상태였죠.
저는 여행 계획 짜는것부터 여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때는 저에게 모든것을 일임해준 남친에게 무한 감사를 느끼며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 정보를 알아보기 시작했답니다.(알고보니 귀차니즘 대마왕 남친이 손하나 까딱 안하고 날로 여행가겠다는 심보였음)

그런데 여행 계획을 준비하던 중에 11월 초쯤에 남친이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간다는거예요.
그곳에 인터넷이 워낙 느려서 연락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안되면 자기 친구네집에 가서라도 메신저 접속을 할테니 항상 컴퓨터를 켜 놓으라 그래서 알겠다고 했죠.
그래도 집에 있던 인터넷도 쓸만했는지 아침 저녁으로 접속하길래, 서로 시차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매일 매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었답니다.
저와 대화를 하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각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저를 기다리는 남친을 보고 저희 시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마치 아주 잘 훈련된 개 같구나!!!!!!

개 같구나!!!!!!

개 같구나!!!!!!

아..... 아버....님!!!!! ㅍ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무튼 그렇게 고향집에서 며칠을 보내던 남친이 갑자기 저에게 부탁이 있다는거예요.
그래서 뭐냐고 물었더니

이번에 만나면 내가 너한테 질문을 한가지 할거야, 그리고 너의 대답은 무조건 "YES"여야만 해!!!!

이러더군요.
그래서 답해줬죠.
걱정마, 난 틀림없는 여자니까 대답은 분명 "예스" 일거야.

ㅋㅋㅋㅋㅋ 이해하셨습니까? 
별로 어려운 농담도 아니였는데 남친도 첨에는 너 뭥미?? 하더라구요.
이해못한 남친에게 설명하듯 다시 한번 설명해야 한다면.. 남친의 질문은 "너 여자야?" 라고 묻는다면 전 여자니까 분명 저의 대답은 "예스" 일거라는 말이였어요 ^^;;;

사실 이때 감이 확~ 왔지요.
하지만 아는척 하기가 그렇더라구요.
또 혼자 김칫국 마시는 것일수도 있으니 일부러 저렇게 대답했어요.
 
추천당근 주세용~ ^^ 엘리는 추천당근을 먹고 힘내서 글을 쓰거등요~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남친과 함께 라스베가스에 놀러를 갔죠.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침이 되자 막 기대되더라구요.
'오늘 프로포즈 할려나?'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의 일정은 어떻게 되냐며 묻더라구요.
'내가 지 비서야 뭐야?'하면서 브리핑 했습니다 ㅠ.ㅠ

오늘은 **호텔 **호텔 **호텔을 구경하고, 저녁식사는 라스베가스에 오면 꼭 가봐야 한다는 벨라지오 호텔 부페야.

저희는 일정대로 구경을 다니기 시작했죠.
그리고는 저녁이 되어 벨라지오 호텔 부페에 갔더니 이런~ 전세계 사람들이 부페먹으러 다 여기 모였나 싶을 정도로 줄이 길더라구요.
좀 앞쪽에 서 있는 분께 얼마나 기다린거냐 물었더니 오마이갓~ 4시간 기다렸다는거예요.
이미 저희는 배가 너~~~~ 무 고파서 기다릴 인내심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다른 부페를 찾아 갔어요.
그런데 이건 더 OMG~ 물었다 하면 다 4시간 기다렸대!!!!!!
그래서 제 여행 일정에 큰 차질을 빚고, 그냥 아무 호텔의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었답니다.
저는 계획대로 딱딱 해야 되는 사람인데, 그게 어긋나서 속상하고, 벨라지오 호텔 부페를 못 먹은것도 너무 속상하더라구요.
내가 또 언제 라스베가스 오겠어!! 하는 생각에 밥 먹으면서 눈물 그렁그렁~
그랬더니 남친이 내일 일찍와서, 기다려서 꼭 먹자고 하길래 바로 눈물을 거두고 급 방긋!
호텔로 돌아와서 남친의 눈치를 흘끔흘끔 살피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프로포즈를 할래나? 하며 일부러 TV도 안켜고 어두컴컴한데 앉아 있었는데 TV켜고 불켜고 TV재미있는거 안한다며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크리스마스 선물 개봉이나 하자는거예요.
에라이~!!!!!!!!!!
(원래 계획은 산타 코스튬입고, 라스베가스의 클럽을 가는것이였는데... ㅠ.ㅠ )

시어머님께서 보내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 여행기간 동안 먹을 간식이랑 여행다니면서 쓰고 버리라고 일회용 접시 컵, 냅킨등을 보내셨더라구요  덕분에 컵에다가 너구리 반으로 쪼개서 전자렌지 돌려 끓여 먹고, 이래저래 잘 썼네요.

그렇게 둘이서 선물 개봉식을 하고, 각자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도 교환하고, 제일 큰 선물은 언제 주나 싶어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노트북에 영화 다운받은거나 보자며 둘이서 러브액츄얼리 보고 그냥 잤습니다 ㅡ.ㅡ;;;

그렇게 로맨틱이 얼어죽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나가고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었습니다.
눈뜨자 마자 든 생각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프로포즈를 할래나? 하며 또 기대를 안고 남친을 깨웠죠.

베이비, 일어나~ 메리 크리스마스 (빨리 프로포즈 해야지?? 엉? )

눈물의 씨앗 (눈꼽)을 떼어내며 일어나더니 오늘의 일정을 또 브리핑 하래요.
그래서 쫘라락 읊어주고 우선 크리스마스니까 어머님께 선물 잘 받았다고 전화부터 먼저 드리자니까 오후에 할거라며 안 한다지 뭐에요.
뭐 이런 불효자식이 다 있나 싶어, 인사는 아침에 하는거야!!! 라며 억지로 전화 걸게 해서 통화하게 했죠.
그런데 통화 내용을 엿듣자니 남친이 "아직" 이라고 말하는거에요.
속으로 그래 당연히 '아직'인게 있어야지 하며 제 예상이 김칫국은 아님을 재확인하고 외출준비를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남친이 몸이 좀 안 좋은것 같다며 좀 있다가 나가자길래, 그러자고 하고 남친은 다시 잠이 들고, 저는 나홀로 집에를 봤답니다.
미국도 크리스마스에는 ' 나홀로 집에' 틀어 주더라구요. 좀 웃겼음 ㅋㅋㅋㅋ
그런데 벨라지오 부페를 먹으러 갈려면 빨리 준비해서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시간만 낭비하고 있으니 짜증이 나더라구요.
어제 못 먹었으니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먹어야 하는데 자기 몸이 안 좋으면 저 혼자서라도 나가서 줄서서 기다리고, 남친은 나중에 오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그 정도로 저는 벨라지오 부페가 절실했어요.
오후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프로포즈고 나발이고, 빨리 줄을 서야 될텐데~ 하며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길래 일단 먼저 화장하고, 옷 입고 준비를 했어요.
그리고 남친한테도 빨리 준비하라고 재촉했죠.
그런데 빠릿빠릿 안 움직이고 왔다 갔다 하는 저만 보고 있는거에요.
시계를 보니 지금 나가서 줄을 서도 4시간 기다리면 8시나 되야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급해졌죠.
그럼에도 침대에 걸터 앉아서 저만 보고 있는 남친!!!

당장 너의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롸잇나우!!!!
라고 소리치며 남친의 손을 끌어 잡아 당기며 제 가방을 챙기고 문밖으로 끌고 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뒤에서 저를 꼭 끌어 안더니

잠깐!!!! 좀 진정해봐!!!!

아니, 지금 벨라지오 부페줄의 선두를 잡느냐 마느냐 하는 이 시급한 타이밍에 진정이 웬말인가요!!!
백허그 당한채, 남친의 손을 풀려고 애쓰며

지금 나가야 한단 말이야!!!

잠깐만!!! 잠깐이면 돼!!!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잠깐만 있어봐!!

그래서 그냥 그렇게 가만히 서 있었답니다.
제가 좀 진정이 됐다고 생각했는지 남친이 저를 돌려 세우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어요.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너도 알다시피 내가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거야, 난 드디어 내 짝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그게 바로 너야. 앞으로 남은 인생을 너와 함께 하고 싶고, 그리고 너를 영원히 사랑할거야. 결혼해 줄래?

라며 반지를 내미는 것이죠!!!

남친이 프로포즈를 하면 감동에 벅차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YES, YES YES"를 연발하는것이 제가 늘 생각해오던 프로포즈 장면이였는데 저는 남친의 이 감동적인 멘트를 듣고 "예스"세번 외치긴 했지만 그것은
"아, 그래 그래 그래, 알았어, 결혼할테니까 빨리 나가자" 는 의미의 다급한 예스 였던 것이죠.
뭐야 뭐야!!! 이럴 수 없어!!!
내가 생각한 프로포즈는 이게 아니였단 말이야.

그렇게 허겁지겁 "예스" 삼창을 하고 남친이 끼워 주는 반지를 받고, 남친손을 잡아 끌고 헐레벌떡 벨라지오 호텔로 달려 갔습니다.
이미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대충 시간을 계산해 보니 '오늘은 어떻게든 벨라지오 호텔 부페를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더군요.

 

       벨라지오 호텔에서 줄 서고 나서 제 정신 돌아와 프로포즈 받은 기념으로 사진 찍었습니다 ㅠ.ㅠ 

그리고 나서 정신이 번뜩~ 드는겁니다.

아~ 내 프로포즈!!!!!!!  ㅠ.ㅠ
먹는것에 눈이 어두워, 일생에 가장 감동스러워야 할 프로포즈가 밥에 그 감동이 묻혀버리다니;;;;;
그제서야 남친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후회도 되고, 이 호텔 부페 따위가 뭐라고 ㅠ.ㅠ
그런데 이미 남친은 "will you marry me"  했을 뿐이고, 난 이미 "YES YES YES"했을 뿐이고, 반지도 이미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을 뿐이고.....

인생에 되감기 기능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ㅠ.ㅠ
그래도 4시간 반 기다린 끝에 9시에 그놈의 벨라지오 호텔 부페는 먹었습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제가 원하는 바를 두개다 이루었으니 제 인생의 최고의 크리스마스라고 해 둬야겠죠???

프로포즈 받은 기념으로 뒤늦게서야 반지샷도 찍고 ^^;;;;  오른손 중지 손가락의 손톱 때 아닙니다. ㅡ.ㅡ:
까만색 프렌치 네일이였는데, 까만색 부분이 벗겨져서 내내 신경이 쓰여 사람들한테 계속 이거 때 아니예요~ 하고 다녔던 ㅋㅋㅋㅋㅋ


저의 로맨틱 프로포즈 이야기를 기대하셨나요?? 앞서 말씀드린것처럼 뒷일은 책임 못진다고 했죠?? ㅋㅋㅋ
이상 밥에 묻힌 저의 황당한 프로포즈 이야기였습니다. ^^

***추가 포스팅***
엘리는 손톱에 때 낀 여자의 오명을 벗고 싶다!!!


까만색 프렌치 네일이라고요 ㅠ.ㅠ 벗겨진 자리가 물들어서 그런거라고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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